글쓰기의 힘
평생 쓰지 않던 글쓰기입니다. 공모전에 연거푸 떨어지고 배우며 백번정도 떨어질 결심을 하였습니다. 블로그에도 그런 마음을 담아 글을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다부진 결심이 무색하게 공모전 글쓰기를 시작하고 불과 6개월 만에 연이어 공모전 수상을 하였습니다. 꿈에 그리던 모습 그대로 말입니다.
첫 번째 글은 지난 6월, 지역공모전 사랑의 편지글쓰기 대회에서 수상한 편지글입니다. 저는 치매 아버지와 팔순 엄마와 한 솥밥을 먹고 있습니다. 남편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편지글에 그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보았습니다.
나의 세 번째 손, 당신에게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고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해요.” 출근하는 당신을 살며시 안아주면서 이 말을 날마다 건네요. 당신의 직장 상사가 들으면 버럭 화를 낼 소리를 뻔뻔하게 말해요. 그만큼 넘치게 성실한 당신을 아니까요.
결혼 20년, 긴 시간을 함께 지나왔네요. 당신은 나의 열세 번째 맞선 상대, 질리도록 맞선을 보고 그 끝에 당신을 만났어요. 나와 달리 당신은 첫 맞선을 본 거고요. 처음엔 당신의 그 말조차 쉽게 믿지 않을 만큼 난 지쳐있었어요.
농촌 벌판 외딴집, 고무슬리퍼도 꿰매 신는 엄마가 안타까워 한 지붕 두 살림을 덜컥 시작하자고 했네요. 시골로 이사 오는 것이 단순치 않음에도 당신은 선뜻 따라주었지요. 따스한 밥을 부모님께 내 손으로 지어드리고 싶다는 순진한 마음이었어요.
그러다 평생 농부 아버지에게 갑작스레 병이 찾아왔고요. 아버지가 뇌졸중, 치매환자가 된 후 농사일이 우리 앞에 덜컥 닥쳤어요. 상인 집안에서 자란 당신과 겉만 농촌사람인 나는 실수투성이 어설픈 농부가 되어야 했지요. 그럼에도 당신과 둘이면 세상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굳게 믿어 두려운 줄 몰랐어요.
이웃 어르신께 관리기 사용법을 배우는 당신 모습은 첫걸음을 떼는 아이처럼 서툴렀어요. 그 모습조차 내 눈에는 더 할 수 없이 자랑스러웠고요. 해가 바뀌고 농사철을 맞은 당신은 보란 듯이 겨우내 잠자던 관리기를 점검하네요. 바퀴 상태를 살피고 찰칵찰칵 핸들을 잡는 폼이 제법 능숙해요. 쾅쾅 요란한 소리를 내는 관리기를 끌고 밭으로 향하는 당신의 뒷모습, 내 눈에만 한없이 든든해 보이는 걸까요.
모내기 후 당신은 노란 긴 장화를 허벅지에서 허리까지 단단히 두르고 질퍽이는 논에 들어가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모 이어 붙이기를 하는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기 위해 나는 사진을 찍어 놓아요. 직장을 다니며 쉬는 날도, 농사일을 해야 하는 일복 많은 당신은 한마디 불평을 할 줄 모르네요.
아버지는 온전히 우리의 보살핌을 받아요. 내가 아무런 힘이 될 수 없어 가장 아쉬운 공간은 남자 목욕탕이에요. 그곳에서 만난 어르신들 이야기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잊을 수 없어요.
“아이쿠, 어르신 거동이 불편하시네유. 세상에 이렇게 착한 아들이 어디 있데유, 참 보기 좋네유.” 쏟아지는 칭찬세례에 당황한 당신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고요.
‘저는 아들이 아니에요. 장인어른 모시고 온 사위예요.’ 이 말을 속 시원히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그대로 품고 온 순수한 당신.
아버지가 미용실 다니는 것을 불편해하면서 가정용 이발기를 사용한 첫날은 어떤가요. 내가 이발기를 쥐고 움푹 한군데만 잘라놓고 어쩔 줄 몰라 했던 때 말이에요. 살짝 스치기만 했는데 어이없이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확인하고, 얼굴까지 빨갛게 달아올랐잖아요.
“이리 줘 봐요, 군대에서 익힌 솜씨를 보여줄 테니” 당신은 그럴듯한 자세로 아버지의 머리카락을 능숙하게 다듬어 나의 실수를 감쪽같이 감춰주었어요. 그 후 아버지의 이발은 지금껏 당신이 맡고 있고요. 아버지는 이름난 미용실보다 당신의 가위질 솜씨를 가장 편안하게 믿으셔요.
아버지는 치매 환자가 되시곤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리셨지요. 이유 없이 불쑥 화를 내는 경우도 많고요. 그럼에도 아버지가 당신에겐 단 한 번도 성질을 부리지 않으셔요. 당신에게 직접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넨 적은 없어도 나는 아버지 마음을 짐작할 수 있어요. 아버지는 나를 포함해 여느 자식보다 살뜰한 당신을 믿고 계셔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함없는 마음으로 내 곁을 지켜주는 유일한 사람, 당신이에요. 마음의 귀를 항상 열어두고, 속삭이는 귓속말도 흘려듣지 않지요. 고봉밥 나물뿐인 시골밥상을 최고의 한식 상차림으로 알고, 날마다 아침 햇살처럼 환히 웃어주는 다정한 당신이에요. 보이지 않는 나의 세 번째 손, 당신은 나에게 가장 친근하고, 소중한 사람이에요.
말보다 글이 가까운 당신의 아내가.
두 번째 글은 제 15 회 2충 1효 전국 백일장대회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글입니다. 글 주제는 ‘길’, 제목은 「평행선」으로 지었습니다.
아버지가 소파에 기댄 채 숨소리조차 없이 낮잠에 빠진 날이다.
“니 아부지 죽었나?”
그 말을 건네는 엄마 목소리가 소풍 가기 전날 밤처럼 들떠 있다. 차마 활짝 웃지는 않지만 미묘한 빛으로 번쩍이는 은밀한 눈동자의 의미를 나는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화가 울컥 치밀어 하고픈 말을 쏟아낸다.
“엄마, 그러지 좀 마셔요. 아픈 아버지를 불쌍하게 좀 봐줘요!”
엄마 표정이 순간 당혹감으로 얼어붙는다.
“아녀, 혹시 그런가 한 거여”
얼버무리면서도 아쉬운 내색을 숨기지 못한다. 너는 내 딸이니 네가 뭐라고 무서워하겠느냐는 심산이리라.
“에구, 징그러워! 저 영감탱이 때문에 내가 못 살어!”
아버지가 귀가 어둔 것을 믿고 엄마는 노골적으로 마음의 소리를 내지른다. 뇌경색, 혈관성 치매까지 앓고 있는 아버지는 엄마에게 골칫거리 일뿐이니까. 아버지가 하루빨리 저 세상으로 가길 엄마는 바라겠지.
아침마다 침대 위에 누운 채 아래층 인기척을 살핀다. 아버지는 쿵쿵 방바닥이 바르르 울릴 정도로 무거운 발걸음으로 걷는다. 그 울림이 핸드폰 알람보다 정확하다. 낡은 갈색 소파에 앉자마자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켜는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레슬 마니아’ 미국 TV 프로그램을 날마다 골똘히 쳐다보신다. TV소리가 어찌나 큰 지 위층에서도 어떤 장면이 펼쳐지는 것까지 훤히 알 수 있다. 궁여지책으로 헤드셋을 쓰고 도망쳐본다.
“막내야”
희미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무슨 조화인지 성능 좋은 헤드셋마저 뚫고 들려온다. 택배트럭이 와도, 갑자기 텔레비전 리모컨 작동이 안 돼도 아버지는 무조건 나부터 찾는다. 어쩌다 느릿하게 1층으로 가보면 일순 숨이 턱 막힌다. 아버지가 보행기를 앞세우고 쓰러질 듯 서서, 앙상한 손으로 계단바닥을 탁탁 두드리고 있다. 내 마음의 귀를 향해 아버지가 마지막 남은 힘을 힘껏 끌어 모아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것은 아닐까. 그것만으로도 게으른 마음을 접어두고 귀 밝고 몸놀림 잰 사람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리라.
엄마의 얼굴은 휴지를 잔뜩 힘주어 구겨놓은 듯 잔주름투성이다. 그 얼굴이 길 가다 돈 주운 사람처럼 화사한 순간이 있다. 바로 저녁 드라마 시청 시간이다.
“니 아부지는 맨날 저것을 왜 보는지 모르것어.”
아버지가 거실 텔레비전을 차지하면, 엄마는 안방 텔레비전 앞으로 부리나케 달려간다. 부모님은 TV를 바통처럼 주고받으며 스쳐 지나가는 단 한 장면도 나란히 보지 않는다. 한 집에서 두 사람이 영원히 마주치지 않고 서로 비켜서는 것이다.
치매를 이겨내는 케케묵은 적대감의 위력을 매일 목격한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마을 이장을 십여 년 하면서 발 넓은, 시골 지역유지로 행세하셨다. 엄마는 자기 이름 세 글자도 진땀 흘리며 쓰는 형편이라 항상 아버지에게 무시를 당했다.
“당신이 뭘 안다고? 남자 하는 일에 간섭을 하려드나.”
그 시대를 대표하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모습이 여전히 선명하다. 두 분이 다정한 말 한마디를 주고받은 기억이 전혀 없다. 아무리 머릿속을 부지런히 뒤적여 봐도 글자하나 없는 빈 종이처럼 공허하다.
아버지는 청각장애자, 자연스러운 소통과 대화가 끊어져 버린 지 이미 오래다. 그 탓에 부모님은 서로를 향한 마음의 벽이 켜켜이 두껍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긴 세월 쌓인 무관심과 냉대로 남과 북처럼 멀다.
엄마와 내가 부엌에 같이 있어도 엄마의 모습은 투명인간처럼 아버지의 눈에 보이지 않는가보다. 오로지 나에게만 식사 시중을 원하신다.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지금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밥뿐이다. 잠깐 졸고 나면 아버지는 더욱 심하게 방금 전의 기억을 잃는다.
“왜 밥 안 줘?”
아버지는 멍한 눈빛으로 되묻는다.
꼼짝없이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몇 번이고 밥을 차려드린다. 그렇지 않고는 다른 방법을 도무지 찾을 수 없지 않은가.
언제부턴가 엄마도 혼자만의 식사를 한다.
“니가 만든 음식은 당최 싱거워.”
식탁에 턱 하니 소금 통까지 얹어 놓고 반찬 위에 소금을 마구 뿌린다.
“짠 음식은 고혈압에 나쁘다고 하던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떠들어도 헛짓이다. 엄마는 동네 회관에서 할머니들과 화투놀이를 즐긴다. 쉬는 날 없이 심지어 감기 기운 있어도 엄마는 동네 회관을 향한다. 붉게 물든 해가 뒷산으로 넘어가고 어스름한 시간에야 엄마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온다. 현관문을 열어젖히는 소리조차 경쾌하고 온몸에서 생기가 살아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평생 싫어하는 사람과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것은 더없는 형벌이리라. 부모님이 서로 만나지 않고 각자 살면 행복한 여생을 누릴 텐데.
“앞으로 몇 년이나 산다구.”
엄마는 아버지의 존재를 부담스럽게 여기면서도 다른 궁리를 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서로 없는 듯 한방에서 지낸다. 잠을 잘 때도 두 분 사이의 거리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아버지가 머리를 둔 방향과 반대쪽으로 엄마는 모로 돌아눕는다. 부모님이 각방을 쓰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아무리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도.
나는 부모님을 양쪽에 두고 서 있다. 남쪽도 북쪽도 아닌 중간지대, 비무장지대처럼 애매하다. 두 사람 사이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내 모습은 그대로 어정쩡하다. 아버지는 하루가 다르게 허물어지는 중이다. 그 옆에서 불통의 고단함으로 지친 엄마를 모른 척할 수도 없다. 결국 부모님, 양쪽 누구의 편도 들 수 없는 게 나의 처지인 셈이다.
두 분이 영화 속 노부부처럼 다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부모님이 처음 본 사람보다 차가운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이미 익숙한 일이니까. 두 분의 안타까운 마지막 모습까지도 다정한 눈길로 지켜봐야 하는 것이 자식인 나의 몫이다. 다만 부모님이 다가올 그날까지 다툼 없이 평화롭게 지내길 바라는 마음만 간절하다.
얼마전 제 17회 동서 문학상 공모전에서 동시부문 수상 글입니다.
블로그에 처음 글을 쓴 날부터 공모전 수상까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오로지 날마다 책 읽고 글쓰기를 했다는 말을 전할 뿐입니다. 어떤 비책이랄 게 사실 없습니다. 순수하게 좋은 책을 찾아 읽고 배우며 쓰는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유명 글쓰기 코칭수업을 받거나 어떤 단체나 조직에서 글쓰기 훈련을 받은 적 또한 없습니다.
문턱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블로그 글쓰기는 부담이 없습니다. 우선 날마다 글을 쓰면서 배우고 익히는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서 한 걸음씩 성장하는 글을 향해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걸어갑니다. 끈기 있게 글쓰기를 해올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글쓰기를 응원해 주는 블로그 이웃, 글 친구들의 힘이 컸습니다. 블로그 글쓰기 세상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귀한 인연입니다. 운 좋게 울퉁불퉁 모자란 글을 올리던 시절부터 칭찬의 댓글을 받으며 성장해 온 듯합니다. 블로그 첫 글을 읽어보자면 흠투성이 일 텐데.
글쓰기의 힘은 오묘하고도 강력합니다. 평생 쓰지 않던 사람을 서서히 바꿔줍니다. 더하여 날마다 글쓰기를 하면서 나름의 성취감과 즐거움을 느꼈기에 놓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는 즐거운 고통입니다. 고통만도 즐거움만도 아닌 두 가지가 절반씩 섞인 오묘한 조합입니다. 쥐어짜듯 글쓰기를 해왔다면 아마도 도중에 미리 지쳐 글쓰기를 즐겨하지 못했을 듯합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도 아무리 힘이 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지내왔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갑니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은 편안한 글 한 편을 쓰는데 온통 집중력을 쏟아붓습니다. 마치 재미난 이야기 속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 빨려 들어가듯이.
글쓰기는 만만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글쓰기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노력한 만큼 보이는 글쓰기 세상입니다. 다만 성실히 꾸준한 태도로 글을 쓸 뿐입니다. 평범한 하루가 글쓰기로 바삐 흘러갑니다. 하루치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합니다. 딱 그만큼만 깊어가길 바라면서.
잘 쓰고 못 쓰고 평가는 나중 일입니다. 그저 글쓰기를 해내는 것만으로도 첫걸음으로 충분합니다. 어디로 갈지 몰라 헤매는 마음을 간직 한 채 쓰고 또 쓰는 날을 견딥니다. 좋은 글을 찾아 나서는 글 쓰는 여정입니다.
서서히 글 쓰는 기쁨을 자연스레 알게 되고 늪처럼 깊이 글쓰기에 빠져듭니다. 글을 쓰면 이유 없이 마음이 평화롭고 고요합니다. 반대로 글을 쓰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이 공허합니다. 그제야 어느새 글 쓰는 몸으로 변한 자신을 제대로 바라봅니다.
글쓰기는 마음 쓰기입니다. 마음의 소리를 담아내지 않고는 한 줄 글도 쓸 수가 없기에 그렇습니다. 마음에 든 소리를 잡아채야 하니 또한 애쓰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과 상태에 대해 그야말로 현미경처럼 들어다 봐야 하니 자신을 새로이 알아가는 길입니다. 전에 몰랐던 아니 숨겨져 있던 스스로의 모습을 글 쓰면서 맞닥뜨립니다.
글쓰기는 삶에 활력을 줍니다. 주변의 모든 사물이 전과 달리 보입니다. 날마다 만나는 가족은 물론이고 길가의 돌멩이, 풀 한 포기조차도 새롭습니다. 평생 하지 않던 글쓰기를 하면서 난생처음 겪는 경험이 늘어납니다. 수십 년 살아온 지난날이 무색하게도.
글 쓰면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충만합니다. 그냥 지나쳐버렸던 꽃 한 송이의 향기를 새삼스레 깊게 들여 마십니다. 불어오는 바람 한 자락, 땅바닥을 줄지어 기어가는 개미떼들의 움직임에도 눈길이 머뭅니다. 가슴에 숨은 보이지 않던 감성의 촉수가 남몰래 자라납니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죄다 살아서 말을 겁니다. 글 쓰는 마음에는 경계가 없으므로.
공모전 도전은 결국 글쓰기를 익히는 일련의 과정 중의 하나입니다. 공모전은 집중적으로 자신의 글을 섬세하게 갈고닦아 나갈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공모전 준비를 하면서 자연히 글쓰기와 다듬기를 끊임없이 쌓아갑니다. 결국 배우면서 쓰는 것입니다. 많이 쓰고, 고쳐 쓸수록 정교해지는 게 글쓰기입니다. 자신의 글을 오롯이 키우려는 사람은 배움에 게으름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제 아무리 탈락의 쓰디쓴 잔을 마셔야 한다 하여도.
만약 공모전 글쓰기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마도 자유로운 블로그 세상에서 제멋대로 글쓰기를 했을 것입니다. 제자리에 맴도는 글을 쓰면서. 날 선 자극과 신선한 변화 없이 고인 물처럼 나날이 글쓰기에 활력이 줄어들었을 겁니다.
내 얼굴의 생김새도 거울을 보아야 알 수 있듯이 내 글의 오늘은 공모전을 통해 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뼈아픈 현실을 우선 달갑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번 행운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성장하는 글쓰기를 꿈꾼다면 아픈 시련까지도 환하게 웃으며 넓은 가슴으로 끌어안아야 합니다.
도전하는 용기는 과거의 아픔을 뒤로하고 작은 칭찬을 먹고 새로이 자라납니다. 모자라고 보잘것없는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꿈에 기대어 웃을 수 있습니다. 흔히 어린아이들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는 말을 쉬이 합니다. 그 이유는 희망을 품길 바라는 마음이 가장 큽니다. 마찬가지로 나이와 직업을 떠나 도전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다시 돌아온 풋풋한, 마음의 청년입니다. 더하여 꿈꾸는 사람만이 가지는 삶의 희망으로 끈기 있는 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글쓰기는 내가 나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오롯이 나를 위해 글 쓰는 시간을 내어 줍니다. 글 속에 내 마음의 소리를 곱게 담아 둡니다. 이제껏 읽어온 책도 글쓰기를 하면서 새롭게 읽습니다. 전체 글의 짜임새와 구성까지 눈여겨보면서 책을 읽는 겁니다.
말하자면 여태껏 읽는 사람의 시선이었다가 비로소 쓰는 사람의 시선으로 바뀐 것입니다. 즉, 소비자에서 생산자가 되는 역할 바꿈입니다. 다시 태어날 수 없는 내가 낯선 이의 심장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첫 숨을 쉬는 것입니다. 그만큼 충격적이면서도 감격스러운 설렘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오직 글 쓰는 것으로만 이뤄낼 수 있는.
스스로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친구가 보내준 지역 공모전 사진 한 장을 받고 우연히 응시한 것입니다. 여태 굳게 닫혀 도통 열릴 것 같지 않던 공모전의 문이 처음으로 살짝 열리는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가라앉히기 어려울 정도로 비 할 데 없이 기뻤습니다.
거기에 전국 공모 백일장대회 또한 ‘효’를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였습니다. 치매아버지, 팔순엄마를 모시고 사는 터라 털어놓을 이야기가 많은 덕을 본 것입니다. 딱 어울리는 주제를 그 시기에 맞춰 글로 쓰는 것, 또한 행운이었습니다. 그 덕택에 비슷한 시기에 두 번씩이나 공모전 글쓰기에서 수상을 하는 영광을 누려본 것입니다. 묵묵히 혼자 책을 읽으며 노력하다가 운 좋게도 가슴 벅찬 순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타고난 글재주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뛰어난 글 솜씨를 지녔다면 피땀눈물을 흘려야 하는 고단한 과정을 굳이 걸어왔을지 의문입니다. 부족한 만큼의 크기로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지내온 길입니다. 배우며 글 쓰는 나날은 매양 같은 모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글 솜씨인 것을 알기에 노력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공모전의 연이은 작은 성과 역시 계속 성장하는 글쓰기를 위해 자신을 갈고닦아나가는 응원의 의미로 여길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행운은 찾아온다고 믿습니다. 다만 그 행운을 꼭 붙잡기 위해 피땀눈물을 흘려야 하는 준비기간이 필요합니다. 좌절과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시간 말입니다. 글이 성숙해지는 동안 기꺼이 감수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성장통인 셈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행운이 나도 모르는 사이 문 앞에서 서성이는 날을 맞이하게 되리라.
나 아닌 나의 모습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를 그려봅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던 잿빛 시간이 날마다 글쓰기의 꿈으로 반짝입니다. 찌뿌둥한 하루가 물샐틈없이 힘차게 흘러갈 것입니다. 오직 글쓰기의 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