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동시)
5퍼센트, 자작 동시☆
옛날 할머니들은 정이 많아 마루 밑 강아지도 참으로 귀여워하셨어요.
'누렁아, 검둥아'
부르거나 어쩌다 '메리야~'제멋대로 부르기도 하셨지만요.
강아지도 할머니도 둘 다 영어, 꼬부랑 글씨에 뜻 같은 것은 모르거나 알거나 상관없는 일이었고요.
그 마음 그대로 고물고물 앙증맞은 손주를 보면 입버릇처럼 '우리 강아지' 소리를 곧잘 하셨고요.
요즘 세련된 젊은 할머니들은 그런 말 자체를 쓰지 않을 듯도 하네요.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오래 묵은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동시 『나도 강아지』를 지어보았어요.
실제로 강아지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 가족이 늘어나는 세상이에요.
유모차에 아이 대신 강아지를 버젓이 태우고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거리에서나 공원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도 있고요.
순하고 정직하면서도 변하지 않는 순진한 강아지의 모습이 어찌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외로운 사람에겐 더 할 수 없이 가장 큰 친구가 되고 가족도 될 수 있거든요.
5 퍼센트, 자작 동시☆
학교에 들어가기 전, 대여섯 살 무렵 아이들에게 짓궂은 질문으로 곤혹스러운 순간을 안겨주는 얄궂은 어른들이 기억나요.
답을 해도 영 신통치 않은 문제잖아요.
뻔한 질문을 굳이 하면서 어린 가슴에 돌멩이를 던지는 거예요.
어리고 순진한 아이들을 놀려보려는 덜떨어진 어른들의 말장난이었겠지요.
엉겁결에 '엄마'라고 툭 털어놓아도 난처한 처지는 변하지 않고요.
대답을 해도 손해, 하지 않아도 모자란 아이로 취급받기 딱 좋은 가장 곤란한 질문이었지요.
아직 여물지 못한 작은 머리를 굴려 겨우 내놓은 대답은 고작 두 사람 모두였으니까요.
꼬맹이 시절 가장 골치 아팠던 문제 중의 하나였어요.
한때 사느냐 죽느냐만큼 답 없던 질문이 떠올라 동시 『현명한 대답』을 지어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