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의 무법천지, 하얀 폭력앞에서

토편지

by 심풀

멀리 있지만 항상 곁을 지키는 그대에게,

이번 겨울중 가장 매서운 눈을 홀로 만나보았어요.

엊그제 도서관에 가려고 운전석에 앉았지요.

남편의 SUV자동차에는 운전대 보온이 잘 되어 겨울마다 반기는 기능이 있지만 내 낡은 경차엔 기능이랄 게 딱히 없어요.

음, 머리를 긁적여 보니 딱 하나 후방카메라 아니고 후방 감지기 센서가 있다는 것 하나네요.

그게 서투른 운전자에게 최고의 기능이라 여기고 지금까지 반기며 지내고 있어요.

나에게 좋은 자동차란 마음편하게 가고 싶은 곳을 쉬이 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바퀴달린 이동수단일 뿐이에요.

남의 눈에 멋들어질 필요조차 없으니 작고 편안하면 그것으로 만족하거든요.

집에서 출발하면서 부터 살짝 눈발이 날리기에 살짝 겁을 집어먹고 조심운전을 외쳐야 했어요.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으니 운전할 때 꼭 조심해요."

길을 나서는 등뒤로 불쑥 들려오는 남편의 따스한 당부의 말 한마디도 흘려 들을 수가 없었어요.

"하필 이르케 날씨가 요란한디 도서관에 간댜?"

보태어 엄마의 걱정스런 말까지 덤으로 들어야 했고요.

대략 길어야 20분 거리, 도서관 수업에 늦을까 싶어 부랴 부랴 시계를 보면서 운전을 하였지요.

겨울 장갑도 끼지 않고 맨손으로 운전하는 게 그리 힘든 일이 될 줄이야.

운전할 거리가 과히 길지 않기도 않았던 것도 한 몫 하였어요.

거기에 얼음밴 겨울바람의 매서움을 얕 본 내 무심함을 탓할 수 밖에 없었어요.

처음엔 새끼 손가락만 쌀랑하여 살짝 추위에 얼어붙는 듯 하였어요.

차츰 시간이 흘러갈 수록 손끝 전체에 살얼음이 덮치듯 차디찬 냉기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어요.

할 수 없이 빨간 신호등 앞에서 양 손을 마구 비비면서 온기를 전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어요.

KakaoTalk_20250207_145522925.jpg?type=w773 눈 속에 갇혀 ☆


도서관을 몇 블럭 앞두고 살짝 내리던 눈이 바람을 타고 아기 주먹만한 함박눈으로 바뀌어 버렸어요.

'겨울 날씨의 변덕스러움이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구나'

주변의 풍경들이 모두 하얗게 덧칠하여 보이더니 도로위의 모든 차선이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어요.

겨울, 가장 가벼운 척 보이지만 가장 매서운 하얀 눈의 폭력을 똑똑히 마주한 것이지요.

그 짧은 순간에 눈 앞의 모든 차선이 한꺼번에 눈의 손아귀에 잡혀 버린거였어요.

다행히 수없이 들락거리던 곳이라 빤히 아는 길이었고요.

조금씩 당황스런 마음이 샘솟고 평소와 달리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이 순간, 남편이 옆 좌석에 있다면 얼마나 안심이 될까 그런 생각도 잠깐 스쳐 지났어요.

갑작스레 혼자 폭설을 만나니 숨어있던 불안감이 마구 몰려온 탓이었어요.

주변을 둘러보니 버스, 자동차 할 것없이 모두 아기걸음으로 살금살금 길을 따라 달리기 시작하였어요.

도로위에 모든 선들이 사라지니 무법천지가 따로 없었어요.

자동차를 타면 으례 즐거이 들던 플레이리스트까지 들을 여유가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고요.

눈 앞에는 하염없이 쏟아지는 함박눈, 함박눈.

도로의 선조차 없이 하얗기만 세상에 유일하게 눈모자를 무겁게 쓴 신호등만이 빨갛게 혹은 초록으로 살아있어 가장 반갑게 보였어요.

윈도우 브러쉬도 부지런히 눈을 치우면서 자꾸만 좁아지는 시야을 겨우 지켜주었고요.

'삐릭 삐릭'

계속 쏟아지는 눈치우느랴 윈도우 브러쉬도 힘든지 아픈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제 할 일을 톡톡히 해주었어요.

모든 차선을 어림짐작하면서 어렵사리 좌회전, 우회전을 한 끝에 도서관에 가까스로 도착하였어요.

그나마 평일, 오전이라 교통이 혼잡하지 않아 그 덕을 본 것도 한 몫 했고요.

주차장에서 긴장을 한꺼번에 내려놓으면서 얼어붙어 굽은 손가락으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무사히 도서관에 도착했으니 엄마한테도 이야기 전해 줘요"


다음 주 토요일, 제 편지를 오늘처럼 기다려 주실 테지요.

나와 그대의 5 퍼센트 올림.




envelope-7076001_640.png 같은 듯 다른 그대와 나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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