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일기
3월 14일 금요일 아침이에요.
엊그제 겨우내 비워두었던 밭에 나가보았어요.
소쿠리와 호미를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는 길이었지요.
고추, 들깨 등 밭작물을 심기에는 아직 이른 3월이고요.
풀과 함께 슬그머니 밭에 누워있는 냉이를 한 소쿠리 가득 담아왔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냉이를 그리면서 밭고랑 사이 사이를 보물찾기하듯 느릿하게 뒤적거려 보았어요.
한걸음 걷다가 풀들이 차지해버린 밭고랑에 살포시 냉이가 보이면 그자리에 쪼그려 앉았어요.
냉이이파리가 다치지 않도록 흙 속으로 호미를 깊이 넣어서 다져있는 흙을 파냈어요.
지난주에 비를 흠뻑 맞은 땅, 날카로운 호미날이 부드럽게 흙을 가르는 느낌이 손끝에 타고 흘러갔어요.
축축한 흙속의 물기가 적당해서 먼지조차 풀풀 날리지 않았어요.
흙위로 드러난 냉이의 머리를 잡고 톡톡 흙을 털어냈어요.
뿌리가 날렵한 모양을 드러내며 길다랗게 딸려올 때의 뿌듯함은 마치 물고기를 낚는 어부의 마음과 닮았을 듯 해요.
반대로 뚝 냉이뿌리가 동강이 나서 나물 머리만 큰 경우도 물론 있었고요.
그럴 땐 저절로 '에구, 아까워'라는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고요.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소쿠리만 채워 오려니 눈에 밟히는 냉이들이 왜이리 많은지요.
아직은 덜 자라 새끼 손톱만한 귀여운 냉이들은 눈도장만 찍고 돌아서야 했어요.
새벽 배송보다 빠른 서너걸음 밭귀퉁이에 냉이는 자기들끼리 떼지어 몰려 있었어요.
사람들의 마을에 아파트나 집처럼 냉이도 무더기를 이루고 한데 모여 뿌리를 내렸나봐요.
제철 나물중에 제일 부지런한 냉이, 데쳐서 된장국이나 나물무침을 해도 이 즈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철식재료이지요.
냉이는 단 한번도 씨앗을 뿌린 적이 없것만 봄철마다 바람타고 어김없이 밭에서 만날 수 있어요.
"아욱, 근대도 밭에 가면 무조건 만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처음 농사를 짓기전, 농사 까막눈이었던 남편의 우스갯소리도 문득 생각나네요.
단연코 아욱, 근대는 냉이처럼 바람에 날려온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일은 기대할 수 없어요.
대부분의 밭작물은 농부가 씨 뿌리고 가꿔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법이에요.
다만, 냉이는 여태껏 단 한번도 냉이씨앗을 일부러 심어본 적도 없어요.
봄이면 어디서나 씨앗이 날아와 밭고랑에 지천으로 널부러져 있으니 아쉬운 것을 모르고 살아왔거든요.
아무 공없이 아침 해와 밤의 달을 맞이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여기면서요.
어쩌다 마트에 가서 상품으로 포장된 냉이를 만나면 어찌나 어색하던지.
도시의 글친구들에겐 당연해 보이는 것을 알지만요.
따스한 봄 햇살을 듬뿍 맞으며 풀만큼 흔한 냉이가 깔끔하게 차려입고 말쑥한 모양새를 뽐내니 제법 상품다워 보이기도 하고요.
"토요일에 냉이 캐러 올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사는 친구인지라, 흔쾌히 냉이를 캐러 온다고 하네요.
"이쁜 구두는 벗어두고 운동화신고 와야 해~"
밭에서 냉이를 캐고 누런 이파리를 다듬고 흙이 씹히지 않게 깨끗하게 씻어내기까지가 일거리라면 일이고요.
봄철 다운 재미로 알면 그또한 재미난 놀이가 되기도 하고요.
친구는 미심쩍은지 다시 한번 확인을 하네요.
"어디에 냉이가 있는데?"
하긴 은근슬쩍 궁금하기도 하였을 테지요.
"고추밭이 저절로 냉이밭이 되었어~"
토요일, 친구가 제 먹을 만큼 냉이를 캘수는 있을 지 도통 모르겠네요.
곁에서 소쿠리 하나를 끼고 같이 캐어서 보태줘야 할 것 같아요.
익숙한 촌사람의 눈초리와 다르니, 보아도 보이지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진심에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