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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캐면서 친구와

금일기

by 심풀

3월 21일 금요일입니다.

지난 토요일 아침, 친구와 냉이를 캐러 밭에 간 이야기를 전해봅니다.

친구의 모습은 허름한 운동화, 챙이 넓은 보라모자와 편안한 옷차림새가 냉이를 캐는 일에 딱 어울렸습니다.

다만 봄 바람이 여간 센 것이 아니었습니다.

둘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같은 크기의 소쿠리 하나씩을 채우며 연신 호미질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친구도 친정이 시골이라 꼬맹이 시절 언니와 엄마따라 냉이를 캐보았다는 이야기도 곁으로 들으면서.

고작 10여분 거리, 짧은 거리에 비해 주변 풍경은 얼마나 다른지 모릅니다.

친구네 아파트 근처를 살펴 보면 시원스레 쭉 뻗은 하천 산책길에 스타벅스와 공원, 은행 빵집 등 각종 편의시설이 골고루 갖춰져 있습니다.

그와 달리 텅빈 논과 밭이 전부인 동네에 언제 뿌리를 내렸는 지 모르겠는 냉이만 풍년이었습니다.

"냉이가 이렇게 많으냐?"

이미 눈도장을 슬쩍 찍어놓은 곳으로 친구를 안내해 주었습니다.

"냉이도 사람처럼 모여 다니는 가봐."

끼리 끼리 친하다더니 냉이도 군데 군데 떼지어 몰려있어 캐내기도 훨씬 수월했습니다.

한 자리에서 호미질을 하면 수북하게 한 주먹씩 냉이를 톡톡히 캐낼 수 있었습니다.



SE-b9f7b4eb-48d5-43da-a4b2-f451c34e3fb8.jpg?type=w773 친구와 냉이☆


친구는 냉이의 얼굴보단 뿌리쪽을 살뜰히 캐내는 모습이 시골출신다웠습니다.

사진을 찍어두며 기념을 해 두었습니다.

"냉이 진~짜 오랫만에 밭에서 캐보는 거야."

뿌린 적 없는 냉이씨앗이 매년 날아오니 기쁘게 나눌 뿐입니다.

무엇이고 때를 맞춰야 하는 일, 냉이도 캐내지 않고 시간을 지나버리면 금방 흰 꽃이 생겨버립니다.

그러면 나물로는 쓸모가 없어지기 마련입니다.

친구는 냉이 뿌리에 묻은 흙을 툭툭 털어내고는 냉이를 코끝에 갖다대고 흐읍 숨을 들여마시면서 냉이의 향긋한 내음새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방금 깨낸 냉이는 싸늘한 비바람을 품고 자라온 싱그러운 푸른 이파리만이 내뿜을 수 있는 독특한 향기가 따로 있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냉이는 이런 향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잖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유통과정에 드는 시간이 따로 있고 세척하면서 순수한 땅에서 느낄 수 있는 향기를 품을 수가 있겠는가.

그 와중에 친구의 핸드폰에 업무관련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 그래요. 알겠어요."

토요일 근무시간이 아님에도 급한 연락이 온 것인지 친구는 호미를 내려놓고 연신 여기저기 전화연락을 하였습니다.

무슨 일인지 캐묻기보단 친구의 빈 소쿠리를 얼른 채워줘야 할 듯하여 더욱 바쁘게 냉이를 캐냈습니다.

친구는 몇 분동안 업무용 전화를 하는 사이 재빨리 소쿠리에 한가득 냉이를 캐서 나눠줬습니다.

어리숙한 촌사람의 호미질, 할수록 늘어나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다시 비워진 소쿠리에 새로운 냉이를 채우는 일도 고될 것 없는 일입니다.

봄철, 냉이캐는 일은 그저 재미난 놀이일뿐이니까.

두어발자국 건너 걸어보자면 얼마든지 냉이는 밭에 널려 있으니 농사일에 비해 턱없이 쉽고도 쉬운 일입니다.


빈 소쿠리에 두번째 냉이가 가득찰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기꺼해야 삼사십분만에 두 소쿠리 가득 냉이를 캐서 밭에서 돌아왔습니다.

구태어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어차피 먹을 만큼만 캐고 필요할 때 언제든지 달려오면 되는 일입니다.

자연은 충분히 나눠줄 수 있을만큼 풍요롭게 베풀기 마련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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