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
오퍼센트, 자작 시 『가르침』 ☆
자동차를 타고 가는 길엔 보아도 볼 수 없는 게 많아요.
휙 지나쳐 가는 순간에 안타까운 마음이 느닷없이 밀어닥치면 급하게 브레이크를 힘껏 밟아요.
흘러가다가도 멈춰야 할 때를 우리의 마음은 알고 있나봐요.
집은 아직 저만치 보이는 데 둑 아래 하천으로 들어서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 보아요.
제각기 크고 작은 자갈돌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개천의 갓길을 지나요.
맑은 하늘의 햇살 한줄기에 눈 맞춤하며 흐르는 물줄기를 만날 수 있어요.
'태양의 분신인 햇살과 한방울 물의 조화'
두 눈이 순간 아득하여 살며시 탄성을 지르게 하는 윤슬이에요.
그냥 한 단어, 윤슬이라고 부르자니 어쩐지 성에 안 차는 느낌이 들고요.
촌스럽지 않고 얼핏 세련미까지 갖춘 윤슬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아름다운 지요.
그럼에도 딱히 윤슬을 시에 올리지 않은 이유는 더 근본의 언어를 부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물과 햇살처럼, 이루어지기 전 단계의 순수하고 소박한 것들의 이름을 곁에 두고파서요.
비록 윤슬처럼 완성되지 않은 형태지만요.
살아가는 동안 배우고 또 배우려 해요.
정작 글쓰기를 배우려다 삶을 배우는 아이러니.
글쓰기는 책읽기처럼 살아있는 한 하고픈 일 중 하나에요.
물론 자작시를 지으며 시공부도 이어갈 테고요.
몸은 비록 시간속에서 젊음을 하나씩 떠나보낼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순간을 사는 성장의 마법이 있지요.
늙어가는 시간을 단단히 부여 잡을 수 있는 성장의 마법.
배우며 찾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지요.
글에는 하나둘 늘어가는 흰 머리카락도 눈살을 지푸리게 만드는 잔주름도 들어설 자리가 없어서 다행이고요.
가끔은 우리의 몸이 말을 거는 시간도 있어요.
철 모르는 마음이 오늘에 머문 몸을 두고 마구 뛰어 달리면 몸이 황색 신호등을 켜니까요.
온 몸 어디 가릴 데 없이 고통에 찬 목청을 높여 경고의 하소연을 늘어놓고요.
하여 살살 달래며 하나뿐인 저물어가는 몸을 일으켜 세워야 하지요.
다정한 마음을 양념처럼 버무려가면서요.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겨울의 그것과는 다르지요.
부드러운 공기를 꽉 찬 봄바람은 시끌벅적 요란하여도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으니까요.
일요일, 깊어가는 봄을 열린 가슴으로 맞을 아름다운 시간이에요.
진심에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