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가르쳐준 것들
'불공평
살아오면서 나의 두 딸에게 미안한 일들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중에 한 가지는 아이들이 어릴 적에 곁에서 책을 자주 읽어주지 못했던 것이 아쉬움과 미안함으로 남는다. 약간 과장을 곁들여 이야기하자면, 그 당시 일 중독이 넘쳐나던 시대 흐름에 휩쓸려 나 역시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도록 회사에 충성했고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잠시간의 애틋한 정을 나눈 후 저녁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방으로 틀어박히곤 했다. 당시 나는 퇴근 이후만이라도 집단으로부터 탈출하여 혼자만의 자유를 누리기 원했고, 언젠가부터 그 집단에는 안타깝게도 소중한 나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기적이고 못난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난 TV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정체 모를 거짓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가끔씩 의무적으로 찾아오는 아이들과의 놀이 시간을 제외하고는 부녀간의 친밀함이 부족했던 나에게, 자녀들과의 잠자리 독서 같은 것은 아주 드물게 펼쳐지는 연례행사와 같은 것이었지만, 다행히도 아내의 헌신과 지혜로움 덕분에 아이들은 잘 자라났고 이제는 아빠인 나보다 어른스러울 정도로 당당한 성인으로 자라 가고 있다. 초보 아빠시절 부족했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자녀들에게 책을 잘 읽어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나 자신도 독서와는 상당기간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런데 중년이 되어서야 우연한 기회에 독서의 재미와 성취에 푹 빠지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평생을 붙어 다닌 친구 중 한 명이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책을 읽기로 결심하더니 3년간 300권 이상의 책을 독파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 친구가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생각의 깊이와 인격의 수준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책을 통해 사람이 변할 수도 있구나!
혹시나 나의 답답했던 인생도 책을 통하여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이 생겨났고, 나는 독서에서 희망을 찾아보기로 했다. 독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약 3년간은 다독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 내려갔다. 그동안 책을 가까이하지 않았던 수십 년간의 세월이 마치 허송세월처럼 여겨져 급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남들보다 뒤처진 독서의 분량을 만회하기 위하여 급한 마음에 수십 권의 책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이렇게 다독하려는 노력은 한편으론 나에게 책을 읽는 오기와 끈기를 불어넣어 주었지만, 이내 한계에 부딪쳤고 나의 독서의 방법은 조금씩 변화가 필요한 순간이 찾아왔다.
개인마다 독서의 접근 방식과 효용성이 조금씩 다르겠으나, '다독의 시간'들이 얼마간 지난 이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넘쳐나는 활자의 과잉보다는 페이지 한 장 한 장, 문장 한 줄 한 줄의 정돈과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강렬한 요구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이렇게 '다독의 수련'이 어느 정도 정돈 되어갈 때쯤, 나는 '정독의 기쁨'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정독'을 통하여 저자의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며 한 줄 한 줄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발전시켜 나아감으로써, 나의 정신과 삶에 새겨 넣는 작업은 너무나도 가슴 벅차고 감동스러운 순간들이었다. 물론 나의 정신과 마음에 새겨지는 문구 한 줄 한 줄은 매우 사려 깊은 선택과 정리의 과정이 필요했고, 그것은 부족하나마 내 안 깊이 숨어있던 상상력 어린 호기심을 발견하고, 이성과 감성의 조화로운 공감을 빚어 갈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었다.
책이 열어주는 미지의 세계들은 서서히 내 인성과 지성을 다듬어나갔고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두 딸에게 너무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ㅏ람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공감하게 해 주고 좀 더 폭넓은 관점과 시선으로 이끌어주는 독서의 감동을 나 혼자만 누리는 것이 왠지 너무도 미안하여, 자녀들에게도 내가 경험했던 독서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생각들을 정리해보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사실 그게 이 글을 시작한 이유이다.
이제 글로나마 내가 체험한 독서의 세계를 정리하여 전달하려고 한다. 만약 운 좋게도 나의 두 딸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내가 두서없이 정리하는 독서의 경험들을 참고 삼아,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벗으로 그리고 스승으로 삼아 평생을 성장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행여나 독서의 세계로 막 접어든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요즘 우리나라 아이들은 넘치도록 책을 많이 읽는다. 매년 불어나는 권장도서와 부모들의 지극한 그리고 때론 지나친 관심 속에서 수많은 책이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다. 그러나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수많은 책을 읽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인성과 지성이 조화를 이루는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하는 비율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에 관한 과학적인 통계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확언할 수는 없지만, 점차로 약자와 빈곤한 자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현상이나 가족이나 이웃과 같은 공동체가 무너져가고 사회 전반적으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화되며 공감능력을 상실해 가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은 성숙한 인격자가 아닌 성공을 위한 독단자로서의 방향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자라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물론 이것은 아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부모의 욕망과 이기심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독서(讀書)라는 단어는 '읽을 독(讀)'과 "글 서(書)"로 이루어져 있으며, 단순히 생각하면 글을 읽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으나, 무엇을 읽는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읽는지가 독서의 성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비근한 예로 독재와 광기의 대명사 히틀러는 독서를 매우 즐겼고 특히 역사와 정치에 관련된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 히틀러가 '니체'의 책들을 탐독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히틀러는 '니체'의 우월주의 사상에 빠져들어 그것을 나치의 이념적 기반으로 사용하였으며, 결국은 인류 최대의 비극적인 전쟁의 원흉이 되고 만다. 사실 니체의 '우월주의'는 본래 인간의 내면적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고자 함이었으나,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만의 우월함으로 바꾸어 해석하였으니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얼마 전 혹시나 해서 서점에 마련된 어린이를 위한 코너를 둘러보았다. 'OO 논술 명작세트' '똑똑한 초등 OO 세트' 등 제목에서부터 독서의 목적이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책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이런 유의 책들은 목적이 분명하다. 그 목적을 좀 비약해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나의 자녀만은 좋은 대학에 보내서 절대로 남들보다 뒤처지는 인생을 살지 않도록 하겠다"
물론 너무 과장되고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되는 마음에 가끔은 이런 비틀린 심사가 튀어나오곤 한다.
인간의 본성 -예를 들면 이기심, 욕심 등 악한 본성에서부터 이타심, 사회성, 도덕성, 탐구심과 창의성 등의 선하고 긍정적인 본성- 들에 관한 이해와 공감이 구축되지 못한 채 어린 시절부터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제, 과학, 그리고 입신양명을 위한 책들은 과연 아이들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불안함이 내 뇌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라는 명언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말이지만, 정작 그 깊은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여러 가지 해석과 적용이 가능하겠지만, 독서의 첫 번째 목적은 우리의 마음에 영양분을 공급하여 성장시키는 것이다. 독서가 가진 힘은 자연스레 지식과 실력의 향상도 이룰 수 있겠지만, 자칫 주객이 전도되어 마음을 살찌우는 독서를 등한시한 채로 성공한 삶만을 위한 또는 누군가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서 독서를 전락시킨다면, 앞으로도 히틀러와 같은 광인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듯하다.
프랑스의 작가인 생 피에르(Saint-Pierre)가 남긴 명언과 같이, 독서는 친구를 만드는 일과 같다. 잘못된 친구를 만나 인생을 그르치지 않기 위해서는, 좋은 책을 고르고 좋은 작가의 생각을 공감하고 그것을 나의 삶으로 재해석하고 뿌리내리게 하는 일련의 신중한 작업들이 필요하다.
좋은 책은 좋은 친구와 같다
-생 피에르 [Saint-Pierre]-
나쁜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좋은 책을 읽기 위한 조건이다.
인생은 짧고 시간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쇼펜하우어 [ Schopenhauer, Arthur ]-
첫째, 나쁜 책이란 무엇인가?
통계자료에 따르면 연간 평균 6만 권 이상의 책이 발행된다고 한다. 이중 1%만 읽으려 해도 일 년에 600권 이상을 읽어야 한다. 이 정도의 다독은 달성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AI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겐 오히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해를 끼칠 우려가 더 많다. 그래서 나쁜 책을 골라내고 좋은 책을 선별하여 독서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실 나쁜 책이라는 정의도 애매할뿐더러 정말로 나쁜 책이라면 어느 정도의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면 쉽게 골라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나쁜 책이란 정말로 내용이 불순하거나 편협한 책뿐 아니라, 우선순위에서 뒤로해도 될만한 책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개인마다 독서의 우선순위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나의 예를 들어보면, 단순히 달콤한 언어들로 삶의 가벼움만을 부추기는 책들, 저자의 고뇌와 수고가 느껴지지 않고 단지 번드르르한 외모만이 드러나는 책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해 우후죽순 선보이며 일확천금을 꿈꾸게 하는 책들, 타인을 돌아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이기에만 집중하게 하는 자기 개발서 등이다.
둘째, 독서의 밸런스를 유지해라.
독서는 밸런스가 매우 중요하다. 인생이 한 가지 경험만으로 살아갈 수 없듯이, 독서 또한 한 가지 주제만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필연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편협한 시각만을 부추겨 균형감의 상실의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의 관심분야뿐 아니라 인생의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를 선정하여 범위를 줄인다면, 나쁜 책을 버리고 좋은 책을 만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또 한 번 나의 예를 들어보면, 나의 관심사는 건축, 여행&걷기, 기독교 신앙이다. 이러한 분류에 나의 인생 성장을 위하여 고전, 인문, 역사를 더하여, 총 일곱 가지 분야의 책을 주로 구입하거나 읽어나간다.
셋째, 훌륭한 저자를 따라가면 좋은 책을 만날 확률이 높아진다.
친구를 고르는 것처럼 저자를 고르라.
-로스코몬 [Roscommon]-
독서를 하다 보면 운 좋게도 정말로 좋은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좋은 책에는 당연히 훌륭한 저자들이 존재하고 오랜 기간 삶의 고뇌를 통한 채득 한 그들의 아름다운 문장과 깊은 울림을 주는 생각과 사상들에 우리는 감탄하고 공감한다. 이것은 절호의 찬스이므로 놓치지 않는 것이 좋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하여 저자의 다른 저작을 찾아보면 그 책 역시 좋은 책일 확률이 매우 높다. 마치 좋은 친구를 만나면 한 다리 건너 또 다른 좋은 친구를 만날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또한 가지, 좋은 책을 읽다 보면 저자가 다른 저자의 문구를 인용하거나 아예 다른 책을 소개해 주는 경우도 있다. 훌륭한 저자가 소개한 책이나 인용한 문구가 담겨있는 책 역시 좋은 책일 확률이 높으므로 메모해 두었다가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넷째, 인터넷과 서점을 잘 활용하라.
최근에는 책을 소개하는 SNS나 블로그들이 많아져 책에 관한 정보를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단편적인 소개의 글만 믿고 책을 구입했다가는 비싼 책값만 날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인터넷 등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하여 발굴한 책들의 표지를 캡처해서 저장해 두었다가 가끔씩 서점에 들러 개략의 내용과 느낌을 확인해 본다. 개략의 내용 확인은 표지와 저자의 약력 정도를 확인하고 특히 중요한 것은 목차와 서문을 재빨리 읽어보는 것이다. 목차는 책의 구성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어 책의 농밀도나 저작의 방향을 가름해 볼 수 있다. 또한 서문은 저자가 특히 공들여 써 내려가는 부분이므로 저자의 의도와 필력을 살짝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추려진 좋은 책들은 나의 Book List에 저장되고 구매나 대출의 행위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좋은 책을 고르는 다양한 방법들이 많겠지만, 어떠한 방법이 되었건 좋은 책을 찾아다니는 일련의 모험은 매우 흥미롭고 유익한 취미가 될 수 있으며 그 자체가 인생을 얼마간 성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훌륭한 저자를 쫓아다니다 보면, 가끔은 마치 고무마 줄기에 달린 고구마가 딸려 나오듯 좋은 책들을 줄줄이 발견하게 되는 행운도 따라온다.
독서는 모두 방법이 있다.
세상에 보탬이 안 되는 책을 읽을 때는 구름 가고 물 흐르듯 해도 괜찮다.
하지만 백성과 나라에 보탬이 되는 책을 읽을 때는, 단락마다 이해하고 구절마다 깊이 따져 대낮 창가에서 졸음을 쫓는 방패막이로 삼아서는 안 된다.
- 정약용 (丁若鏞) -
속독과 정독 중 어느 것이 좋은가 하는 데는 개인마다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속독과 정독 중 어느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보다는 속독과 정독의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고 적용점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실제적인 예를 들어보면 나는 속독을 해야 할 책과 정독을 해야 할 책을 구분하고, 더 나아가 한 권의 책 속에서도 속독을 해야 할 부분과 정독을 해야 할 부분을 구별하여 읽어 내려가는 것이 독서의 균형을 맞추어 줄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라 사료된다.
정보의 습득을 위한 책들은 대부분 속독 위주로 읽어 내려가며 독서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추어 나가고, 저자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거나 깊은 사색이 필요한 책들은 정독을 해 나간다. 사실 후자의 책들은 정독을 통한 깊은 고민과 질문의 시간을 갖지 않는다면 단지 지루한 시간 낭비에 지나지 않을 때가 많다. 성경의 경우가 대표적인데, 예전 내가 다니던 교회들에서는 대부분 일 년에 몇 번씩 다독을 강조하여 속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방법인듯하다. 성경처럼 수많은 저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깊이 고뇌하며 묵상하며 써 내려간 책을 우리 같은 범인이 쉽게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으리란 착각은, 결국 일부 성경 구절을 단편적인 시각에서 자기식으로 해석하여 고집 불통의 기복적인 교인들을 양상 해내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성경이야말로 한 구절 한 구절 영혼을 끌어올려 고민하고 질문하고 마음속에 들려오는 응답을 기대하며 나아가야 하는 책이다.
한 권의 책 속에서 속독과 정독을 구분하는 방법은, 대부분의 저자의 경우-물론 정말로 세계적인 작가들의 경우 예외일 수도 있지만-글을 읽어가다 보면 왠지 필력이 약해지는 부분이 발견된다. 그 이유는 인간적인 한계이기도 하고 과도한 욕심이기도 하고 단지 책의 구성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삽입일 수도 있다. 그러한 부분은 넓은 아량으로 속독하여 넘어가고 저자의 진짜 실력이 발휘되는 페이지들은 정성을 다해 정독하여 나가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효율적이고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정독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타의 방법들로는 메모, 필사, 타이핑 등이 있다. 나의 경우 메모와 타이핑을 선호하는데-필사는 내가 너무 악필인 관계로 포기했다.- 느낌이 진하게 다가오는 구절들은 하이라이트를 하고 메모해 나간다. 그리고 최근에는 발전된 기술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바로 메모하는 앱들도 있으니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한 문장 수집에만 열중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직접 노트북에 타이핑을 처 내려가면 확실히 머릿속에 오래 남게 되고, 눈으로만 읽을 때는 느껴지지 않던 손가락을 통한 실천적인 이해가 다가온다. 전체 내용을 타이핑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니, 주요 구절이나 요약 내용을 정리하는 것도 방법이다. 실제적인 적용은 각자가 경험해봐야 하는 것이지만, 일단 도전해 보시길 권해드린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지난한 작업이지만 효과는 분명하기에, 생명력 있는 독서를 위해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
쉬지 말고 기록하라.
기억은 흐려지고 생각은 사라진다.
머리를 믿지 말고 손을 믿어라.
-정약용 (丁若鏞) -
양서를 처음 읽은 때에는 새 친구를 얻은 것과 같고
전에 정독했던 책을 다시 읽을 때에는 옛날 친구를 만나는 것과 같다.
- 골드스미스 [Oliver Goldsmith] -
영구의 작가이자 시인인 올리버 골드스미스(Oliver Goldsmith)는 책을 친구에 비유했다. 사실 나에게도 책은 친구처럼 다가왔다. 독서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 삶에 지쳐가고 있던 나에게, 상상을 통한 자유와 질문과 사색을 통한 정리와 실제적인 적용과 실천을 통한 삶의 기쁨을 맛보게 해 준 것이 독서였다. 책은 누군가의 삶을 통한 고뇌와 사색의 농익은 결과물뿐 만 아니라, 그 열매들이 익어가는 과정 속에 드러나는 통찰의 과정과 깨달음의 기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때론 마음을 나누는 친구처럼 나의 엉뚱한 질문과 생각들을 편견 없이 들어주었고, 가끔은 친절하게 다가와 넌지시 답을 건네주기도 하였다. 물론 그 답은 가끔 아주 명확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문답 같은 것이어서, 오히려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나의 인성과 지성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첫째, 책은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마치 친한 친구를 만나면 별다른 얘기도 나누지 않지만 그냥 같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 편한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우리가 책을 불편하게 여기는 것은, 어려서부터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 문제집은 어디까지 풀었느냐 등의 분량과 목표에 치우친 교육방식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처음 독서의 세계에 발을 디뎠을 때에는 나 역시 독서의 분량에 관한 약간의 강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욕심이었고 그리 효과적이지도 않았다. 사실 책이 나에게 자기를 자주 들여다보라고 강요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읽고 싶은 종류의 책을, 읽고 싶은 다양한 방법으로, 원하는 때에 만날 수 있었다. 실제로 나는 종이책을 읽다가 싫증이 나면 전자책을 읽어보기도 하고 오디오북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오래된 책의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더듬어 가며, 오로지 책의 질감에만 집중할 때도 있다. 그것은 나의 생각을 환기시킴은 물론 기분까지 좋게 해주는 나만의 위로이다. 이외에도 책을 읽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들로 분위기를 한 번씩 전환해 보는 것을 권장해 드린다.
그리고 한 가지 유의사항은 아무리 책이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해도 정기적으로 들여다 봐줘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친구도 오래 안 보면 멀어지듯이 자꾸만 만나서 교제를 나누어야 더 친해진다. 그래서 권장하고 싶은 방법은 하루 15분 혹은 하루 30분 독서를 꾸준히 해나가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너무 긴 시간을 목표로 잡으면 쉽게 지치니 자신에게 맞는 시간을 선택해서 점차 늘려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어쨌든 책은 나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막역한 친구를 만나듯이 자유롭게 대해라. 진심을 가지고 친구처럼 책을 대한다면 가끔씩 내가 독서를 게을리할 때조차도 책은 서운해하지 않고 여전히 친구로 있을 것이다.
둘째, 책을 다양하게 맛보라.
마치 다양한 성향의 친구들을 두루 만나는 쾌활한 누군가를 떠올리며 독서에 적용시킬 수 있다. 앞에서도 기술하였듯이 자신의 원하는 책의 분류를 정하였다면, 분류별로 각각의 개성을 듬뿍 지닌 책들을 한 권씩 나의 방에 배치하자. 그리고 한 권의 책을 읽다가 하품이 나오거나 지루해지면, 다른 친구를 만나면 된다. 책은 친구와는 다르게 다른 녀석을 만난다고 해서 질투하지도 않는다. 얼마나 자유롭고 편한가. 요즘 환승연애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독서의 세계야말로 환승연애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리고 심지어 다른 책으로 옮겨 갔다가 본래의 책으로 돌아오면 그 녀석은 더욱 강한 개성과 신선함으로 무장하고 이전에 졸음을 불러오던 문장들은 새롭게 나의 눈에서 반짝거린다. 물론 이 방법이 잘 맞지 않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을 억지로 끝까지 다 읽느라고 괴로워하지 말고, 잘 맞지 않으면 바로 변화를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 아니겠는가. 자유롭게 응용하여 자신에게 적용하면 된다. 그리고 한 가지 유의 사항은 책 중에는 정말로 고역이지만 인내심을 발휘하여 끝까지 읽어 내려가야 하는 책-예를 들어 훌륭한 고전과 같은 책-도 있으니, 그때는 정말 여러분의 혼신의 힘을 다해 읽어 내려가야 할 것이다.
셋째, 질문과 적용이 있어야 한다.
책을 의무적으로 읽는 사람들의 특징은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마치 묶은 숙제를 끝낸 것처럼 책을 덮어버린다는 것이다. 친구의 경우에도 만남 후에 무언가 뿌듯한 느낌과 그리움의 여운 같은 것이 남지 않는다면 진정한 우정은 아닐 확률이 높다. 진정한 친구 사이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때론 더할 나위 없이 진지하게 말 못 할 고민들을 질문하고 답하지만, 때론 더할 나위 없이 어이없는 대화를 나누며 서로 낄낄대기도 한다. 이러 진지함과 유머의 조화가 책과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질문과 대답 속에서 일어난다. 책을 읽다가 느낌이 오는 구절을 만나면 한 번씩 질문해 보면 좋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의 질문이든 누구에게 하는 것이든 상관없다. 진지한 질문이어도, 어이없는 질문이어도, 우스꽝스러운 질문이어도 괜찮다. 나 혼자의 생각인데 설마 책이 고자질 할리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책이 직접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나 스스로 대답을 정리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심지어 대답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지만 상관없다. 책을 통해 질문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한걸음 더 성숙해진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삶에 적용해 보라. 적용에 관한 부분은 아래에서 후술 하고자 한다.
옛날에 학문을 하는 것은 다섯 가지였다.
널리 배우고, 따져 물으며, 곰곰이 생각하고, 환히 분변 하여,
독실히 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 정약용 (丁若鏞) -
정약용 선생님은 오학론(五學論)의 공부 방법에 관한 조언으로 '널리 배우기, 묻기, 생각하기, 분별하기, 실천하기'를 가르치셨다. 그 의미는 세상의 모든 공부에 관한 조언이겠으나, 독서를 하는 목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니, 정약용 선생님의 조언을 통하여 삶에 적용하는 방법을 서술해 보고자 한다.
첫째, 두루 널리 배우기이다.
이는 정약용의 오학론(五學論) 중 박학(博學:두루, 널리 배운다)에 관련된 부분으로, 그 의미는 학교를 다니는 일, 직장을 다니는 일, 여행을 하는 일, 친구와의 대화, 취미 활동 등 모든 것에 해당되는 것일 것이다.
책은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세계다.
- W.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 -
책은 저자가 살아온 세계의 수많은 경험과 고민들을 농밀하게 녹여 넣은 결정체이다.-적어도 진심을 책을 썼다면.- 따라서 책은 우리를 박학(博學)의 세계로 연결시켜 준다. 책을 통해 두루 널리 보고 배울 수 있는 시야가 만들어질 수 있으며, 두루 널리 보고 모든 세상 만물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절대로 퇴보할 수 없을 것이다.
둘째, 묻기이다.
묻기는 단순한 질문을 얘기한다기보다는, 심문(審問:자세히 묻는다)의 의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떠한 책은 깊은 질문과 숙고를 요하는 책이 있다. 세상 도움이 안 되는 책들이야 빨리 읽어 넘기는 것이 상책이겠지만, 인생의 질문을 가져오는 책 구절들을 만날 때면, 그것이 뼈에 새겨지고 마음에 새겨질 때까지 질문하고 질문해야 한다. 또한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식견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우리의 식견은 쌓여가고 질문 또한 심오해져 가기 마련이다.
셋째, 생각하기이다.
생각하지 않고 읽는 것은 씹지 않고 식사하는 것과 같다.
- E. 버크 [Edmund Burke] -
여기서 생각하기는, 신사(愼思:신중하게 생각한다)의 의미로 단순한 생각을 넘어선 사색의 단계를 말한다. 흔히 오늘날의 한국 교육을 '주입식 교육'이라 많이들 비판하곤 한다. '주입식 교육'은 생각할 시간을 좀처럼 주지 않고 일분일초를 아껴 문제를 풀어대고 암기하는 행위를 반복한다. 만약 독서를 그러한 방법으로 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당장 멈추길 바란다. 독서를 함으로써 자연스레 지식의 습득이나 교육 효과도 있겠지만 앞서 여러 차례 얘기했듯이 독서의 주목적은 그것이 아니다. 독서를 하다가 나의 가슴을 울리는 혹은 나의 깊은 고뇌를 이끌어 내는 구절을 만난다면 잠시 생각의 여백을 가져보길 권해드린다. 깊은 생각은 질문을 이끌어 내고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답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러면 그 짧은 한 구절이 나의 영원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넷째, 분별하기이다.
분별한다는 것은, 명변(明辨:명백하게 분별한다)의 의미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릇됨을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독서를 통해 좋은 책과 나쁜 책, 좋은 구절과 나쁜 구절을 분별해 내는 능력을 길러내고, 이를 세상에 적용한다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 또한 일취월장할 것이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책에는 옳고 그름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중간지대에 속해 있어 누군가는 옳게 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릇되게 볼 수도 있는 생각들이 책 속에는 가득하다. 따라서 흑백논리에 의한 양분된 옳고 그름만을 고집하는 것은 책을 읽는 올바른 방법이 아닐 것이다. 독서는 균형 있는 생각과 중용의 이치를 깨닫게 한다. 그것이 진정한 분별력일 것이다.
다섯째, 실천하기이다.
정약용 선생님이 말한 실천한다는 의미는 독행(篤行:독실하게 실천한다)을 뜻하는 것이다.
우선 살펴보고 싶은 것은 '실천한다'라는 의미의 '행(行)'이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고 지식을 아무리 많이 쌓는다 한들 내 삶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의미가 반감한다. 여기서 실천이란 책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나의 행동에 반영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은 책을 통해 나의 인격과 태도가 변화되는 형태로 나타난다. 만약 이러한 인격과 태도의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잘못된 독서를 거듭하고 있는 것일 수 있으니 독서의 행위를 멈추고 다시 한번 고민해 보길 바란다.
다음으로 살펴보고 싶은 것은 '독실하다'라는 의미의 '독(篤)'이다. 여기서 '독실하다'라는 의미는 '믿음이 두텁고 성실하다.'라는 말이다. 실천하되 믿음을 가지고 성실히 실천하라는 의미이다. 삶은 우리가 죽는 날까지 절대로 결론에 이를 수 없다. 단지 과정의 연속이기에 믿음과 성실함이 없으면 삶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책을 통하여 두터워진 나의 믿음과 책을 통하여 성장한 나의 성실한 인격과 태도를 가지고 노력하고 실천해 가는 인생은 분명 멋진 과정의 연속이 될 것이다.
공부하여 쌓은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지만
공부해 나갔던 자세만큼은 머리가 아닌 몸에 새겨진다.
- 정약용 (丁若鏞) -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결과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그것은 독서의 습관이 나의 몸과 마음에 그대로 새겨져, 인격과 삶의 태도가 변화되는 것이다.
책 속의 저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공감하려는 습관, 이해하고 분별하려는 노력 그리고 나의 것으로 재해석하기 위한 질문과 생각하는 습관이 나의 삶 속에 발현된다면, 아마도 인생의 수많은 갈등과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해법이 달라지고 행복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방향성도 의미 있게 변화될 것이다.
책은 젊음을 가르치고 청춘을 이끌며 중년을 위안하며 노년을 지혜롭게 한다.
-프란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
'의 시대를 마주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