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목회자가 되다

일상을 밝히는 신앙의 글

by hesed by

# 아내가 목회자가 되다


나는 개신교 가정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 자랐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교회의 친근한 분위기와 또래의 친구들이 좋아서 교회를 열심히 다녔고, 어른이 되어서는 왠지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내 삶이 뒤틀어질 것 같아 약간의 관성의 법칙 같은 것에 의존하여 교회를 다녔다. 그러던 중 지금의 아내를 교회에서 만났는데 그 당시 아내는 신학생의 신분이었지만, 난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살다 보면 아내도 어느 누구나처럼 평범한 가정주부나 직장인이 될 것이고 나처럼 적당히 삶을 즐기는 평범한 소시민이 될 것이라 쉽사리 예측하며 결혼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아내는 나와는 삶을 즐기는 방식이 많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여행이나 친한 친구들과의 만남처럼 부담 없고 행복한 기억들을 쌓아가며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싶었던 나와는 달리, 아내는 뭔가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가치에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삶을 나에게 강요하는 것도 아니었고, 아내는 결코 종교에 심취하여 타인을 불안하게 만드는 형식적인 종교주의자는 아니었으므로, 우리 부부의 삶은 어느 정도 무탈하게 이어져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두 명의 사랑스러운 딸들을 키우며, 나는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아내는 전도사로서 교회에서 사역을 이어가며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의 담임목사님은 아내에게 정식으로 목회자 과정을 더 공부해서 목사안수를 받기를 권면하셨고, 아내는 3년에 걸친 공부를 어렵사리 마치고 마침내 정식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응원해 주긴 했지만, 아내가 목사가 된다는 것이 나의 삶에 어떠한 파장을 가져올지는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지 교회에 출석하여 평신도로 살아가는 일과 한 교회의 영혼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지는 목사의 남편이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물론 그동안 나의 개인적인 신앙에도 꽤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오랫동안 교회의 모호한 가르침과 감정 몰이식의 설교들이 불만스러웠던 나는, 비논리적으로만 비춰지는 성경의 많은 구절들에 대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질문하고 대답을 얻기를 기도하며 갈구해 왔다. 이 글에서 개인적인 신앙고백들을 장황히 늘어놓을 수는 없지만, 나의 보잘것없는 질문들에 감동하셨는지 하나님은 나의 내면에도 진리를 향한 변화가 찾아오게 만들어 주셨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앞서 언급했듯이 일정한 틀에 묶이고 속박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나에게, 한 교회를 책임지는 목사의 남편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매우 난처한 일이었다. 마치 나의 손발을 다 결박당하여 내 자유의지를 모두 잃어버리는 듯한 압박감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 질문으로 답을 얻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어졌고 일은 벌어진 상태였다. 앞으로 나아가는 수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으며, 그 흐름을 뒤바꾸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특유의 장기를 살려, 다시 하나님께 질문하기 시작했다. "왜 아내에게 목사의 직분을 주셨나요? 왜 나에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목회자의 가정으로서 이토록 힘들어 보이는 길을 가게 만드시나요?"


쉽게 답을 얻기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하나님은 독특한 방법으로 나에게 응답하기 시작하셨다. 사실 나는 겉으로는 친절하고 유한 척 하지만, 속 마음을 드러내 보이지 않으며 적정한 경계와 선을 두고 사람을 대하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인간이요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목사가 된 이후로는 내 기도의 방향과 비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항상 나와 가족만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 공동체나 타인을 위한 기도에는 형식적이고 인색했던 나에게, 교회 성도들을 향한 왠지 모를 애통과 긍휼이 찾아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타인을 위한 기도의 감정들이 너무나도 진심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진폭이 너무 커져서 마치 내 고통인 것처럼 타인의 고뇌와 어려움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보다 훨씬 은혜로운 경우를 자주 체험하게 되었다.


"어? 나는 이런 부류의 인간이 아닌데? 나는 냉소적이고 타인을 위한 사랑에는 너무나 인색한 사람인데? 왜 나한테 이런 감정이 들지? 왜 이런 기도가 나오지?" 그리고 가장 의아했던 생각은 "왜 타인을 위한 기도가 나에게 위로가 되지?" 하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이었다.


물론 아직도 너무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 속성이 남아 있는 나이지만, 이런 변화의 시작은 나에겐 충분한 해답이 되기 시작했다.



# 영혼을 살리는 목회자


기독교의 독특한 특성 가운데 한 가지는 "죽어야 산다"는 것이다. "번영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현실을 바라보면 여전히 가슴이 아파온다. 자본주의와 세속주의가 혼합되어진 교회의 모습들은 심심치 않게 뉴스의 주요 기사를 장식한다. 특히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부와 명예와 영적 권력의 유혹에 빠져드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면, 부끄럽고 화가 나는 감정을 넘어서, 그곳에 출석하고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이 병들어 가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교회는 부와 성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 중에 하나는 바로 "영혼을 살리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영혼이 살아나고 성장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영혼의 성장을 잘못이해하기 시작하면 매우 편협하고 고립된 광신도적 종교인들을 생산해 내게 된다. 영혼의 성장은 그 열매를 보면 결과를 짐작할 수 있는데, 영혼이 올바르게 성장하는 사람은 그의 삶에 인격과 지성에도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며 사회와 공동체에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최근 정치권 뉴스를 장식하는 종교세력들은 그 열매를 보아도 실패작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 교회의 수많은 교인들이 왜 영적 성장의 침체기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아니 오히려 퇴보하며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영혼의 성장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교단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기독교의 교리에 따르면 구원은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이루어진다. 즉,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거기까지는 우리의 노력과 점수를 판단하시지 않기 때문에 비교적 쉽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이다. 성경은 일관되게 구원의 부르심 이후 영적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영적성장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교제와 동행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자 공동체 적인 것이다. 일반적인 지식과 이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에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결과가 명확히 외형적으로 드러나지도 않고 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교인들은 쉽게 포기하고 쉬운 길을 택한다. 바로 목사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목사, 교회에서 벌어지는 행위로써의 예배와 봉사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육체는 고되지만 그래도 뭔가 보람이 느껴지고 나의 양심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느낌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문제는 그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하나님은 사라진다는 것이다. 난 하나님을 신실히 믿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는 교회의 시스템과 겉모습과 목사의 언변과 권위를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이 병들어 가고 고집스러운 종교인으로 변모해 간다.


나는 아내가 "영혼을 살리는 목회자"가 되길 기도한다. 아내의 개인적인 재능과 성향과 노력이 최선을 다해 발휘되길 원하지만, 그것이 하나님께 녹아들어 자신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드러나는 목회를 하길 바란다. 그리하여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 즉 공의와 사랑에 길들여지고 각자의 인격과 지성과 영혼이 균형 잡힌 성장을 이루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공동체와 사회에도 유익을 가져오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되길 원한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 중 한 가지를 언급하겠다. 내가 아내에게 목사란 직분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아내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목사는 양을 치는 목자이신 예수님의 개야!"


다소 의외의 대답이었는데, 흔히 교인들은 목사를 목자라로 부른다. 지팡이를 한 손에 들고 근엄한 모습으로 양 떼를 다스리는 모습을 상상하곤 하는데, 사실은 목자는 예수님이었던 것이다. 목사는 단지 양들을 모아 목자에게로 인도하며 목자의 울타리 안에 보호받도록 하는 양몰이 개의 역할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내의 이 답변에 확신을 얻고 아내의 목회자로서의 길을 응원하기로 결심했다.


나의 아내는 사실 목회자로서 최적화되어있는 성향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결코 언변이나 재주나 능력에 국한되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로서 아내의 가장 큰 장점은 겸손과 낮아짐에 최적화되어 있는 타고난 성향이라고 생각된다. 때론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을 낮추고 주목받기 싫어하며, 격식과 형식을 싫어하고, 과도한 물질과 부를 경계하는 태도와 성향은 요즘 한국사회 현대인들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듯하다. 오랜 결혼생활 동안 이러한 성향은 나와 많은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다 하나님의 준비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아내를 믿고 소망하며 기도한다.


절대로 초심을 잃지 말기를! 그리고 영혼을 살리는 목회자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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