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족

영화 이야기

by hesed by

# 들어가는 글


올해도 어김없이 설 명절이 다가오고 있다. 이번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교통체증을 견디며 그리운 가족이나 친지를 방문하여 서로를 위로하고 정을 나누는 시간들을 보내겠지만, 전통적인 명절의 의미가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명절의 의미가 급격히 바뀌고 있는 만큼 '가족의 의미' 또한 급속도로 달라지며, 세상 거의 모든 전통적 관계들의 정체성이 변모하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들을 살펴보면 한국인들의 가족에 대한 인식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데, 응답자의 약 69.7%가 굳이 혼인, 혈연관계가 아니라도 함께 사는 사람은 가족일 수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이는 최근 한부모 가족, 다문화 가족, 재혼 가족 등에 대한 사회적 수용율이 높아지면서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가 매우 확장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할 '어느 가족'이라는 일본 영화는 변화해 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깊숙이 곱씹어보게 만드는 영화이다.



# 기묘한 가짜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모인 다섯 식구의 끈끈한 '가짜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들은 도쿄 변두리의 낡은 집에 모여 살면서, 주로 집주인인 할머니의 연금에 의존하며 일용직 노동으로 근근이 살아가는데, 때론 좀도둑질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아이들에게까지도 도둑질을 가르치곤 한다.

우선 가족 구성원을 살펴보면, 이혼한 전 남편의 연금 수혜자로 실질적인 가정의 지주인 할머니 '하츠에'와 일용직 노동자이자 좀도둑꾼이지만 한없이 정이 많고 긍정적인 아빠 '오사무', 사연 많은 인생덕에 한없이 시크하지만 유쾌하고 아이들에 대한 속 깊은 정을 내비치는 공장 노동자인 엄마 '노부요', 성 노동자로 불운의 삶을 살아가지만 가족의 정이 그리운 처제 '아키' 그리고 이런 어른들을 바라보며 끈끈한 가족의 정을 느껴지만 도덕적인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아들 '쇼타'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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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하츠에' / 아빠 '오사무' / 엄마 '노부요']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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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제 '아키' / 아들 '쇼타' / 그리고 새로운 가족 딸 '주리'] 출처 : 네이버 영화



# 새로운 가족이 들어오다


어느 추운 겨울날, 성공적인? 좀도둑질을 마친 후 고로케를 사들고 집으로 귀가하던 아버지 '오사무'와 아들 '쇼타'는 베란다에서 떨고 있는 다섯 살 소녀 '주리'를 발견하게 된다. 몸에 상처가 가득한 아이를 차마 외면하지 못한 이들은 고로케를 건네주며 잠시 동안 '주리'를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와 돌보아주려고 한다. 그리고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가짜 가족들은 '주리'와 정겨운 가족의 정을 나누게 되고, '주리'도 이들로부터 친부모에게서 받지 못했던 가족의 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주리를 이대로 데리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아빠 오사무와 엄마 노부요는 주리를 본래 지신의 집에 데려다 주기로 결정하고 아쉽지만 주리를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는데, 아이의 집 앞에 이르러 주리 친부모의 폭력적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엄마인 노부요는 아이를 다시 데려가자며 아빠 오사무를 설득한다. 그리고 주리도 이들로부터 전해지는 끈끈한 가족의 정을 어렴풋이 느낀 탓인지, 이들의 제안에 동의하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다. 이렇게 한가족이 된 주리를 가짜 가족들은 진심 어린 정과 마음으로 맞아주며 함께하게 된다.



# 가짜라서 더 가깝던 관계


이들은 비록 가난하고 사회적 기준으로는 '범죄자 집단'이며 실제 혈연의 가족도 아니지만, 친부모에게 방치되었던 주리에게 그 누구보다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준다. 그러나 혈연보다 더 깊은 유대감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이들에게, TV 뉴스에서 주리의 실종 소식이 보도되면서 위태로운 평화에 균열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위기를 느낀 이들은 주리의 이름을 '린'이라고 바꾸어 주고, 머리도 단발로 자른 뒤 더욱 지속적이고 단단한 가족의 정으로 뭉치게 된다.

common.jpg [바닷가에서 함께인 가족들] 출처 : 네이버 영화


그러나 이런 위태로운 행복은 언제나 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영화는 이 끈끈한 가족의 너무도 행복한 바다 여행을 그려내며 뭉클함을 자아내지만, 바닷가 모래사장에 혼자 앉아 중얼거리는 할머니 '하츠에'의 한마디가 이들의 가슴 아픈 이별을 예고해 준다.


"다들 고마웠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할머니 '하츠에'가 외롭게 떠날 수도 있었던 자신과 함께해 준 가짜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며, 혼자서 조용히 건네는 감사의 인사는, 이제 곧 죽음을 앞둔 노년의 한 인생이 삶을 함께 나누었던 가족과의 뭉클한 정을 느끼게 한다.

image.png [바닷가의 할머니 '하츠에']


이렇게 행복한 바다 여행을 끝으로 할머니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장례비용도 없을뿐더러 할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연금이 끊길 것을 우려한 아빠 오사무와 엄마 노부요는 할머니의 시신을 집안 창고 바닥에 매장하고 만다. 사실 할머니 하츠에는 이 가짜 가족들이 자신의 연금에 빌붙어 산다는 것을 버젓이 알고 있지만, 이들을 내치지 않고 가족의 구심적 역할을 하며 때론 깊은 정으로 때론 괴짜스런 행동으로 웃음을 주는 정신적 지주였다.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아빠 오사무는 할머니를 매장 한 뒤 몸을 씻어내며 미안함에 어쩔 줄을 모르고 엄마 노부요는 이런 남편을 위로한다.



# 밝혀지는 진실과 이별


영화 속에서 아빠 오사무는 도둑질이 올바른 행동이냐고 묻는 아들 쇼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며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 한다.


"(가게 안의 물건은) 아직 팔리지 않은 상태라서 누구의 것도 아니야"


아빠 오사무의 이런 괴변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지만, 영화 말미에 경찰 조사를 받던 아빠 오사무의 진술은 우리의 가슴을 또 한 번 아프게 만든다. 경찰은 아이에게 도둑질을 가르친 아버지를 질책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느냐고 질문하지만, 아빠 오사무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것 말고는 가르칠 게 없었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사회적 약자의 한계와 좌절을 무조건 두둔하는 것은 잘못이겠지만, 감정적 공감과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러나 쇼타의 마음 한구석에는 도둑질에 대한 양심적 가책이 남아 계속해서 쇼타를 괴롭힌다. 그러던 중에 쇼타에게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여동생 주리와 함께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나가려는 찰나, 구멍가게 주인 할아버지가 쇼타를 불러 세운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쇼타를 가만히 바라보며 다정스럽게 충고를 건넨다.


"이거 가져가고... 여동생한텐 도둑질시키지 마."


할아버지의 말을 마음에 담고 지내오던 쇼타는 결국 여동생 주리가 좀도둑질을 따라 하는 모습에 갈등을 거듭하다가 중대 결심을 내리게 된다. 쇼타는 일부러 도둑질을 들키고 붙잡히면서 이들 가족의 운명을 급격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아빠 오사무와 엄마 노부요가 불려 가게 되고, 이들 가족의 충격적인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들은 모두 남남이었으며, 각자의 상처와 필요에 의해 모인 관계였으며, TV에 연일 등장하였던 실종된 아이의 유괴범이었으며, 할머니가 사망하자 시신을 집 아래 유기하여 연금을 계속해서 부정 수령해 온 살인방조범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 모든 범죄사실은 사회적인 공분을 자아내고, 엄마인 노부요가 자진하여 죄를 뒤집어쓰며 일단락된다. (아빠인 오사무는 전과자로 한 번 더 붙잡힐 경우 매우 중죄가 구형될 것을 염려한 엄마 노부요가 자진하여 죄를 뒤집어 씀) 그러나 그 결과, 엄마 노부요는 5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고, 아들 쇼타는 위탁학교에 들어가고 동생 주리는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며, 정 많고 끈끈했던 가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 낳기만 하면 다 엄마가 되나요?


비록 좀도둑질로 연명하며 유괴와 살인 방조를 저지른 범죄자 가족이지만, 법적으로 '유죄'였던 이들의 관계가 정서적으로는 '구원'이었다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과 고민으로 다가오며 이를 통해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경찰의 조사를 받던 엄마 노부요를 심문하던 경찰은 쥬리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노부요를 질책한다. 그리고 감정이 북받쳐 마음으로부터 튀어나오는 엄마 노부요의 대답은 우리의 가슴을 시리게 만든다.


"낳기만 하면 다 엄마가 되나요?"


영화 속 엄마 노부요는 사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었다. 그리고 화면을 가득 울리는 그녀의 알 수 없는 표정과 눈물 속에는 진짜 엄마가 되어 주고 싶지만 진짜 엄마일 수 없다는 쥬리와 쇼타를 향한 미안함이 절절히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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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조실의 엄마 노부요]



# 아빠는 아저씨로 돌아갈게


시간이 흐르고 각자의 삶에 다시금 순응해 갈 수밖에 없을 무렵, 아빠 오사무와 아들 쇼타는 감옥에 있는 엄마 노부요를 면회하러 간다. 짧은 면회가 끝나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아빠 오사무와 아들 쇼타에게 엄마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웃음으로 배웅한다.


"나 그동안 즐거웠어. 이런 건 삶의 덤이지"


그리고 돌아오는 길, 아들 쇼타와 마지막 이별을 앞둔 아버지 오사무는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데, 보는 이들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빠는 이제 다시 아저씨로 돌아갈게"


아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하자 자신의 버려진 어린 시절을 쫓아 뛰어가듯 아들이 탄 버스를 따라 달리는 아빠 오사무, 그리고 멀어지는 아빠를 뒤돌아보며 그동안 소리 내어 말하지 못했던 '아빠'라는 단어를 애써 입술로 옮기는 아들 쇼타. 이들의 뭉클한 이별 장면은 보는 이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듯하다.

common (3).jpg [아빠 오사무와 아들 쇼타] 출처 : 네이버 영화



#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는가?


극도로 경쟁적이고 메말라가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영화 속 가짜 가족의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던져주지만, 그 감동 속에 들어 있는 묵직한 질문들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도 만든다. 영화는 "피가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확장시키지만, 사실 "왜 혈연의 전통적인 가족이 진정한 울타리가 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이 좀 더 근원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도대체 우리의 무엇이, 사회의 무엇이 가족의 갈등을 부추기고 흩어지게 만들고 마침내 가족을 불필요해 보이는 존재로까지 만드는가? 결코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어떠한 의미의 가족이던 만약 내가 누군가의 가족이 되었다면 평생을 통하여 인내심을 가지고 풀어나가며 공감해야 할 질문일 것이다.


common (1).jpg [어느 가족] 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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