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과 서양의 만남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by hesed by


# 들어가는 글


1호선 시청역 3번 출구를 올라와 덕수궁을 따라 걷다 보면, 정동 세실극장 건물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서양식 성당 건축물이 눈에 띈다. 성당의 제 모습을 보려면 조금 더 걸어 올라가 서울시 의회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처음 성당을 마주하는 이들은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고즈넉하고 정감 넘치는 서양식 성당 건축물에 작은 감탄사를 보내곤 한다. 바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다.


건축물의 이름이 다소 생소한데, 우선 "대한성공회"는 영국 국교회(성공회, Anglican Church)의 전통을 잇는 한국의 기독교 교단이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특징을 함께 지닌, 흔히 말하는 중도적 전통 교회에 속한다. 그리고 “주교좌성당"은 영어로 “Cathedral”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주교의 ‘좌석’(cathedra, 주교가 앉는 의자)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Cathedral은 문자 그대로 주교의 자리가 있는 교회, 즉 해당 교구의 주교가 공식적으로 머무르며 중심 역할을 하는 교회를 뜻하기에, “서울주교좌성당”은 서울교구장(주교)의 주교좌가 있는 성당, 즉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전체의 중심 본당이라는 뜻이다.

KakaoTalk_20260203_191524581.jpg?type=w773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 신앙의 터전이 시대의 고난을 품다


서울 중구 정동에 자리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을 넘어 한국 근대사와 건축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20년대 지어진 이 성당은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적 배경을 안고 태어나 이후 한국의 격동기를 관통하며 오늘날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역사의 증인이자 동서양 건축 양식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는 건축적 걸작으로 남아있다.


서울주교좌성당의 역사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면, 19세기 말 한국에 성공회 선교가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성공회는 일제 강점기 속 한국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며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성당이 자리한 정동 일대는 근대 외교와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이곳에 세워진 성공회 성당은 서양 문물과 기독교 신앙이 유입되는 통로 역할을 수행했다.


성당의 건립은 제2대 한국 교구장 아서 베레스포드 터너(A.B. Turner) 주교의 비전에서 시작되었고, 그의 뒤를 이은 마크 네이피어 트롤로트(M.N. Trollope) 주교가 이를 실현했다. 설계는 영국의 건축가 아서 딕슨(Arthur Dixon)이 담당하였는데, 당시 제1차 세계대전과 재정난으로 인해 원래 설계의 절반만 완공되었고, 이후 70여 년간 ‘예비 대성당’으로 사용되었다가, 1996년 선교 100주년을 맞아 원 설계에 따라 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아서 딕슨의 원도면은 줄곧 행방이 오리무중이다가, 1993년 미국 버밍햄 도서관에서 발견되어, 1996년에 성당의 복원과 증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성공회는 한국적 정체성과 기독교 신앙을 조화시키려는 독특한 시도를 보였고, 이는 성당 건축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단순히 기독교의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한국인들의 삶과 정신을 기록하고 있는 역사적 기념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할 수 있겠다.



# 동양과 서양의 미학이 융합되다


건축적으로 서울주교좌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한국 전통 건축 요소를 절묘하게 융합한 독특한 구조를 지닌다.


우선 성당의 기본적인 구성을 살펴보면, 성당은 라틴 크로스 평면, 3랑식 구조, 목조 트러스 지붕, 단일 기둥 열, 이분법적 창 구성 등 전형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을 따르면서도, 지붕의 추녀 밑 서까래, 한식 기와를 덮은 종탑, 격자무늬 창호 등은 한국적 전통을 절묘하게 녹여 넣었다.


내부에는 영국 Harrison & Harrison 사의 파이프 오르간, 모자이크 제단화, 스테인드글라스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지하 공간까지 확장된 구조는 현대적 공간 활용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데, 특히 성당 건립을 주도했던 3대 주교 마크 트롤로프 주교의 유해가 제단 아래에 안치되어 있어, 그를 기리는 동판을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닌, 기억과 기능을 동시에 담아낸 건축적 재해석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성당의 외벽에 사용된 붉은 벽돌과 화강암의 조화는 견고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표현하며, 시대를 초월하는 건축적 미학을 보여준다.

KakaoTalk_20240301_201519648_15.jpg?type=w386
KakaoTalk_20240301_201519648_13.jpg?type=w386
[3랑식 구조(좌) / 측랑(우)]


*중세 성당의 3랑식(Three-aisled) 구조는 중앙의 높은 신랑(Nave)과 양옆의 낮은 두 측랑(Aisle)으로 구성된 바실리카 평면 형식을 의미한다.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에서 주로 채택되었으며, 신랑과 측랑 사이의 아케이드, 클리어스토리(고측창)를 통한 채광, 그리고 유기적인 하중 분산(고딕의 경우)이 특징이다.


KakaoTalk_20240301_201519648_11.jpg?type=w386
KakaoTalk_20251004_111119077_02.jpg?type=w386
[모자이크 제단화(좌) / 파이프오르간(우)]


서울주교좌성당에 적용된 몇 가지 한국의 전통적인 특징들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자.


- 한국적 요소의 건축적 해석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지붕 구조인데, 서구 교회 건축의 첨탑 대신 한국 전통 건축의 처마와 곡선을 연상시키는 지붕 선을 채택했다. 이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한국 전통 목조건축의 미학을 석조와 벽돌 구조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결과이다. 내부 공간 또한 흥미롭다. 서구 고딕 성당의 수직성을 추구하면서도, 한국 전통 건축의 수평적 안정감을 조화시켰다. 기둥과 아치의 비례, 창문의 배치와 크기 모두 동서양의 미학적 감각을 절충한 결과이다.

SE-cb6c4750-81e5-459f-8449-ec8ff67b4f08.jpg?type=w386
KakaoTalk_20240301_211109998_24.jpg?type=w773
[성당 외관 : 종탑 지붕에 한국 전통 누각과 한옥 기와를 모티브로 한 디자인을 적용]


KakaoTalk_20251004_111119077_04.jpg?type=w386
KakaoTalk_20240301_201519648_09.jpg?type=w773
[성당 내부 : 기둥과 아치]


- 재료와 기법의 혼용

건축 재료의 선택도 주목할 만하다. 기본 구조는 서구식 석조와 벽돌 건축 기법을 사용했지만, 세부 장식과 마감재에는 한국 전통 재료들이 사용되었다. 특히 단청과 유사한 색채 사용, 전통 문양의 활용 등은 이 건물이 단순한 서구 건축의 복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종탑의 디자인은 이러한 절충적 접근의 정점을 보여준다. 서구 교회 건축의 종탑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전통 누각의 형태적 특징을 차용하여 독특한 외관을 만들어냈다.


- 동서양 종교관의 건축적 표현

서울주교좌성당의 공간 구성은 동서양 종교관의 차이를 건축적으로 조화시킨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서구 기독교의 수직적, 초월적 지향성과 동양의 수평적, 내재적 종교관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공존하고 있다. 제단부의 구성은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전통적인 기독교 제단의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전통 건축의 상징적 요소들을 도입하여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종교적 공간감을 제공한다.



- 빛과 색채의 활용

내부 공간의 빛 처리 방식도 독특하다. 서구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신비로운 빛의 연출 대신, 한국 전통 건축의 자연광 활용 방식을 채택했다. 마치 한옥의 전통적인 창호지 문을 연상시키는데, 이는 보다 친근하고 따뜻한 종교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KakaoTalk_20251004_111119077.jpg?type=w386
KakaoTalk_20251004_111119077_05.jpg?type=w386
[한국 전통 창호양식을 채용한 디자인]


- 한국적 사유의 접목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성당의 중심축이 경복궁을 향하도록 하여 풍수지리를 고려한 것인데, 이것은 서양의 종교 건축물이 한국의 전통적 사유와 접목된 흥미로운 사례를 보여준다.


이상 살펴본 서울주교좌성당의 건축적 특징들은 서양의 건축 기술과 한국의 전통적 미가 절묘하게 융합된 진귀한 사례로서 그 가치를 더하며, 훌륭한 예술 작품이자 살아있는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이 되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단순한 종교 건축물을 넘어, 한국 근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담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라는 암울한 배경을 안고 1922년 착공되어 1926년 봉헌된 이 성당은,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활동과 한국 기독교의 성장을 상징하는 장소로서 자리매김했다. 당시 일본은 신사참배를 강요하며 기독교를 탄압했지만, 성당의 건립 과정과 완성은 식민지 상황에서도 종교적 자유와 문화적 정체성을 추구했던 이들의 의지를 보여준다.


또한 서울주교좌성당은 민주화와 인권의 장소로 여겨지는데, 1950년 한국전쟁 때 주임신부이던 윤달용(모이서) 신부와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활동하던 조용호(디모데) 신부를 비롯한 성공회 성직자들이 순교하는 등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서울주교좌성당은 1987년 6월 항쟁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성당 뒤편에는 "유월 민주 항쟁 진원지"라는 조그만 비석이 자리 잡고 있어 이를 기념하고 있다.


이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일련의 사건과 아픔들은 서울주교좌성당을 단순한 종교 공간이 아닌, 민주화와 인권의 상징적 장소로 만들었다.

KakaoTalk_20240301_201519648_01.jpg?type=w773 [유월민주항쟁진원지]


# 마무리의 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옆에는 '정동 세실극장'(현 국립 정동극장 세실)이 위치해 있다. '세실극장'이란 이름은 1976년 개관 당시 대한성공회 4대 교구장을 지낸 알프레드 세실 쿠퍼(Alfred Cecil Cooper) 주교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 따온 것인데, 쿠퍼 주교는 성공회가 한국에 안착하고 부흥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는 동안 수많은 고난과 피박을 받으며 한국을 위해 애쓴 인물이다. 서울주교좌성당을 방문하게 된다면 근처의 여러 근대 건축물들뿐 아니라, 세실 극장도 한번 방문하여 역사의 연결고리를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역사와 건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변화와 문화적 다양성을 증언하는 공간이다. 이 성당은 단지 예배의 장소를 넘어, 일제 강점기의 아픔, 한국 근대사의 상처와 희망, 서양과 동양의 미학적 융합, 그리고 종교와 시민의 삶이 만나는 장으로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으로 기억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동(貞洞) 거리를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