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群山), 근대의 역사를 거닐다

건축&도시 이야기

by hesed by


# 들어가는 글


본격적인 글을 써나가기 전에 나와 군산의 인연을 간단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내가 군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전경'(전투경찰)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민주화에 따른 극심한 시위를 진압하고 관련 업무들을 지원하기 위해 생긴 부대로, 육군에 지원한 신병들을 대상으로 차출하곤 했다. 나 역시 육군으로 지원해 20사단에서 신병 교육을 받았지만, 신병 교육을 마치는 날, 내가 속한 기수 180명은 일괄 전투경찰로 배정을 받아 강제 차출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민주화 시위가 하도 격하여 전투경찰을 가면 죽는다는 소문도 돌던 때라 나와 동기들은 절망하였지만 군대의 명을 거부할 수가 없어 그대로 군산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이렇게 시작된 군산과 나의 첫 만남이니, 그 기억이 별로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존재인지라, 나는 어느덧 군산에 익숙해졌고, 비릿한 항구의 풍경과 다소 이국적이었던 골목들이 친숙해져 버렸다.


이렇게 시작된 군산과의 인연으로 나는 제대 후에도 몇 차례 군산을 방문하게 되었고 건축을 전공한 터라, 군산의 근현대 건축과 적산가옥들에 관심이 갔던 것은 당연한 순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인생의 절반을 지나버린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군산을 찾아본다. 이번에는 그 속살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각오를 다지며 군산행 버스에 올라탄다.


*적산가옥(敵産家屋)은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인이 한반도에 지은 일본식 주택을 말한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인이 떠나면서 이들 주택은 정부에 귀속되었고, 이후 일반인에게 불하되었다. '적산'은 '적의 재산'이라는 뜻으로, 이 가옥들은 역사적 맥락에서 일제의 흔적을 보여주는 건축유산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 군산, 개략의 역사


먼저 군산의 유래와 개략적인 역사를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전라북도에 위치한 '군산(群山)'은 한자 해석 그대로 무리를 뜻하는 군(群) 자와 산을 뜻하는 산(山) 자가 합쳐져 ‘산이 무리 지어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현재 군산 은 해안 평야에 위치해 있지만, 조선 초기 문헌에 따르면 금강 하구와 바다에 돌출된 섬들이 군집되어 있어 '군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군산을 역사적으로 거슬러 가보면, 백제 시대에는 금강 하구 일대가 중요한 해상 교통로로 사용되었으므로, 당신 군산은 여러 섬을 중심으로 한 어로와 교역지였다. 조선 시대로 와서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15세기 초 ‘군산진’이 설치되었고, 이후 군산은 군사와 수산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조금 더 최근으로 올라와 근대 개항기를 살펴보면, 1899년 군산항이 개항하면서 일본과 서양 상인들이 들어와 곡물·목재 수출 항구로 급격히 성장하였다. 특히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이 군산항을 통해 대량 수출되면서 도시가 발전한 것이다. 이때 일본 상인들이 대거 군산으로 이주하여 항만 주변에 상권과 일본인 거주지 형성하였고, 개항 직후부터 일본인 지주가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하여, 토지의 상당수가 일본인 지주 소유로 넘어가게 되고 조선인 농민은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 시기에 항만·철도 인프라가 확충되고 군산항이 현대식 부두로 확장되면서 목포와 서울을 연결되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농산물, 특히 쌀을 일본으로 대규모 반출하는 장소로 이용된다.


일본인의 거주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도시 경관은 일본식 건물과 거리가 조성(은행, 우체국, 상점, 학교 등) 되고,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군산의 모습을 형성한다. 해방 직전에는 군산 인구 약 6만 명 중 일본인이 1만 명 이상 거주하였고, 경제·행정·교육·문화 중심권을 일본인이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항만·도로·철도는 일본의 이익을 위해 개발되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해방 후 군산이 산업·항만 도시로 재도약하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 군산, 근대 건축의 타임캡슐


군산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시대의 건축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특별한 지역이다. 군산시에는 근대 건축물이 170건 이상 남아 있었다고 하니, 가히 '근대건축의 타임캡슐'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재는 '군산 근대문화유산 거리'로 지정되어 관광 코스로도 조성이 되어있으니, 단기간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 수 있는 훌륭한 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그럼 지금부터, 지면의 부족과 지식의 부족으로 인하여 모든 건축물을 다 살펴볼 수는 없겠으나, 최대한 여건과 능력이 허락하는 만큼 둘러보고 살펴보고자 한다.



1. 옛 군산세관 (1908년, 등록문화재 제374호, 사적 제545호)


군산에는 '해망로'라는 이름의 거리가 있다. 해망로(海望路)라는 이름은 "바다(海)를 바라본다(望)"는 뜻인데, 직접 해망로에 서서 금강 하구와 이어지는 서해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서글픈 감정이 솟구치고, 일제 수탈의 시대에 우리 민족은 무엇을 소원하며 바다를 바라보았을까 하는 가슴 아픈 상상이 나의 마음을 매워온다.


그리고 해망로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가 군 복무를 했던 전투경찰 부대가 있었던 거리이기도 하여 개인적으로는 의미가 남다르다. 그리고 이렇게 서두를 늘이는 것은, 해망로는 해방 이전에도 이미 일본인 금융과 상업의 거점이 집중된 군산의 메인 거리였기에, 지금도 그 당시의 금융과 상업 건축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 먼저 '옛 군산세관' 건물을 먼저 살펴보자.


'옛 군산세관'은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이 특징인 근대 서양식 건축물이다. 세관이라는 딱딱한 이름 때문인지,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방문했던 관람객들은, 실제 건물의 정갈하고 아기자기한 외형에 놀라곤 한다. 그래서 SNS 사진의 단골 배경이 되기도 하는데, 사실 그 역사는 무척이나 가슴 아픈 장소이다.


당시 군산세관의 기능은 일제강점기 쌀 수출입과 세금 업무를 담당하며, 제국 말기의 재정과 통관을 모두 일제의 통제 아래 두려는 의지가 응축된 건축물로 볼 수 있다. 호남평야의 미곡이 철도와 도로로 모여들어 군산은 쌀의 바다가 되었고 일제의 '미곡 적출항'으로서의 기능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 조선 전체 쌀 수출량의 20% 이상이 군산에서 선적되었다고 하니 일제가 군침을 흘린 만도 했다.


건축적인 시선으로 잠시 들여다보면, 이 건물은 2018년 사적 지정(제545호) 이후 보수와 정비가 잘 진행되어 지금도 원형이 잘 보존된 건축물에 속한다. 포이어(foyer) 뒤로 높게 솟은 중앙홀을 중심으로 좌우로 대칭되는 평면구조로 중앙홀은 그 당시 업무와 의전에 사용되었다. 중앙홀에 설치된 벽난로도 인상적이다. 또한 외관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오는 적벽돌로 쌓아 올리고, 개구부와 박공(삼각벽) 모서리에 화강석을 사용하여 전체적으로 권위적이면서도 균형된 느낌을 준다.


설계자는 정확지 않다. 단지 당시 공사는 대한제국 탁지부 건축소 산하의 '임시 세관 공사부'가 시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정감 가는 외관과는 달리 아픈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 건축물은 현재 '호남 관세 박물관'으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으니 꼭 한번 방문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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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군산세관 정면(좌) / 배면(우)



2.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1923년, 등록문화재 제374호)


채만식의 장편 소설 『탁류(濁流)』의 주요 배경은 현재의 금강과 군산항 인근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초봉'이라는 여성 인물인데, 처음에는 맑던 강이 차츰 탁한 강으로 바뀌는 장면들과 초봉의 삶을 통해, 우리 민족의 기구한 운명과 일제의 수탈로 인해 비참해진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세태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xx 은행'이라는 명칭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곳이 바로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다. 현재는 '군산근대 건축관'으로 탈바꿈하여 많은 관람객들에게 편의와 정보를 제공하며 붉은색 벽돌의 정감 어린 외관으로 인기를 끄는 장소이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식민지 수탈 경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가슴 아픈 장소이다. 이 건축물은 조선총독부의 발권 및 상업은행 역할을 하던 '조선은행'의 군산지점으로 사용되며, 호남평야 일대의 쌀의 집하 및 수출과 토지 매입 자금 대출 등으로 '식민지 수탈 경제의 금융 허브' 역할을 했던 장소이다.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이 건축물은, 그 당시 일본의 관공서와 은행 등에 보편화되었던 '제국풍의 네오클래식(Neoclassical)' 양식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로서, 르네상스 양식과 고전적 기둥 장식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또한 외벽에는 수입 벽돌 및 화강석을 사용하여 디테일을 강조했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중앙 현관을 지나 높은 홀과 상부 채광창을 마주하게 되는데, 상부 채광창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으로 인해 내부는 적정한 개방감을 느낄 수 있다. 2008년 등록문화재 지정 이후에는 원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구조보강 및 마감 복원, 전시기능을 더해 '근대 건축관'으로 활용하고 있으니 관람을 적극 추천드린다.


*나카무라 요시헤이(1880년~1963년) : 출신지인 시즈오카현뿐만 아니라, 조선과 만주 등지에 공공 건축물을 주로 설계한 일본의 건축가이다. 서울에 위치한 '천도교 중앙대교당(1921년)과 '서울 중앙고등학교 서관 및 동관'(1921년/1923년)도 설계한 인물이다.
*제국풍의 네오클래식 :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양식과 제국 양식(Empire style)이 결합된 스타일을 의미한다. 신고전주의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미술의 특징을 따르는 예술 사조이며, 제국 양식은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장식적인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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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현 군산 근대 건축관) 전경 낮(좌) / 야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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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현 군산 근대 건축관) 2층&천장구조(좌) / 내부 계단(우)



3.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현 군산근대미술관, 등록문화재 제374호)


이곳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더불어 일본 자본이 군산에서 경제를 장악하고 수탈했던 또 다른 증거이다. 당시 한반도 개항장과 일본 내무 금융망을 잇는 역할을 했으며, 군산 지점은 주로 일본 사인들의 곡물 거래와 무역 금융을 담당했다. '조선은행'이 '공적 금융의 통제를 담당했던 기관이라면 '일본 제18은행'은 민간 상업 금융을 통제하고 수탈했던 기관이다.


건축적으로만 살펴보면, 좌우 대칭구조에 현관부의 코린트식 기동과 삼각 페디먼트를 적용한 '신고전주의' 은행 건축의 전형을 따른다. 조선은행에 비해 좀 더 직선적이고 절제된 고전주의 요소를 강조하여 엄격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현재는 '군산 근대 미술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건축물은 군산시 '장미동'에 위치하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장미동'이라는 지명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듯이 장미꽃을 의미하는 아름다운 지명이 아니다. 감출 장(藏), 쌀 미(米)의 한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마디로 '쌀을 저장하는 장소'라는 뜻이다. 장미동 일대는 일제의 군산항 개발에 따라 1930년대까지 미곡 창고가 계속하여 늘어나 이러한 지명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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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현 군산 근대 미술관)



4. 동국사 (1909년, 등록문화재 제64호)


군산 구도심을 지나 월명산 밑에 이르면, 한눈에 봐도 일본색이 짙은 근대 사찰을 만나게 된다. 바로 '동국사'(東國寺)이다.


동국사는 원래 일본인 승려들에 의해 창건된 '금강사'(金剛寺)가 전신이다. 당시 군산에는 일본인 이주민들이 대거 몰려들었고, 이들을 위한 종교적 공간이 필요하였기에 일본식 사찰들이 건립되었는데, 금강사 역시 일본 불교 계열의 사찰이었다. 해방 후 금강사는 한국 불교계로 이관되어 이름이 현재의 '동국사'로 바뀌었다. '동국'이란 '동쪽의 나라', 즉 한국을 뜻하는 것이니, 식민 잔재를 털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이름이라 하겠다.


동국사의 가치는 오늘날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일본식 사찰 건축이라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이지만, 동시대를 증언하는 자료적 가치가 크다.


건축적으로 살펴보면, 동국사의 본당은 일본 사찰 건축양식으로, 기와지붕과 목조건축 양식이 일본 불교 건축의 특징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이지만, 한국 전통의 곡선미와는 달리 직선적인 형태이다. 그리고 한국 전통건축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화려한 단청과 처마선에 비해 지붕의 추녀가 짧고, 좀 더 단순하고 간결한 형태를 이룬다.


사찰의 배치 방식도 사뭇 다른데, 한국의 전통 사찰이 산과 같은 자연지형에 따라 자유롭게 배치되는데 비해, 동국사는 직선적이고 대칭을 이루는 배치이다.

KakaoTalk_20240301_211844179_12.jpg?type=w1 동국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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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사 야경(좌) / 국내 유일의 일본 전통양식 종각 (우)



5. 구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히로쓰 가옥, 1920년대)


군산 신흥동 골목을 걸어가다 보면, 어딘가 눈에 익은 일본식 가옥이 눈에 들어온다. 이유는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 등에서 촬영지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히로쓰 가옥’으로도 알려져 있고, 기와지붕, 다다미방, 일본식 정원 등의 일본 양식이 그대로 보존된 장소로서, 일부 서양식 요소가 절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근대 일본식 주택 건축의 전형을 살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로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그러나 관점을 달리하여 역사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가옥은 일제 경제 수탈의 상징이다. 이 가옥은 1920년대 중반 군산에 거주하던 일본의 대부호 '히로쓰'가 지은 저택으로, 당시 빈곤에 시달린 조선 농민들에 비해, 호화로운 삶을 영위하던 일본 대지주들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 이곳의 주인이었던 '히로쓰' 역시 군산에서 쌀을 수탈하여 미곡 도매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일본의 대표적인 지주였다. 이 가옥은 단순한 일본식 주택이 아니라 식민지 수탈 경제와 일본인 지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KakaoTalk_20240301_211620339_24.jpg?type=w1 히로쓰 가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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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쓰 가옥 1층 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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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본식 적산가옥 거리


금강 하구에 위치한 군산 앞 탁류의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군산 근대화 거리를 구경한 후에 길 건너 맞은편으로 들어가면, 영화동, 월명동, 신흥동과 같은 과거 일본의 적산가옥이 즐비한 구도심을 만나게 된다. 이 일대는 당시의 일본인 거주민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오래된 근대 주택들이 군락을 이루어 남아 있어, 지금도 당시 아픔과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다.


현재는 거리 곳곳에 위치한 다양한 전시관, 서점, 카페, 음식점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들이 모여 있어 SNS의 명소로도 이름을 날리며, 역사교육의 장인 동시에 관광자원으로서도 인기를 유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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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적산가옥과 거리 모습



# 마무리의 글


군산에는 현재에도 사용되는 다양한 지역과 거리의 이름들이 있다. 정감 있고 친근하게 들리는 '해망로', '월명동', '신흥동', '장미동'과 같은 지역의 명칭들은 그 유래와 역사를 찾아보면 아무 생각 없이 감성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름들임을 깨닫게 된다.


'해망로''바다를 바라보는 길'이란 뜻이지만, 실제로는 군산항을 통해 조선의 쌀을 일본으로 반출해 가기 위한 '수탈의 길'이라 할 수 있고, '월명동'이라는 고운 이름과는 달리, 실제로는 일본인 지주와 상인들이 터를 잡고 있던 지역이며, '신흥동'은 일본인 지주와 상인들이 이주하면서 새롭게 흥하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으로, 그 당시 비참한 가난에 내몰린 조선인들의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를 이루어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이름이다.


군산은 이처럼 근대 건축의 보고로도 불리기도 하지만, 그 내면에는 일제 침략과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도시이다. 최근 들어 군산에 다시 들러 보았을 때, 새롭게 조성되는 신시가지와 늘어나는 카페와 관광지에 비해 점점 더 초라해지고 낡아지는 구도심 건축물들이 애처롭게 눈에 밟혔다. 마치 점점 잊혀 가는 우리 민족의 아픔의 역사 같아서 더욱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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