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 도시 이야기
수년 전 2주간의 이탈리아 볼로냐 출장 일정 중에 휴일을 이용하여 피렌체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두 시간 남짓 이탈리아의 풍경을 감상하며 차를 타고 달리자, 어느덧 르네상스의 발원지라 불리는 피렌체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바쁜 일정으로 하루밖에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사실 피렌체는 어떻게 감상하고 둘러보느냐에 따라, 하루면 충분히 둘러볼 수도 있고 혹은 여러 날을 둘러봐도 터무니없이 모자를 수도 있는 르네상스의 신비를 간직한 도시이다.
피렌체라는 도시의 이름은, 로마제국의 기틀을 마련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영어식, 줄리어스 시저)가 도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아르노'(Arno) 강변의 만발한 꽃들을 보고 '꽃의 땅'이라는 뜻의 '플로렌티아(Florentia)'라는 라틴어 지명을 붙인 데서 유래한다. 그리고 피렌체의 도시 형태의 기원 역시 카이사르가 아르노 강의 한편에 군단의 주둔기지인 카스트룸(Castrum)을 설치한 것이 모체가 된 것이다.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발원지답게 거장들의 숨결이 담겨 있는 건축물, 조각, 회화작품들이 도심의 곳곳에 위치하고 있어, 도시 자체가 그야말로 르네상스의 숨결을 가득 품고 있다.
사실 피렌체에는 도시를 대표하는 두오모인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와 같이 건축적, 예술적으로 혹은 역사적, 인문적으로 다루어 볼 수 있는 수많은 명소들과 건축물들 있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던 장소 중 한 곳은, 바로 피렌체를 남과 북으로 나누며 가로지르는 아르노강을 건너는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와 '바사리 통로(Corridoio Vasariano)'이다.
'베키오 다리'의 이름을 직역하면, 구교(舊橋)라는 의미이다. 원래는 목재 구조였지만, 1170년에는 5개의 아치로 된 석조교량으로 탈바꿈하였고, 1333년 대홍수로 유실된 이후에는 오늘날과 같은 3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석조교량으로 재건되었다. 그리고 1566년 일종의 공중통로인 '바사리 통로'가 '베키오 다리' 위에 건설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만약 상부의 '바사리 통로'가 없이 '베키오 다리'만 건설된 채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다면, 그 모습이 어떨지 상상해 보라! 아마도 이토록 아름다운 다리로는 기억되지 못하고, 그저 평범하고 오래된 교량으로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바사리 통로'는 설계자 바사리(G. Vasari)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명칭인데, 이 통로에는 살펴볼만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몇 가지 숨어 있다.
'바사리 통로'는 사실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이 일반 시민들과 맞닥뜨리지 않고 아르노 강 남쪽에 위치한 저택 '피터 궁 (Palazzo Pitti)'에서 강 북쪽의 '베키오 궁 (Palazzo Vecchio)'까지 이동하기 위한 공중 통로이다. 단지, 그 당시 집권자들의 가족의 안전을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설계를 맡았던 '바사리'의 역량과 진정성 덕분에 추후 르네상스 거리를 구현하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상부의 '바사리 통로'는 하부의 '베키오 다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피렌체의 남과 북을 이어주고 피렌체를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한다.
베키오 다리는 원래 교량의 기능 외에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장을 보는 곳이었다. 당시 판매되는 물건들은 주로 아르노 강가의 생선이나 육고기 등이었는데, 생선을 손질한 뒤에 나오는 비린내 나는 찌꺼기들을 쉽게 버릴 수 있는 장소였기에 가판점들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베키오 다리를 가보면 귀금속 상점들이 즐비하다. 여기는 재미있는 사연이 존재한다. 당시 메디치가의 훼르디난도 대공은 바사리 통로를 통해 이동할 때 아래에서 올라오는 악취를 견길 수가 없어 베키오 다리의 상가 업종을 변경하고 거리를 재정비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당시 권력자의 독단적이고 이기적인 결정이 오늘날 베키오 다리를 유명하게 만든 원인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되었던 이후로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를 남북으로 이어주고 피렌체의 구도심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베키오 다리의 중간 지점에는 유명한 세공장인 첼리니(B. Cellini)의 청동으로 만들어진 흉상이 있다. 첼리니는 피렌체의 곳곳을 아름답게 공예로 장식한 르네상스 장인으로, 현재 그의 흉상은 많은 연인과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는 명소이다.
또 한기지 다행스러운 일화는 히틀러에 관한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에 군국주의 정권이 들어설 무렵, 히틀러가 무솔리니의 초대로 이탈리아를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 당시 바사리 통로를 걸으며 감상한 피렌체의 풍경에 크게 감동한 히틀러는 몇 년 후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군이 피렌체를 철수하면서 모든 교량을 폭하했지만 베키오 다리만은 남겨두었다고 한다. 만약 히틀러가 피렌체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베키오 다리는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유럽의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켜켜이 쌓여 있는 굴곡의 역사들을 보존하고자 하는 정신이 매우 부럽게 여겨진다. 도시의 정체성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보존하고자 애쓰는 그들의 모습은 오늘날 한국의 많은 도시들에서 경제적 수익에만 집착하여 맥락을 잃어버린 도시의 모습과 비교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이러한 도시 문화와 역사 퇴보에 경각심을 느끼는 이들이 하나둘씩 등장하며 점차 진정성 있는 도시 다워지는 모습이 한국에서도 엿보이는 것 같아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