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한 글, 행복한 글

한 뼘 수필

by 한 뼘 수필

스물 넷의 나는 교장 선생님 호출을 받는다.

토요일에 결혼식 주례를 해야 하니 주례사를 써 오라는 거였다.

국어 선생이라고 쉽게 생각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내 결혼도 한참 먼 아가씨가 남의 결혼식 주례사를 어떻게?

지금이야 검색하면 다 나오니 뭐 초딩이라도 쓰려면 쓰겠지만.

그때는 온전히 내 머리를 쥐어짜는 수밖에 없었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사랑하며 잘 사시오.


요는 이 한 마디인데 어떻게 살과 뼈를 붙여 긴 주례사로 만든다지?

하지도 않은 결혼생활을 상상하며 되도 안 한 말을 겨우겨우 적어서

교장 선생님 댁으로 갔더니 기다리다 지쳐 그냥 식장으로 가셨다고 했다.



국어 선생이라는 이유로 하명 받은 글이나 부탁받은 글을 종종 썼다.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난감한 글이 대부분이었다.

훈화, 축사, 송별사, 보도자료, 초대의 글 등등.

요즘은 말쑥하게 쑥 빠진 글들이 널려있으니 그런 청탁은 잘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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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여름, 정년 퇴임하시는 교장 선생님 송별사를 부탁받았다.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이 분은 학교를 온통 꽃으로 가득하게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그래서 학교 화단 뿐 아니라 학교 안팎의 담을 둘러가며 꽃을 심었다.

늘 목장갑을 끼고 꽃을 심거나 물을 주고 정성을 들여 가꿨다.

장미, 꽃잔디, 접시꽃, 데이지, 달맞이꽃 그리고 이름모를 꽃들까지.


어떤 선생님들은 꽃만 심다가 언제 일하느냐고 불평하기도 했다.

어떤 선생님들은 늘 흙을 만지며 꽃을 가꾸는 교장 선생님을 좋아했다.

애들이 수레에 가득 실린 튤립 모종을 보고 대파라고 해서 같이 웃기도 했다.

점심 시간에는 쌤들과 같이 꽃들이 가득 핀 교정을 걷곤 했다.

그리고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 떠나시면 이 꽃들은 누가 돌보지?

나도 이제 학교를 떠났으니 꽃들의 안부를 모른다.


나는 송별사를 쓰면서 교장 선생님과 교정의 꽃을 떠올렸다.

아이들이 꽃을 사랑하고 꽃처럼 환하게 자라길 바라는 그 마음을 생각했다.

머리카락 일도 쥐어뜯지 않았다. 한 올도 안 빠지고 술술 썼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의 꽃 3으로 송별사를 마무리 했다.


예뻐서가 아니다

잘나서가 아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도 아니다

다만 너이기 때문에

네가 너이기 때문에


나는 큰 아들 혼사 때도 며느리에게 주는 글에 이 시를 덧붙였다.


이유는 없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네가 너라는 사실!

네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고 사랑스런 것이고 가득한 것이다

꽃이여, 오래 그렇게 있거라.

행복한 글쓰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 교장 선생님과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동화 한 편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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