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은 여행이다

한 뼘 수필

by 한 뼘 수필

한때 백일장이 열리는 곳을 여행지의 목적지로 삼고 찾아다닌 적이 있다.

주제가 있는 여행이라고 할까?


서하백일장에 참가한다. 그러면 당연히 여행의 목적지는 백일장이 열리는 예천이 되는 식이다.

이조년 백일장에 참가하느라 고령으로 떠난 적도 있다.

서하백일장은 국순전, 공방전 등 가전체 소설로 유명한 임춘 선생을 기리는 행사이고

이조년 백일장은 이화에 월백하고로 유명한 매운당 이조년을 기리는 행사이다.

사실 나의 글쓰기는 백일장하고는 거리가 멀다.

나는 머릿속에서 구상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다.

무엇보다 고쳐쓰기에 많은 공을 들인다.

그러니 제 시간 안에 주어진 시제로 글을 완성하기가 어렵다.

아다시피 백일장은 현장에서 시제를 주고 몇 시간 안에 완성해서 제출하는 글쓰기다.

핸드폰으로 검색하지 못하도록 관계자들이 행사장을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런데 백일장에 온 사람들 중에는 바로 원고지에 일필휘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백일장에 학생들을 인솔해 가면 바로 원고지에 주르륵 적는 애들도 많다.

다들 천재 같다.

이조년백일장에서는 관계자들이 마지막 원고까지 다 정리해서 가려는 순간 내가 원고를 제출해서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선에 들지 못했다. 글도 안 좋았을 것이고 시간도 어겼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서하백일장에서는 마음을 굳게 먹고 어느 구석에 짱 박혀 열심히 썼다.

머릿속에서 너무 굴리지 말고 뼈대만 잡으면 바로 원고지에 옮기자고 결심했다.

쓰다보니 원고지가 모자랐다. 원고지 수령 장소까지 가려니 시간도 모자라고 마음이 급했다.

그때 어디서나 나타나는 홍반장처럼 남편이 짠하고 나타나 원고지를 대령했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그는 인근의 풍광을 감상하러 간다.

그날은 나의 의지가 너무 결연해 보여서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나름 술술 풀려서 기대를 했는데 또 선에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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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해에 나는 또 다른 백일장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남편도 기꺼이 동행한다.

평일에는 열심히 일 하니까 주말에는 푹 쉬어야 한다고 집에만 있는 내가 그나마 주섬주섬 일어나 어디론가 떠나는 게 백일장 현장이기 때문이다.

꽃그늘 아래 앉아 분식점에서 사 온 김밥을 나누는 것도 맛나고 재밌다.

보온병에 타온 믹스커피도 달달하고 따뜻하다.

백일장에 온 가족들의 정겨운 풍경도 이쁜 그림이다.

돗자리를 펴고 앉아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고 엄마는 글쓰기를 하는 모습.

평화로운 그 모습은 한참 구경해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시간 안에 원고지를 메워야하는 그 긴장감도 짜릿하다.

그래서 백일장에 가는 일은 즐겁다.

언제부턴가 백일장이 공모전으로 바뀌고 있다.

코로나가 한몫했고 공모전이 백일장보다 여러 면에서 진행하기에 단출할 것이다.

나도 등단을 하고부터는 백일장에 참여하지 못한다.

공모전은 신인, 기성문인 구분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백일장은 거의 기성문인은 참여하지 못한다.

그래도 백일장의 열기가 좋아서 간 적도 있다.

백일장의 맛은 뭐니뭐니해도 현장감이다.

축제와 겸해서 열리기도 한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한번쯤 경험하길 권한다.

돗자리 펴고 봄 햇살 아래서 배 깔고 엎드려 흘러가는 구름 한 조각으로 시심을 엮어내고

바람 한 줄기로 글귀 한 구절 마련하는 시간들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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