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죽번죽 아재 개그

한 뼘 수필

by 한 뼘 수필

남편은 기록의 대마왕이다.

어? 그런 것까지?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다 기록한다.


마트에 갈 때마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 구입품목을 메모해 가면 시간을 절약하고 합리적인 구매를 할 수 있잖아.

아무리 말해도 귓등으로 듣는 내가 못마땅하다.

나는 그다지 메모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긴다.

필요한 물품 뿐 아니라 그날의 상황에 따라 또는 눈에 들어오는 걸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난주, 정말 꼭 사야 하는 물건을 사지 못했다.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정작 마트에 간 목적을 잊어버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이 났다.

유턴해서 다시 마트로 가는 동안 나는 한소리 들을까 봐, 남편 눈치만 봤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도 별 말이 없다.

안심이 된 내가 설치고 다니니까 남편이 말했다.


- 적자생존이다. 명심 좀 해라.

- 어? 갑자기 적자생존은 왜? 뭔 말이야?

- 적자! 생존! 적는 것만이 살 길이다.

와우, 내가 한 짓이 있으니 그때는 가만히 있었지만 저녁을 먹으며 내가 남편에게 엄중하게 말했다.

- 아재개그 다시는 하지 마시요. 정말 재미없어.

- 재미없어?

- 어.


남편과 식당을 갔다. 산책 중에 눈여겨본 곳이라 자신 있게 앞장섰는데 길치라 헷갈렸다.

- 어, 분명 이 근방인데.... 어디지? 영 감을 못 잡겠네.

내가 중얼거리자 남편이 말했다.

- 영감을 어떻게 잡아, 큰일 날 소리.

와~ 내가 걸음을 멈추고 남편을 째려봤다.

- 아재개그 하지 말랬지. 지금 이 상황에 그런 썰렁한 농담이 나오나?

- 지금 상황이 뭐 어떤데?

- 암튼 하지 마. 그 입 다물어 주시오. 나, 분명히 말했어요!


며칠 전 진주에서 대구로 오는데 IC에서 차가 한참 막혔다.

그래도 기분 좋았던 여행이라 별생각 없이 앉아 있는데 남편이 말했다.

- 이래 막히니 아이씨구나.

너무 어이가 없어서 픽, 웃었다.

남편은 좋다구나 싶었나 보다.

- 오, 이건 좀 재밌나 보네, 그렇지?

내가 말했다.

- 아니, 아니올시다. 제발 좀 하지 마. 왜 자꾸 아재개그를 못 버려, 어?


정말 이상하다.

남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느 자리에서나 열심히 경청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슬금슬금 썰렁한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내가 정의를 내렸다.

아재개그는 썰렁하고, 당사자만 재밌다. 하지 말라고 해도 기어이 하고 마는 뻔뻔 코드다.


나의 정의에 남편이 말했다.

- 음, 한마디로 언죽번죽이란 말이네.

- 그니까 이제 정말 하지 마. 부탁이오.

남편이 흐흐, 웃더니 혼자 구시렁거렸다.

- 할배 다 된 사람한테 자꾸 아재개그라고 하니까 좋아서 그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