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큰 조카와 큰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던가? 몇 개월 차이로 둘 다 같은 학년이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시댁에 갔는데 형님이 말했다.
"밥은 내가 할 테니 동서는 국어 좀 가르쳐줘."
일을 하지 않아서 신난 내가 아이들을 앞에 앉히고 시험대비 공부를 시켰다.
듣기, 말하기 단원이었다.
요즘은 보통 말하는 이, 듣는 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 교과서는 화자, 청자라고 했다.
한참 설명하고 있는데 두 녀석이 지들끼리 화자니, 청자니 속닥대면서 큭큭 웃어댔다.
반응이 수상해서 조카에게 먼저 물었다.
"청자가 뭐지?"
조카가 내 눈치를 살피면서 대답했다.
"작은 엄마, 고려청자 맞죠?"
세상에, 국어 공부를 하면서 청자를 고려청자라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설마 청자니, 화자를 사람 이름으로 알고 지들끼리 키득거린 건가?
아니, 야들은 대체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뭘 한 거지?
이번에는 아들한테 물었다.
"청자가 뭐지?"
사촌의 대답에 지 엄마의 어조와 눈초리가 뭔가 심상치 않다.
내 얼굴에서 그런 기색을 읽었는지 아들이 웃음기를 거두고 우물쭈물 대답했다.
"고려.... 청자가 아니면, 엄마.... 항아리?"
아이고! 웃음과 탄식이 같이 쏟아졌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됐다. 공부는 너네 알아서 하고 씩씩하게만 자라다오."
아이들은 씩씩하게 잘 자랐다.
어디 가서 내세울 만큼 잘한 적은 없지만 다들 남에게 폐 안 끼치고 착하게 살고 있다.
제 밥벌이도 착실하게 아주 잘하고 있다.
꽃게들일까, 복숭아들일까.
울 아이들하고 조카들이다.
어느 해 여름 저녁, 서해를 아름답게 꾸미고 있는 이쁜이들이다.
꽃게처럼 옆으로 자꾸 달아나려고 해서 애를 먹인 적도 많지만 다들 벗나가지 않고 잘 커주었다.
나란히 앉아서 바다에 손을 담그고 열중하고 있는 모습처럼 의좋은 형제 또 사촌지간으로 나란히 미래의 시간들도 함께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