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뼘 수필
오래전 일이다.
고치지 못한 평소 습관 때문에 아빠에게 주의를 듣던 큰 애가 눈물을 흘렸나 보다. 남편은 갑자기 열을 올리면서 “사내자식이 울긴 왜 울어?” 소리를 냅다 지른다. 요즘 들어 부쩍 날카로워진 남편의 심기를 알기에 모른 체했지만 남자는 왜 울면 안 되나, 혼자 구시렁거렸다.
근래 남편은 지방으로 발령을 받았다. 이왕이면 출·퇴근이 가능한 곳으로 발령 나길 바랐는데 다행히 원하는 곳으로 결정되었다. 어찌나 좋은지 만세도 부르고 손뼉도 쳤는데 기쁨은 잠시, 날마다 피곤에 절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무겁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하고 맡은 일을 대충 하는 성격도 아니고 보니 제대로 휴일도 없을 지경이다. 대추를 끓이고 사골을 고아 바치지만 입이 깔끄럽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내게 단세포 동물이라고 놀림을 받을 만큼 낙천적인 사람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나는 이제껏 남편의 그런 무표정하고 찌든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게 안쓰럽고 속상하다. 그런 한편으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화가 났다.
“평생 해야 하는 일, 신나고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닌가? 제때 자지도 못할 만큼 많은 일이라는 게 대체 뭐지?”
내 물음이 그에게는 철없이 들리는지 쓴웃음만 짓고 만다. 그래도 섭섭할 겨를이 없다. 그가 가끔, 회사 때려치우고 낚시나 다녔으면 좋겠다고 할 때면, 뻔히 농담인 줄 알면서도 듣기 싫어 잔소리를 늘어놨던 일도 마음에 걸리는데 ….
과로로 인한 우리나라 40대 남자들의 건강상태는 이미 위험수위라고 하잖는가?
“우리나라 40대(현시점에서는 60대)는 농경사회에서 태어나 산업화 사회에서 살다가 정보화 시대에 죽는 유일무이한 존재”라고 한다.
우는 것을 남자의 수치라 여기고 속내 드러내 보이는 것을 못난 짓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40대는 대부분 알게 모르게 우울증을 앓고 있다. 몰라서 그렇지, 집중이 안 되고 기억력이 줄고 무기력증을 느끼고 소화가 안 되고 무슨 일을 해도 재미가 없이 심드렁하면서도 불안하고 짜증이 나는 증상들이 다 우울증이라는 거다.
또 일벌레라는 말을 들을 만큼 일에 빠지거나 주식이나 잡기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 또한 우울한 증상의 발현이라는 신경정신과 의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만히 둘러보라. 이런 증상 하나쯤 없는 남편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세상의 짐은 다 저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걸로 믿고 있는 세대들이다. 돈 걱정에, 살아가는 일의 막막함에 입술이 부르트고 소화가 안 돼 꺽꺽 신트림을 올려대도, 곧 죽어도 바깥일을 안에다 징징대지 않는 게 사내라고 생각하는 게 안쓰러운 우리의 남편인 것이다. 젊은 시절의 열정과 신념도 사라지고, 이 남자들은 그저 밀려나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오늘도 꾸부정한 어깨를 하고 집을 나선다. 그러면서도 변변히 한번 울지도 못하는 못난이들인 것이다.
* <한겨레 신문>에 이 칼럼을 쓴 지 이십 년이 지났다. 세상의 짐을 저 혼자 다 짊어지고 가는 듯 고뇌하던, 성실했던 40대는 이제 60대 은퇴자들이 되었다. 이들은 이제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가? 그들은 이제 안녕하고 편안한지.... 옛날 일을 구태여 다시 끄적이는 것은 이들에게 지금 세상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서이다.
아니, 지금의 40대는 그 시대의 40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