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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장 반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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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Oct 03. 2024

오우무아무아

[한 장 반]프로젝트20

By 한작


처음 외계 신호를 잡은 곳은 ALMA의 한국천문연구원이었다. 성간 천체로 추청 되는 미확인물체는 ‘오우무아무아’와 같이 얇고 긴 이질적인 형태였고,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이상하리만큼 느린 속력이었다. 


처음엔 이 새로운 천체를 ‘손님’이라고 불렀다. 까마득히 먼 곳에서 찾아온 외계 천체였기에 남의 집을 방문한 사람을 높여 부르는 순 우리말로 지어졌다. 손님으로 불릴 때만 해도 외계 천체 뉴스는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화제가 되고 끝날 일이었다. 평범한 사람에겐 ‘손님’이나 ‘헬리’나 다를 게 없었다. 


‘손님’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아주 미약하고 알 수 없는 신호가 함께 잡히고 있었다. 우주 전파나 간섭 정도로 치부되었던 신호였지만 ‘손님’이 다가올수록 신호는 뚜렷해졌고, 그 신호의 정체가 밝혀지자 세상이 뒤집어졌다. 


손님이 보내온 신호는 인사말이었다. ‘손님’에서 나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 신호는 ‘안녕하세요’, ‘Hello’, ‘Bonjour’, ‘สวัสดีครับ’ 같이 전 세계의 언어로 된 인삿말이었고, ‘손님’은 그렇게 지구로 접근하고 있었다.


지구의 언어로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새로운 천체는 단박에 뉴스의 중심이 되었고, 곧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새로 얻은 천체의 이름은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뜻하는 순 우리말 ‘벗님’이었다. 세상은 온통 ‘벗님’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사람들은 외계인의 발전된 기술을 전수받아 우주세기의 일원으로 당당히 데뷔한다는 미래를 꿈꿨다. 일부 부정적인 사람들은 인류는 외계인의 애완견이 될 거라며 소란을 피웠지만 인사를 하며 다가오는 외계인이 그럴리 없다는 여론이 대세였다. 게다가 UN의 입장은 충분히 방비를 하겠지만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내며 다가오는 외계인이라면 환영한다는 입장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벗님’의 정체가 하나 둘 밝혀지기 시작했다. 길이는 약 500미터 정도로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두 배 정도 되는 크기였고 확실하게 동력을 보유한 구조물이었다. 꾸준히 궤도를 수정하며 지구로 향하는 ‘벗님’은 도착까지 두 달 정도의 시간만을 남겨두었다. 


그 사이 지구에선 돌고래의 초음파와 세계 각국의 언어, 그리고 인류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외계비행체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보냈다. 외계구조물이 가까워질수록 신호도 점점 뚜렷해졌다. 이젠 일반인들도 그 신호를 받아 외계에서 전달된 인류의 인사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 인류의 목소리만 들릴 뿐 외계인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뉴스에선 목소리라는 것 역시 너무나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라며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우호를 뜻하는 바디랭귀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외계구조물은 태평양 상공에 도착했다. 인류는 최선을 다 해서 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지구에 있는 포유류, 파충류, 조류의 우호적인 몸짓과 소리를 전달했고, 인류의 목소리도 보냈다. 6일 동안 인류는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외계구조물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7일째 해치가 열리면서 인류는 외계인의 방문 목적을 알게 되었다.


드론과 유사한 형태로 움직이는 소형 비행체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지표면의 대부분 동물과 식물을 녹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인류는 대항할 순간도, 능력도 없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설탕이 녹듯 모든 게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지표면의 유기물이 모두 녹아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우린 외계인의 목적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찾은 건 인류가 우주 탐사에서 단 한 번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단백질과 엽록소. 명확하게 그것 뿐이었다.


우리는 우주세기의 일원도 아니었고, 외계인의 애완견도 아니었다. 우린 그냥 식량을 뿐이었다. 단백질이라는 공통점 외에 바퀴벌레와 인류를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단 하루만에 지표면 유기체의 대부분을 포획한 외계구조물이 떠나는 순간, 얼마 남지 않은 인류는 구조물에서 나오는 신호가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순간 깨닫고 말았다. 외계인이 보낸 신호는 인사가 아니었다. 우리가 인사말이라고 생각했던 건 1977년 보이저 1호에 우리가 실어 보낸 메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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