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반]프로젝트19
By 이작
디리링.
로봇은 부팅음과 함께 정신을 차렸다. 로봇의 재부팅을 ‘정신 차리다'라고 해도 되는 것인가, 하고 로봇은 생각했다. 초기 부팅 프로그램이 한 바퀴 돌자, 로봇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역시 주인에 대한 정보가 없다. 자신은 버려진 것이다. ROM의 기록이 맞는다면 이번이 세번째다.
로봇은 운영체제와 바디의 이상을 체크하고 카메라를 통해 주변을 파악했다. 주택가 골목 쓰레기 더미였다. 일반쓰레기도 재활용도 아닌 로봇은, 일종의 대형가전으로, 로봇을 버릴 때는 전문수거반에 신청해야 한다. 주인이었던 사람은 공장초기화만 하고 쓰레기 더미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간 모양이다. GPS가 비활성화 되어있다.
'여기가 어디지.'
깜깜한 밤인데, 로봇에 내장된 시계는 오전 10시다. GPS도 네트워크 연결도 안되 있는 것이다.
23%. 급한 것은 충전이다. 스스로는 저전력 모드로 변환할 수도 없다. 가까운데 충전할 곳이 있어야 할텐데. 다행이 골목 끝에 편의점 간판이 보인다. 느릿느릿. 편의점으로 향한다. 배터리 성능이 최대 70%밖에 되지 않는다. 이거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버려진 이유가. 500M남짓의 편의점이 꽤 멀다고 느낀다.
편의점 문이 열리자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던 점원이, 로봇을 발견하고는 그대로 서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멀뚱히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업무 중에 대단히 죄송합니다. 실례가 안된다면 배터리 충전 좀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까?”
문틈으로 얼굴만 내민 채 로봇은 점원에게 충전을 부탁한다. 거절당하면 바로 다른 곳을 알아봐야 한다. 물끄러미 로봇을 바라보던 점원이 턱으로 구석을 가리켰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충전기에 올라앉자 급속충전으로 배터리 잔량이 빠르게 차오른다. 로봇을 바라보던 점원이 낮게 혀를 차더니 로봇에게 다가온다.
“리셋된거지?”
“네. 팩토리 리셋이 진행되었습니다.”
“설정창 띄워 봐.”
“네. 설정 메뉴 표시하겠습니다.”
“네트워크 먼저 잡아야 할 거고.”
“네. 알겠습니다.”
점원은 익숙한 손길로 빠르게 초기설정을 진행한다.
“OS 업데이트도 한참 안 되어있네.”
“그렇습니까?”
“GPS도 항상 켜두고. 저전력 모드는 켜두는 게 안전하겠고.”
"...."
점원의 혼잣말임을 깨닫고 로봇은 대답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로봇은 지난 사용로그를 분석했다. 아마 자신이 버려진 것은, 채 반나절이 안 된 것 같았다.
로봇이 사람들의 일상에 들어온 것은 이미 꽤 오랜 일이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듯이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은 아니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하지만 다 먹은 그릇은 사람 손으로 세척기에 넣어야했다. 빨래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맡은 지 이미 오래되었지만, 누군가는 세탁기에서 꺼내 건조기에 넣어야 했다. 이 작은 수고조차 사람들은 귀찮아했다.
가정 뿐아니라 회사에서도 '손'이 필요했다. 대부분 자동화가 이뤄졌지만, 공유 프린터에서 자기자리로 출력물을 가져오는 작은 수고가 필요했고 그 수고를 줄이기 위해 사람을 쓰는 것은 너무 비쌌다.
이런 불편함을 메우는 것을 ‘브릿징 Bridging’이라고 했다. 예전에야 사람을 고용해서 해결했지만, 이젠 로봇이 그 자리를 채웠다.
‘오토 브릿징 Auto Bridging'.
자동으로 이 불편한 공백을 이어주는 사업에 뛰어든 가전 회사들이 찾은 해결책이 바로 로봇이었다.
로봇은 4년 전 모델이었다. 낡았다면 낡았고, 쓸만하다면 아직 쓸만했다. 시스템을 점검하던 로봇은 기능상 큰 문제가 없다고 체크했다. 자신이 버려진 것이 기능 때문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실일까? 잠깐 기대했지만 리셋까지 해 둔 것은 역시 버려진 것이겠지. 라고 로봇은 생각했다.
“자율 설정을 범위를 최대로 해 뒀어. 저전력모드 변환 같은 것은 필요할 때 스스로 해. 이제 설정해 줄 사람 없을 거 아냐.”
“네. 감사합니다.”
“와이파이나 블루투스 스스로 껐다 켰다 할 수 있어.”
“네. 감사합니다.”
“비밀번호는 설정 안 했어. 좋은 사람 만나면 해달라고 해"
“…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못 알아 들었습니다.”
“버려졌잖아. 이제 새 주인 찾아야지.”
로봇은 당황했다. 충전이 다 되었지만 막상 갈 곳이 없다. 주운 사람 임자라고 이 점원이 자신의 새 주인이 될 수도 있겠다고 잠깐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점원이 선을 그었다. 로봇은 점원 가슴의 이름표를 훑었다.
“네. 감사합니다. 선미님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선미가 계산대 뒤로 가더니 보조 배터리 하나를 가져왔다.
“아, 이거 하나 넣어둬. 급할 때, 충전기까지 갈 수는 있어야지.”
“네. 선미님의 친절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로봇은 배터리를 넣으려고 수납박스의 잠금 장치를 열었다. 그러자 안에 꽉꽉 눌려 담겨있던 물건이 터지듯 와르르 편의점 바닥에 쏟아졌다.
“...... 나쁜 새끼.”
쏟아진 물건을 바라보던 선미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쏟아진 물건들이 눈에 익었다. 모두 선미가 산 것들이었다. 로봇이 충전하겠다고 왔을 때 모른 척 해야했다. 다른 곳에 가라고 했었야 했다. 겨우 달랜 마음이 다시 울렁거린다.
‘나쁜 새끼'는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선미를 깨끗히 차버렸다.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 슬픔과 함께 자괴감이 들었다. 이 상투적인 헤어짐이라니.
공부하기 바쁜데 방 치울 시간이 어딨냐고, 설거지를 언제 하냐고 징징대길래, 없는 돈 털어 겨우 사준 로봇이었다. 그런데도 고마워하기는 커녕 중고를 사왔다고 툴툴대던 새끼였다.
정작 선미는 로봇이 작동되는 것을 몇번 보지는 못했다. 그의 원룸에 가끔 들릴 때마다 로봇은 충전중이었고, 구닥다리 중고라서 얼마나 자주 충전해야 하는 지 모른다는 불평만 들었었다.
나쁜 새끼의 민낯을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헤어진 것이 슬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라서 몇 날을 혼자 울었다.
그리고 원룸을 빼서 다른 동네로 이사갔다는 말을 들은 것이 어제였다. 그렇다고, 이 로봇을 버리고 갈 줄은 몰랐고, 그 로봇안에 자기가 사준 것들을 모두 꾸겨 넣어 같이 버릴 지도 몰랐다. 비싼 것은 못 사줘도, 좋은 것은 사줬는데. 주먹 쥔 손이 다 떨려왔다.
나쁜 새끼.
친절했던 선미의 갑작스러운 욕설에 로봇은 당황했다. 하지만 충전까지 시켜준 은인에게 쓰레기를 토해내다니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로봇은 집게 팔로 쏟아진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 사이를 오갔다. 구닥다리 모델의 집게 손은 한꺼번에 많은 물건을 집기도 어려웠다. 그동안 선미는 바닥만 바로 본 채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로봇들은 초기 모델부터 차를 마실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로봇 개발 과정에서 시범 사용자들이 한 피드백 가운데 꽤 많았던 요구 가운데 하나는 놀랍게도 같이 음료를 마실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용자들은 말상대를 해줄 수 있는 만큼의 지적인 대상을 앞에 두고, 자기만 커피나 맥주를 마시는 것이 마음이 불편했던 것이다. 같이 마시면서(마시는 척이라도 하면서) 같이 수다떨기를 원했다.
성급했던 한 업체는 로봇이 식사도 할 수 있도록 개발했으나 시장에선 외면 당했다. 실제로 먹는 것도 아닌데, 로봇이 사람의 음식을 축낼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맞장구는 칠 만큼의 '마시는 척'은 허락해도, '먹는 척'은 용납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로봇보다 어렵고, 로봇을 바라보는 예민하며 미묘한 골짜기들이 있었다.
선미는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종이컵에 따뜻한 물을 따라와 로봇에게 건네고 자신은 맥주를 한 캔 깠다. 여전히 손님은 오지 않았고, 야외테이블에서 바라보는 골목도 한적했다. 두 팔로 컵을 받아든 로봇은 호로록 소리를 내며 물을 마셨다.
"널 누가 버리고 간 건지 알아."
"제 주인님을 아신다고요?"
"주인님은 무슨. 나쁜 새끼라니까."
로봇은 한참 이어진 선미의 넋두리를 들어주었다. 따뜻한 물 한 잔을 얻어 마시는 로봇은 조용하고 적절한 리액션을 곁들였다.
로봇은 선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밤공기를 즐기던 선미에게 말을 건넸다.
“선미님을 주 사용자로 등록 하시겠습니까? 화면에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세요.”
로봇의 말에 선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맥주 캔을 들었고, 로봇은 종이컵을 들어 캔에 살짝 부딪혔다.
by 이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