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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한 장 반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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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 Sep 27. 2024

우로보로스

[한 장 반]프로젝트18

By 한작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사람이 탈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결국 국가 주도로 타임머신이 완성되었다. 과학자들은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타임머신의 가동에 조심스러웠다. 자칫 예산 낭비라는 여론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했던 과학계는 적당히 실리도 챙기면서 여론의 공격을 피할 방법을 찾던 중 타임머신의 첫 임무를 공모하기 시작했다.


공모가 시작되자 온갖 아이디어들이 응모되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화제를 막아보자는 의견부터 미국이 건국될 때 미터법만 알려주자는 깜찍한 의견, 뉴턴에게 주가 정보를 주자는 의견과 네안데르탈인에게 농경법을 알려주자는 주장도 있었다.


수많은 의견 가운데 과학자들이 선택한 건 1,000년 뒤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아이의 의견이었다. 이런 의견을 택한 건 과학자들의 바람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걱정하고 해결책을 구하는 주제는 열대화였다. 


이미 시기를 놓친 기후대책으로 100년 전과 비교해 해수면은 3미터 넘게 상승했고,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시데리아기에 있었던 ‘눈덩이 지구’ 상태로 돌아간다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었다. 낙관론이라고 해봐야 폭염과 혹한이 반복될 거라는 예측 정도였다. 초열지옥과 한빙지옥을 견디는 게 최선의 결과일 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다.


백약이 무효한 시점에서 1,000년 뒤 미래를 보고 싶다는 아이의 의견은 과학자들의 입맛에 맞는 주제였다. 순수한 아이의 소원도 들어주고, 더불어 인류가 지금 실행하고 있는 기후대책들이 효과가 있는지 확인할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었다. 과학자들은 가장 순수한 아이의 의견이라는 방패로 실체를 가리고 타임머신을 사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타임머신과 함께 보낼 로봇은 30년도 더 된 구형 제품이었다. 태양열로 작동하며 크기도 60센티미터에 불과한 제품. 간단한 집안 청소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이지만, 온도와 습도 체크가 가능하고 영상 기록을 지원하며 음성 명령이 가능한 청소 로봇은 이번 임무에 적격이었다. 


녹화와 녹음 상태를 확인하고 조사해야 할 하천과 바다, 습지, 초원의 내용을 프로그래밍 한 뒤 타임머신을 작동하자 로봇은 하얀 김을 일으키며 흙먼지에 뒤덮여 버렸다. 


군데군데 낡은 모습과 깨진 카메라 렌즈로 봐서 타임머신은 성공이었다. 1초도 안 된 시간이었지만 청소 로봇은 2년 간 지구 곳곳을 조사하고 온 게 틀림없었다. 과학자들은 숨을 죽이고 청소 로봇에 녹화된 영상을 확인했다. 불행히도 데이터는 모두 손상되어 확인할 수 없었기에 준비해 둔 질문을 로봇에게 묻기 시작했다.


“1,000년 뒤에 지구의 날씨는 어떻지?”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380PPM, 평균 기온은 섭씨 15도, 반사율은 0.367입니다.”


과학자들은 낮게 탄성을 질렀다. 믿기 어려울 만큼 안정적인 수치였다. 눈덩이 지구도, 초열지옥도 아니었다. 흥분한 과학자들은 로봇에게 재차 물었다.


“인류는! 인류는 지금처럼 번성하고 있나?”


“인류는 모든 대륙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안드로이드의 말이 끝나자 낮게 깔리던 탄성이 환호로 바뀌었다. 서로 얼싸안고 환호하는 과학자들은 벌써 지구 열대화를 극복한 것처럼 흥분해 있었다. 기적과 같은 인류의 생존 소식 속에 누군가가 다시 청소 로봇에게 다가가 물었다.


“모든 대륙이라면 남극에도 인류가 살고 있나?”


“네. 모든 대륙에서 생존 중입니다.”


“1,000년 뒤 인류는 어떤 모습이지?”


“네. 인류는 신장 176센티미터, 체중 90킬로그램이며 검은 눈동자를 지녔습니다. 팔은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며, 등은 검습니다.”


청소 로봇의 대답에 흥분과 환호가 물을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다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 용감하게 물었다.


“인류는 모두 같은 외모를 가졌나?”


“네.”


이제 청소 로봇 말하는 인류가 무엇인지 대부분 짐작하고 있었다. 최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산림 관리용 안드로이드. 자연림을 조성하고 산불 진화 능력까지 있어 여러 열대화 대책 가운데 하나로 이제 막 추진 중인 프로젝트였다. 


서로의 숨소리까지 들리는 침묵을 깬 건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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