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반]프로젝트17
By 이작
“… 그러니까 오빠 말은 … 거짓말하면 사람 코가 진짜로 길어진다는 거야? 피노키오처럼?”
“실제로 코가 길어진다기보다 그런 신체 반응이 있다는 거야. 예를 들어서, 사람이 거짓말을 해서 긴장을 하면, '카테콜아민' 이라는 물질이 나와서 혈압이 높아지거든. 그럼 콧 속의 조직이 팽창되면서 코끝이 간지럽게 되는거야. 그럼 자기도 모르게 코를 긁거나 만지게 되지. 그런 걸 ' 피노키오 효과'라고 부르거든. 이 어플은, 말하면서 코를 만지는 걸 인식하면 거짓말이라고 판단하는거야.”
“아하! 이제 그러니까 오빠가 그걸 개발했다는 거잖아, 거짓말탐지기!”
“……. 보여줄게. 이렇게 앱만 켜고 영상을 찍으면 되거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가현의 눈을 보며 주민은 사랑스럽다는 듯 가현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원리 따위야 못 알아들으면 어떤가, 이렇게 귀여운데.
주민이 개발한 피노키오 앱은 거짓말탐지기다. 기존의 거짓말탐지기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폴리그래프 형태로, 호흡, 맥박, 혈압, 땀 등의 자율신경계의 반응을 읽거나, 뇌파탐지기를 이용해 감출 수 없는 뇌파의 변화를 읽어 거짓말을 판단한다. 또 하나는 피부의 떨림이나 얼굴 표정 등으로 변화를 잡아내는, 바이브라 이미지를 이용하는 형태다.
두 가지 모두 특별한 기계가 필요했지만 주민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가벼운 버전이었다. 카메라가 읽을 수 있는 반응 즉, 표정의 변화, 눈동자의 움직임,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제스쳐 같은 것만을 판독해서 거짓말을 가려내는 간단한 앱이었다. 어차피 돈 받고 만들어주는 거라, 딱 그만큼만 만들었다.
그래도 학습은 꽤 많이 시켜서 제법 성능이 뛰어났다. 기대하는 가현의 눈빛에 테스트용 폰을 설치했다. 세발낙지 같은 세 발 삼각대에 폰을 고정하고 가현을 앵글에 담는다.
“동영상을 찍으면 앱에서 찍히는 사람의 몸짓이나 얼굴 반응을 읽는 거야. 목소리도 따고. 기존의 거짓말탐지기처럼 땀이나 심장박동 같은 것을 측정하는 건 아니라서 훨씬 간단하지."
영상을 찍는다고 하니, 손거울을 꺼내 얼굴을 확인하는 가현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난다. 지잉. 지잉. 뒷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보니 윤석이 형의 메시지다. 이 앱을 주문한 고객.
- 다 됐지? 내일이 과제 제출이다.
시험 대신 앱 개발 과제로 평가받는 수업이라고 했다. 낙제만 면하게 해달라며 아무거나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성격은 개차반이지만 돈은 잘 썼기에 주민한테도 좋았다. 되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었다.
"오빠, 누구야?"
“아 윤석이 형. 윤석이 형 알지?”
“어? 누구? 잘 모르겠는데?”
그때, 가현의 얼굴을 찍고있는 피노키오 앱에서 노란 동그라미가 반짝인다. 어라. 지금 이 불이 왜 켜져?
“뭐야, 전에 같이 만나서 술도 먹었잖아. 윤석이 형이 너한테도 과제 하나 물어본다던데. 너 들었던 수업 듣는다고. 연락 안 왔어?”
“아! 강윤석 선배! 알지. 이름만 부르니까 잠깐 헷갈렸다. 메일로 자료 몇개 보내주고는 잊고 있었네. 별일 아니라서 오빠한테 말한다는 걸 그냥 지나갔다.”
이제 앱에서는 붉은 동그라미가 반짝거린다. 피노키오 코가 길어진다. 이게 왜 이러지? 폰을 돌려 가현에게 화면을 보여주려다가 멈칫했다. 가현이 화면을 못 보는게 다행이다. 아니 다행인 게 맞나? 무엇에 반짝이는 거지? 윤석이 형 이야기를 하나 더 물어야 하나? 주민의 머리 속에서도 붉은 불빛이 번쩍거린다. 목구멍은 무엇이 걸린 듯 답답하다.
"... 윤석이 형이 고맙다고 커피 한 잔 샀다던데?
"아, 그랬지 참. 근데 뭐야, 오빠? 그거 잘 안 돼?”
“어? 어! … 갑자기 이게 잘 안 되네. 이상하다..”
“에이 뭐야. 잘 맞추나 못 맞추나 보려고 거짓말 하나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냥 밥 먹으러 갈까?”
“그, 그래.”
가현은 바라보는 사람까지 배고파 질 정도로 잘 먹는 편이었다. 어른들 말처럼 복스럽게 먹는다기 보다, 예쁘게도 잘 먹었다. 작은 입으로 볼을 잔뜩 부풀린 채 오물오물 맛나게 먹었다. 늘 잘 먹으니 밥 사는 보람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가현은 숟가락이 넘치도록 밥을 잔뜩 퍼 올려, 더 들어갈 공간도 없는 주둥이에 꾸역꾸역 밀어 넣고 있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다. 좀 삼키고 먹든지. 입에 음식을 그렇게 가득 쳐 넣고 말은 왜 그렇게 많은가.
“이거 맛있다! 오빠 왜 안 먹어? 어플이 안 되서 속상해서? 금방 고치잖아. 오빠는 잘 하니까.”
“응, 사실 집에서 뭘 좀 먹고 나왔거든. 너 많이 먹어.”
앱을 마무리하느라 어제 밤부터 끼니를 걸렀다. 주민은 ‘지금 이런 내 표정도 판독할까’ 궁금해졌다. 그래, 작은 오류가 발생했을 것이다. 앱을 마저 손 봐야겠다고 가현과 서둘러 헤어졌다.
지이이이잉. 윤석의 전화다.
“야, 왜 읽고 답이 없냐? 아직 안 됐어?”
“아 형. 미안. 마무리 하느라. 이제 다 됐어. 지금 집으로 갈게."
윤석이 형 집은 두 번쯤 와봤지만, 아직도 편하지가 않다. 잠시 확인하겠다는 보안요원 앞에 멀뚱 서서 아파트 로비를 구경한다. 무슨 아파트가 집까지 가는데 보안요원을 세 번을 만나야 한다. 옆 동에 산다던 연예인이 누구라더라. 부모 잘 만나서 이런 집에 살면, 그래 과제 따위야 아빠 돈으로 하는 거지. 졸업하고 아빠 회사 들어갈텐데 학점이 뭐가 중요하겠어.
윤석이 내 온 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주민은 주섬주섬 노트북과 테스트 폰을 꺼내 설치한다. 침을 꿀꺽 삼킨 주민은 태연한 척 윤석에게 묻는다.
“아참, 형! 가현이는 만났어? 전에 과제 뭐 물어 본다고 했잖아?”
“어? 어! 만나기는 뭘. 메일 있는데. 도움 잘 받았어.”
“교재 때문에 만나서 받았다며?”
“그, 그랬지. 맞아. 책 받느라 만났지. 내가 요즘 깜빡깜빡한다.”
화면 속의 붉은 램프도 깜빡깜빡한다. 붉은 얼굴의 피노키오가 나를 보고 키득키득 비웃는다.
주민은 윤석에게 원리와 앱 구동 방식을 설명했다.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윤석은 주민이 하는 발표를 외웠다가 수업 때 그대로 쓸 것이다. 어플 시연을 위해 주민은 동영상을 검색해서, 앱에서 재생한다. 스타를 한 명씩 초대해서 인터뷰하는 토크쇼다.
진행자가 출연한 여배우에게 사업가 김씨와의 열애서를 묻자, 모임에서 한 두 번 만난 지인이라며 까르르 웃는다. 배우의 얼굴을 스캔하던 피노키오가 붉은 램프를 깜빡인다. 거짓말. 이건 지난 겨울 방송으로, 저 여배우는 봄이 되자 혼전 임신 소식과 함께 사업가 김씨와 결혼을 발표했다.
“야, 주민아. 이거 대박이다. 과제 수준이 아닌데, 이거! 실시간으로도 잘 되는거야? 지금 테스트 해 볼 수 있냐?”
방금 전에도 성능을 확인했다. 윤석을 상대로.
“어 그럼. 여기 이 테스트 폰에 깔아 뒀어. 이 폰으로 해보면 돼.”
“이야, 이걸 누구한테 테스트를 해볼까?"
다음날 저녁, 윤석은 주민을 술집으로 불러냈다. 자기 여자친구와 바람을 피웠을 지도 모르는, 아니 바람난 것이 분명한 윤석을 앞에 두고 자기는 왜 한마디 못하고 술을 얻어먹고 있는 것인가. 주민은 평소보다 일찍 취했다.
“주민아. 이거 나한테 팔아라.”
“어제 나한테 입금했잖아요. 뭘 또 팔아요.”
“니 말대로 어차피 내가 주문해서 만든거니까 이거 내꺼는 맞지, 응? 코드랑 다 넘겨. 아니 아예 계약서를 쓰자.”
“......”
“솔직하게 말할 게. 내가 요즘 우리 아버지한테 좀 쪼이냐? 요새 뭐하고 다니는 거냐고 닥달하시기에, 앱 하나 개발해서 스타트업 하겠다고 뻥을 쳤지 뭐냐. 그럼 당장 가져와보라고 하셔서, 이걸 보여드렸어. 이렇게 된 거 아예 내가 개발한 걸로 하자. 사실 너 이거 가지고 뭐 할 것도 아니잖아? 내가 대가 충분히 줄게.”
술 취한 주민의 눈에, 윤석의 코가 점점 길어진다. 왜? 교수가 칭찬 좀 해주니까 앱 등록해서 팔면 대박 날거 같냐? 아빠가 우쭈쭈 해주니까 좋아? 주민이 멀거니 바라만 보고 말이 없자, 애가 닳은 윤석은 끝내 0을 하나 더 붙이더니, 그 자리에서 이체를 하고는 준비해 온 계약서에 끝내 주민의 서명을 받아 냈다.
***
박오영 보좌관이 저녁 약속에 나가려는 장 의원을 붙잡는다.
“의원님, 저 이것 좀 보세요.”
“아, 또 왜? 뭐? 어?”
장 의원이 버럭 화를 냈다. 장관 후보자로 지명 된 뒤, 청문회에서 탈탈 털리고 있는 요즘이라 예민할 대로 예민해진 장 의원이었다. 거 참, 알뜰살뜰 모아 집 한 채 더 산 게 뭐 문제라고 이렇게 난리 들인지. 아들 허리가 아파서 군에서 오지 말라는 걸 어쩌란 말인가. 보좌관이 장 의원 코 앞으로 스마트폰을 들이민다.
“제가 어제 이 앱을 하나 깔았거든요. 요즘 대박인 앱이라서. 그러다가 의원님 영상을 한 번 봤는데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스마트 폰에서는 어제 청문회에서 자신이 답변하고 있는 뉴스 화면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노란색 붉은 색 불빛이 눈에 거슬리게 깜빡거리고 있다. 보좌관이 피노키오가 무슨 앱인지 설명한다.
장 의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그 순간 장의원의 표정을 본 의원실 안에 있는 모두가 깨달았다. 저 어플이 가져올 파란을. 장 의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장난감 같은 앱의 결과가 법적 증거로 받아들여 질리가 없다. 하지만, 웃음거리는 될 것이다. 정치는 여론 아닌가.
"원내 대표 좀 연결해."
보좌관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가려던 장 의원이 다시 돌아서 보좌관을 노려본다.
"너 이 새끼. 내 영상은 왜 판독해본거야 응? 내가 거짓말 하는 것 같았냐?"
얼마 뒤 국회에서 ‘개인 민감 정보 침해 방지를 위한 디지털 보호법 시행안’이 통과되었다. 이례적으로 여야 합의가 이루어져 이견 없이 빠르게 통과되었지만 크게 주목하는 언론도, 내용을 잘 아는 사람도 없이 조용히 통과되었다.
그리고 윤석은, 윤석의 회사가 등록한 앱 '피노키오 1.0'이 법률 위반으로 스토어에서 내려야 한다는 통지를 받았다. 앱이 무슨무슨 법률을 위반했다는 내용이었다. 윤석은 크게 당황했고 주민에게 돈 토해 내라고 난리를 피웠지만 자기가 작성한 계약서를 흔드는 주민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앱이 하나 사라졌을 뿐이고, 자기 여자친구와 바람을 피운 윤석에게 나름의 복수를 해버린 주민만이 승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