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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l 29. 2024

손 끝의 자유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제작된 전통 자수부터 현대에 제작된 자수 작품까지 폭넓게 다루며 자수를 그저 공예가 아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소개하는 전시이다. 조선 초기 착용한 활옷과 제복, 병풍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전통자수부터 1980년대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인 자수장이 만들어냈던 현대화된 전통자수까지 많은 작품들을 다루는 만큼, 이번 글에서는 작품에 집중하기보다 간략하게 시대별로 간략하게 전시를 되돌아보고자 한다.


자수는 옷감이나 가죽과 같은 바탕에 실로 수놓아 장식하는 것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있었던 재봉용구들이 발전해 금속 바늘이 출현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단순하게 옷을 꿰매는 것에서부터 권위를 나타내기 위한 용도까지 폭넓게 사용되며 각 나라 또는 민족의 풍습이나 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 나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름다움과 전통을 지키며 동시에 자신의 실력의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은 근대에 들어서면서 자수가 예술의 영역에 들어가게 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 및 서구의 문화가 유입되면서 자수에도 큰 영향을 끼쳤지만, 해방 후 지금까지 전통 자수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전시장 초반에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자수 양식으로 볼 수 있는 병풍자수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실내공간을 꾸미거나 공간의 용도를 정하기도 하고 생일, 혼인과 같은 행사에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병풍은 그 용도가 다양했던 만큼 화목한 가족을 의미하는 화조(花鳥)나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十長生)과 같이 복을 기원하는 주제가 많이 새겨졌다.

나사균 '봉황' (1935) | 숙명여고보생 공동 제작 '등꽃 아래 공작' (1939) | 이장봉 '공작' (1967)


일제강점기 시대 작품들을 소개하는 공간에서 봉황과 공작이 화려하게 수 놓인 작품을 있었다. 당시 봉황도와 공작도는 인기가 높은 자수 도안이었다. 봉황(鳳凰)은 상서롭고 고귀하게 여겨진 상상 동물로 벼슬과 긴 꼬리깃을 단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봉황의 신체는 각각 인(仁), 의(義), 예(禮), 덕(德), 신(信)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건축과 공예에서 봉황문양을 많이 사용하였다. 신라시대부터 사육했다는 기록이 있는 공작(孔雀)은 친숙한 동물이자 본연의 화려한 깃털을 가졌기에 자신의 기교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공작은 밀교(密敎)에서 재난을 물리치는 불모대공작명왕(佛母大孔雀明王)으로 신격화되기도 한 만큼 의미도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서양의 문물과 미술을 받아들이면서 이전의 전통적 규범에서 벗나 조금씩 자유로운  형식을 취해간다. 이는 전시작 중 1940년대 제작된 전명자의 <성모>는 귀도 레니(Guido Reni)의 '슬픔의 성모(Mater Dolorosa)'(1905)를 모본으로 삼아 수놓은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다. 비록 기존 작품을 모방해 만든 것이지만, 극대화된 빛과 어둠을 통해 사실적으로 표현된 여성의 얼굴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인물 표현 방식이었을 것이다. 또한 작품이 일본과 해외 왕실로 납품되자 외국 시장에서 소위 먹힐만한 상품을 제작하며 과거 조선시대의 전통자수가 가지고 있던 틀을 조금씩 벗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일제의 정책에 의해 공예가 여성교육의 핵심으로써 중요하게 다루어지며 자수는 기술에서 벗어나 미술 공예로 거듭나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자수 기술의 절정을 이루지 않았을까.

정영양 '통일(무궁화)' (1968) | 한상수 '궁중자수 봉황도 병풍' (1994) | 한상수 '삼재의 환상' (1975)


해방 이후 한국은 국가 정체성 강화 및 일제의 잔재를 털어내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다. 그중 문화예술계는 전통예술을 계승하고 현대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는데 자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시 작품들 중에서는 한국의 국화(國花)인 무궁화, 백두산 천지와 같은 국가적 고양심을 강조할 수 있는 요소를 강조하거나 과거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했던 전통적 도상을 사용하는 등  전통을 계승하려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중 정영양의 '통일(무궁화)'는 당시 청와대 대통령실에 놓였던 병풍을 다시 제작한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 수놓은 흰색 무궁화은 남한, 붉은색 무궁화은 북한을 의미하며 한국이라는 애국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10폭 병풍으로 제작에 3년 이상 걸린 이 작품에서 무궁화나무는 아래 두 개의 큰 줄기가 위로 올라가며 점점 하나로 합쳐지는 듯한 모습으로 묘사되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는 듯하다.

강신희 '봄 숲' (2020) | 이강승 '무제' (2021)


한편으로는 1950년대 중후반부터 당시 예술계에서 많이 사용했던 추상을 자수에서도 사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며 기술의 발달로 기계 자수가 늘어나면서 과거와 같은 고도의 기술력은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더 자유로운 재료와 형식으로 변형되며 현대화되어 가고 있다. 장르 간의 경계가 모호해져 감에 따라 자수는 하나의 재료와 기법으로서 예술에 녹아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 자수는 비록 예술에서의 영역은 축소되었으나 역사적 전통적 가치를 가진 공예 문화로써의 가치는 여전히 크다. 현재 자수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며 보호하고 있다. 특히 전시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최유현이 12년 동안 제작한 불화 자수 '팔상도(八相圖)'는 전통의 명맥을 잇고 있는 기술을 현대에도 끊기지 않고 유지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볼 수 있다. 


이 전시를 통해 1930년부터 오늘날까지 천 위에 새겨진 자수의 역사와 실과 시간이 만들어낸 섬세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만나볼 수 있었다. 작고 가는 바늘 하나에 꿰어진 실이 만들어낸 자수는 한 사람의 오랜 시간의 흔적이 그대로 천 위에 새겨져 드러난 것이다. 수를 놓는 그 시간 동안 과거에는 누군가의 행복과 안녕을 바랐다면, 시간이 흐르며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고뇌의 순간이 박혀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한 사람의 흔적을 머리카락처럼 가는 실과 부드러운 천이 만들어낸 자수를 통해 영원히 기록될 예술 작품으로서 보여주는 전시였다.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전시명: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전시기간: May.1.2024 - Aug.4.2024

운영시간: 화, 목, 금, 일 10:00 - 18:00 / 수, 토 10:00 - 21:00 (매주 월 휴관)

입장료: 2,000원(덕수궁 입장료 별도) / 수, 토 야간개장 시 무료관람(18:00 - 21:00)


표지: 최유현, <팔상도(八相圖)>(1987-1997), 비단에 자수, 작가 소장(국립무형유산원 위탁)

참고자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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