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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l 01. 2024

만들어진 샘물

BEAUTY IS A READY-MAED | 아뜰리에 에르메스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간으로 날카로운 시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해 오고 있다.  지난 3월부터 6월 초까지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프랑스의 아티스트 콜렉티브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의 개인전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Beauty is a Ready-made)>를 진행했다. 클레어 퐁텐은 우리가 알고있는 기존의 작가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클레어 퐁텐은 사실 '실존하는 사람'이 아닌 만들어진 '가상의 예술가'라는 점이다. 2004년 풀비아 카르나발레(Fulvia Carnevale)와 제임스 손힐(James Thornhill)은 프랑스의 유명한 문구 브랜드 이름을 차용해 '클레어 퐁텐'이라는 작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자신들을 클레어 퐁텐의 조력자라고 칭하며 예술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전시는 클레어 퐁텐이 아시아 첫 개인전으로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들과 최신작으로 구성되어 퐁텐의 작품세계를 소개했다.


Foreigners Everywhere(2004~2024)


네온 사인 작품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ners Everywhere)"(2004~2024)는 클레어 퐁텐의 가장 대표적인 작업이자 2024년 베니스 비엔날에 본 전시의 주제로 채택되며 많은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2004년 경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다양한 언어로 '외국인은 어디에나 있다'는 문장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한글이 추가되었다. 이 작품의 이름은 이탈리아의 무정부주의 집단인 ‘스트라니에리 오분케(Stranieri Ovunque)’에서 유래되다. 이는 200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에 맞서 싸웠던 토리노(Turin)의 집단으로 ‘스크라니에리 오분케’는 “어디서나 외국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퐁텐은 주의문구나 광고판 등 우리의 주의를 끌기위해 사용되는 네온사인을 이용해 우리 모두가 어느 순간 어디선가 소외되고 차별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우고자 한다. 또한 외국인 혐오를 멈추어야 한다는 호소와 글로벌 사회의 어디서나 외국인에 대한 소외와 인종차별이 일어나고 있음을 상기시다. Black Lives Matter(BLM 운동)와 같은 사회적 이슈를 불러 일으켰던 흑인 문제, 코로나19를 계기로 크게 증가하며 아시아인 혐오 문제와 같은 인종 차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는 크게 대두되고 있는 난민 문제까지 타인에 대한 수많은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 예시들 외에도 우리가 여행가 가면 소소하게 겪는 차별들 역시 존재한다. 아시아인은 창가 자리를 안내하지 않거나, 남한 출신인지 북한 출신인지 묻는 질문들과 같은 지점만 해도 여기에 소속되지 않은 외국인이며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관심은 내가 차별을 당하는 그 순간에만 일어날 뿐 내가 소속된 집단으로 되돌아 오면 잊어버리게 된다. 퐁텐은 작품을 통해 우리가 한번쯤은 겪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산하는 타인에 대한 무시와 차별을 짧고 강렬한 문구로 표현하고 있다.


전시 제목이자 작품에 쓰여진 문구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Beauty is a Ready-made)"(2020-2024)는 강렬한 초록 불빛을 내며 마치 쇼윈도를 통해 상품을 보듯 전시장 안이 아닌 밖에 걸려 유리를 통해 볼 수 있다.  이 작업은 현대 여성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주축을 담당하고 있는  의류 사업 그리고 그 사업들의 선두주자인 명품 브랜드에서 이 문구를 내 걸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움’ 또는 ‘미(美, beauty)’는 시각, 청각과 같은 감각적인 기쁨과 만족을 주는 대상이 가지는 특성이자 마음을 끌어당기는 조화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은 자연의 풍경, 나무, 꽃, 동물 등에 대한 인상부터조각, 회화, 음악과 같은 예술 작품을 보고 가지는 감동이나 감정, 인간 행위의 윤리적 가치에 대한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와 해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아름다움’을 어떻게 판단하는가? ‘아름다움’에 대해 판단하는 행위를 ‘취미판단(Judgment of taste)’이라 한다. 취미판단은 미적 경험으로 의해 이루어지는데 하나의 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철학자, 예술가들이 이에 대해 다양하게 정의 내리고 있다. 클레어 퐁텐은 이러한 아름다움이 레디메이드라고 말한다. 레디메이드(Ready-made)'기성품의'이란  사전적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술에서는 일상적인 기성 용품을 새로운 측면에서 바라보며 작품으로 만드는 미술의 한 장르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소변기를 뒤집어 놓은 작품 "샘(Fountain)"(1917)을 꼽을 수 있다.뒤샹 이후로 조르주 브라크(George Braque),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등 많은 작가들이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오브제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 내며 개념미술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퐁텐은 여기서 사전적인 레이메이드에서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이 작업에서 꾸준하게 등장시키는 수많은 레디메이드 오브제들부터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수많은 사회적 합의들과 이를 학습시키는 매체들까지 이 모든 것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퐁텐은 가치와 상품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아름다움'은 '기성품'과 다를 바 없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Untitled(It's only 4 degrees)(2018)| Untitled (Protector), Untitled(Protection) (2018)


전시장 입구부터 곳곳에 설치된 라이트 박스 작품 시리즈는 우리에게 친숙한 TV, 스마트폰과 같은 영상매체 기기를 연상시킨다. 퐁텐은 금이 간 화면 위에 서로 연관성 없고 인터넷에서 퍼온 이미지를 복제하고 확대하여 보여주고 있다. 입구에서 바로 마주할 수 있는 작품 "무제-보호(Untitled (Protector), Untitled(Protection))"(2018)는 베일을 쓴 여성이 소의 얼굴을 가진 악마의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여성을 꼭 안고 있는 악마는 그녀를 지키고자 주변을 둘러보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보호’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악마라는 요소가 등장하는데, 작가는 이 작품에서 보호자라는 의미와 맥락이 가지는 모호함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다. 특히 사회적 약자 계층인 여성들에게 보호가 제공되는 경우에는 안전이 아닌 억압의 수단이 될 수 있는 모호함이 강조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현상의 예로 여성 할례(Femal Genital Mutilation, FGM)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여성 할례는 과거 여성과 순결을 보호한다는 인식 하에 아프리카, 무슬림 등 여러 문화권에서 시행되었으나 이는 여자 어린이의 건강과 인권을 유린하는 잘못된 관행이다. 유니세프의 2020년 보도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여성 할례 시술은 줄어들고 있으나 아직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이처럼 퐁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보호가 탄압과 억압의 수단으로써 사용되어 약자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한다.


라이트 박스 시리즈 중 또다른 작품 "무제-오직 4도(Untitled (It’s only 4 degrees))"(2018)에서 퐁텐 나사(NASA)에서 2002년 공개한 지구를 촬영한 사진을 차용해 보여주고 있다. 2001년 태평양 부근에서 열 복사 에너지가 퍼져 나가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바다에서 균일하게 방출되는 열 복사 에너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사진에서 주목할 점은 지구의 오른쪽 상단에서 위치한 미국 남서부 지역이다. 샛노랑색으로 표시된 이곳은 높은 곳에 있어 짙은 파랑으로 표시되는 구름이 없어 태양 에너지가 반사되지 못하고 대기로 열이 방출되는 지점이 많이 있음을 보여다. 사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2001년 당시 이 지역은 폭염을 겪고 있었다. 현 지구의 기후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나사의 위성 사진을 예술 작품으로 차용해 오늘날 전 지구적 문제로 전 세계가 폭염으로 인한 화재,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음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한다.


클레어 퐁텐은 자신의 작품들에서 끊임없이 논란의 중심에 서는 사회적 논의들을 작품 내에 불러오며 현실과 결합한다. 많은 나라에서 정치적 의제로 떠오르는 난민, 기후, 여성 인권 등 민감하지만 여러 사회적 논의와 관심이 필요한 주제들을 선정한다.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이나 이미지 그리고 문구들을 통해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촉구한다. 퐁텐의 사회 문제를 그대로 비춰내고자 하는 태도는 감성적이라고 예술이 가지고 있는 차가운 이성적인 면모를 보여 전시였다.


 


장소: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7,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 B1F)

전시명: 클레어 퐁텐 개인전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

전시기간: Mar.22.2024 - Jun.9.2024

운영시간: 오전 11시 - 오후 7시 (매주 수요일 휴관)

입장료: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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