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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n 17. 2024

Touch and Go

ATTERRISSAGE | ESPACE LOUIS VUITTON

청담동의 수많은 명품들 사이에 반짝이는 천자락 같은 루이비통 메종이 있다. 청담동 명품거리에서도 독보적인 외관을 가진 루이비통 메종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ry)의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루이비통 미술관을 디자인 하기도 한 게리는 한국에서 흩날리는 도포 자락에 영감을 받아 이 건물을 설계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공간의 4층에는 루이비통의 소장품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자 하는 비영리 공간, '에스파스 루이비통'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착륙(Atterrissage)>는 루이비통의 컬렉션 소장품 전시로 강렬한 색채를 지닌 셰일라 힉(Sheila Hicks)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1934년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예일대학교(Yale School of Art)에서 잉카 시대 이전 안데스 직물에 관려ㄴ해 논문을 쓰기로 결정하고 예술학 학사와 석사를 받은 후 칠레에서 예술공부를 이어 갔다. 이 시기 안데스 산맥 곳곳에서 사는 원주민이 직조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도 하고,  비야리카(Villarrica), 칠로에 섬(Isia Grande de Chiloé) 그리고  티에라델푸에고 제도(archipiélago de Tierra del Fuego)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 경험은 지금까지도 그녀의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녀는 멕시코 국립 자치 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펠릭스 칸델라(Félix Candela), 마티아스 괴리츠(Mathias Goeritz), 루이스 바라간(Luis Barragán)과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이후 다양한 건축가 또는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 파리에 정 후 독특한 색상, 천연 재료를 사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예술가로 직조와 직물을 이용한 예술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착륙(2014) | 벽 속 또 다른 틈(2016) | 토킹 스틱(2016)


에스파스 루이비통의 이번 전시에서는 3개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그 중 '착륙'과  '벽 속의 또 다른 틈'은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작품이자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착륙'(2014)은 천장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거대한 색의 흐름의 덩어리이다. 굵은 밧줄같이 보이는 다채로운 색은 폭포 처럼 천장에서 떨어지다가 바닥에 이르러서는 바위처럼 뭉쳐져 있다.  강렬한 색채들은 한 다발의 굵은 실이 되어 위에서 아래로 향한다. 함께 뭉쳐져 있는 색실들은 서로 엉킬지라도 자신이 가진 고유의 색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뒤섞여있어 보이지 않는 실의 끝이 향하는 곳은 얇은 그물망에 묶여 있는 거대한 색의 덩어리이다. 마치 솜이불처럼 보이기도 하는 색 덩어리들은 색실들의 색이 서로 섞인 듯이 다채로운 빛깔을 띄고 있다.


힘있는 색의 흐름에 이어, 거대한 색의 덩어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덩어리들은 천장 가까이까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으면서도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공간에 짜 맞춘듯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마치 베개들이 가득 쌓여 뭉쳐있는 듯한 '벽 속 또 다른 틈(Another Break in The Wall)'(2016)은 예술과 생명을 하나로 묶고자 함과 동시에 순수 예술과 장식 예술의 뚜렷한 경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대표작이다. 푹신한 소재와 생기 넘치는 색조가 어우러져 어릴 적 한번쯤은 상상해 보았을 거대한 인형이나 배개, 쿠션 더미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은 그 위로 뛰어올라 누워보고싶은 마음이 들게한다.


유일하게 벽에 부착된 작품이자 마지막 작품인 '토킹 스틱'(2016)은 선으로만 이루러져 '착륙'과 '벽 속의 또 다른 틈'과는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무지개처럼 각각 다채로운 색체들이 다양한 굵기로 나열되어 있는 모습은 라디오나 음향 관련 기기에서 음향 에너지를 주파수별로 나타내는 오디오 스펙트럼(Audio Spectrum)처럼 보이기도 한다. 셰일라 힉스는 느 부족이 막대기를 사용하여 대화하는 것에 영감을 다고 한다. 토킹 스틱(Talking Stick)은 미에 위치한 태평양 북서부의 부족들이 사용한 도구로 회의나 연설을 할 때 발언권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었다. 이 막대기를 가지고 발언하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최근에는 소통의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다. 과거에 1.5m 정도 길이의 나무로 제작되었던 토킹 스틱은 자신의 권력이나 부족을 상징하는 다양한 조각들이 세계져 있었다. 그러나 셰일라 힉스의 '토킹 스틱'은 성인만큼 긴 막대기부터 팔 길이 정도 되어보이는 짧은  막대기까지 다양하게 어우러져 있다. 토킹 스틱의 본래 용도를 생각해 본다면 다채로운 색을 지닌 막대기들은 발언자의 감정을 모아 둔 듯하다. 사랑, 분노와 같은 격렬한 감정을 가지는 붉은색, 기쁨을 표현하기도 하지만 질투를 의미하기도 하는 노랑, 슬픔이 묻어나는 듯한 파랑의 실들이 막대기에 꽉 감겨 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와 이야기할 때 한 가지의 감정만을 느끼지 않는다. 깊은 애정 속에 슬픔이 한 방울 있기도 하고, 타오르듯 분노하면서도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셰일라 힉스의 '토킹 스틱'은 감정이 담긴 말의 특징을 얼룩진 색실들의 얽힘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는 셰일라 힉스의 작품 속 강렬한 색채들이 섞이지 않고 조화만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마치  삶의 단편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찌보면  '위빙(weaving)' 즉 '직조'라는 생활문화와  밀접한 소재를 작업적 바탕으로 삼고 있는 그녀의 작업에 삶의 모습이 들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많은 문화권에서 여성은 생계를 위해 직조기술을 사용면서 직조 기술은 사람들의 복식사, 여성과 생활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직조 기술은 개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실크로드를 만들어낸 비단처럼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권력과 사치를 표현하기위한 수단으로 레이스, 황금 실 등 다양한 제품들을 만들어내 사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직조물들은 언어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텍스타일(textile)'과 '텍스트(text)'의 어원이 '엮다'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텍스툼(Textum)'이라는 점에서 이를 살펴 볼 수 있다.  가지 모두 람이 엮어내고 재구성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는 유사성을 가지고있다. 셰일라 힉스는 자신의 손길을 통해 예술과 직조물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엮어 작품이라는 형태로 재결합한 것이 아닐까.


셰일라 힉스는 색채와 실을 엮어 만들어낸 자신의 작품을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이라는  전시장에 착륙시켰다. 불시착한 듯한 이 작품들은 부드러운 촉감과 공간을 가르는 진한 색채를 보여주며 랜딩 기어를 내리고 멈춰있다. 그러나 이곳은 작품에게 있어 도착지가 아닌 경유지일 것이다. 순수 미술과 응용 미술의 경계를 허물며 예술의 범위를 넓혀 온 셰일라 힉스의 작품 세계를 만난 관람객들은 이제 그녀의 작품을 타고 더 넓은 예술 세계로 재이륙할 것이다. 



장소: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 454, 루이 비통 메종 서울 4층)

전시명: 셰일라 힉스 "착륙"

전시기간: Apr.30.2024 - Sep.8. 2024

운영시간: 월-일(12:00-19:00) / 휴무일(1월1일, 설날 연휴, 추석 연휴)

입장료: 무료 (관람 사전 예약) / 도슨트 사전 예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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