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는 수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있지만 그중 에르메스(HERMÈS)는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는 브랜드일 것이다. 장인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에르메스는 장인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많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현대예술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오고 있다. 에르메스 재단은 브뤼셀의 라베리에르(La Verrière), 서울의 아뜰리에 에르메스(Atelier Hermès), 도쿄의 르 포럼(Le Forum), 모젤주의 라 그랑 팔라스(La Grande Place) 총 4개의 전시공간을통해 대중에게 현대미술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서울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현재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클레어 퐁텐(Claire Fontaine)의 개인전 <아름다움은 레디메이드 (Beauty is a Ready-made)>는 6월 9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3월 방문한 도쿄의 르 포럼은 쇼핑거리로 유명한 긴자에 위치한 메종 에르메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매장 입구를 지나쳐 건물 옆에 위치한 또 다른 입구를 통해 8층으로 올라서면 '르 포럼'에서 진행하고 있는 전시 <Ephemeral Anchoring(임시 정박)>를 만나 볼 수 있다. 르 포럼에서는 지난 전시에서부터 생태·환경에 대한 현대 예술의 지속적인 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Ecology : Dialogue on Circulations(생태학: 순환에 관한 대화)"라는 명칭을 통해 이러한 관심을 묶어냈다. 생물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학문인 Ecology 즉 생택학은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학문일지 모른다. 환경 보호는 전세계적인 화두로 떠올라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환경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생태의 순환을 현대 예술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떠할까. 그 첫번째로 지난 2023년, 한국 작가 최재은의 개인전 <La Vita Nuova>(Oct.14.2023-Jan.28.2024)를 선보였다. 이 전시는 최재은(b.1953)의 40년 경력을 되돌아보며 작가가 생태와 자연과 끊임없이 대화해온 과정을 되돌아보고자 했다. 생명에 필수적인 생태계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연과의 공존이라는 이상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한 최재은 작가의 작품들을 소개했다.
"Ecology : Dialogue on Circulations"의 두 번째 이야기로 진행되는 이 전시에서는 자연과 사람 사이의 에너지 순환을 탐구하고 이 현상의 잠재력의 모든 측면을 공개하고자 한다. 르 포럼은 작품을 선보이는 4명의 작가들, 니콜라스 플로흐(Nicolas Floc'h, b. 1970), 라파엘 자르카(Raphaël Zarka, b. 1977), 케이트 뉴비(Kate Newby, b. 1979), 야스라 타시 (Takeshi Yasura, b. 1984)을 "잠깐의 정박자"로 소개하고 있다. 대략 80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다가 사라지는 인류는 약 46억년 정도 살아온 지구에게 있어서는 정말 찰나의 시간동안 머무는 생명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시간동안 인류는 지구 온난화, 환경오염과 같은 중대한 위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위기들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낸 수많은 발명품들과 자연 파괴를 통해 사용한 에너지가 그대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것일지 모른다.
Call us, call us (2023-2024) | always, always, always (2023-2024)
짧은 시간 동안 지구에 머물 4명의 정박자가 주목하는 순환의 에너지들 사이에서 2명의 작가가 선보이는 작품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먼저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케이트 뉴비는 도자기, 주조, 유리, 천과 같은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며 조각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한다. 지역 공예가나 공예 산업체들과 협력하며 작업을 제작하는 뉴비는 작품에서 기후나 인간의 활동에 의해 나타나는 변화를 작품에 모두 반영하고자 한다. 온도, 비, 바람, 햇볕과 같은 자연이나 만지거나 부딪히는 사람의 움직임과 같은 다른 요소들에 의해 변색되고 손상되는 과정에서 보이는 시간의 흐름은 뉴비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자연과 주변 환경이 남긴 시간의 흐름을 통해 뉴비의 일상생활과 파생된 주변 환경을 동시에 작품 속에 반영시키고자 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거대한 유리창 앞에 가득 매달려 있는 <Call us, call us(우리를 불러, 우리를 불러)>(2023-2024)이다. 텍사스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도자기로 제작한 1,000개 이상의 풍경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전시장에 거대한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 내는 듯하다. 그리고 바로 그 아래 바닥에 깔린 거대한 작품은 <always, always, always(언제나, 언제나, 언제나)>(2023-2024)이다. 바닥을 가로질러 펼쳐진 대형 도자기 작품은 지난 가을 뉴비가 일본에 도착한 후 후지와라 토기공방(Fujiwara Earthen Art Studio)과 협력하여 도치기현 마시코에서 만들어졌다. 300개 이상의 두꺼운 세라믹 슬래브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점토위에서 여러 개의 유리, 생점토 분말, 도쿄에서 찾은 유리와 여러 재료를 사용해 제작되었다. 뉴비는 이 재료들 위에서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며 형태를 만들었다. 손가락, 팔꿈치, 발 등 다양한 신체부위를 움직이며 만들어낸 흔적들은 마지 강이나 산맥 같은 자연 풍경같기도 하고 망망대해의 반짝이는 표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Call us, call us>와 <always, always, always>는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거대한 창문 옆에서 흙을 통해 자연, 환경과 소통한다. 뉴비는 대지의 일부인 흙을 인간의 손길로 변화시킨다. 작가에 의해 자연물에서 인공물이 된 흙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통해 다시 자연의 흔적을 가득담고 본래 자신이 있던 곳과 가까운 지점으로 되돌아 간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그 흔적들로 가득 차 있는 공간은 본래 유리 너머에서 보일 풍경을 관람객 바로 코앞으로 끌어온 듯하다.
Invisible (2018) | La couler de l'eau, Colonnes d'dau (2019)
두번째 작가는 수중 바다 풍경 이미지로 유명한 프랑스 사진작가이자 시각 예술가인 니콜라스 플로흐이다. 플로흐는 인간 활동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들 중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기록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2010년부터 물속 풍경과 해양 생물의 서식지 그리고 수중 생태계를 촬영하는 프로젝트 진행했는데, 이를 위해 탐험대를 모집하거나, 과학자들의 탐험에 참여하고 전문 기계로 다이빙도 하기도 한다. 이러한 플로흐의 관심사에도 불구하고 르포럼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Invisible(보이지 않는)>(2018)은 캘랑케스 국립공원의 162km나 되는 해안선 전체의 물의 표면과 30m 깊이 사이의 풍경을 추적한 사진 작품이다. 흑백으로 찍힌 수많은 물 속의 풍경은 우리에게 친숙한 푸른 바닷속과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우리는 깊은 바다를 직접 볼 수 없기에 다큐멘터리나 수많은 매체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곤 한다. 아름다운 인어공주, 크라켄과 같은 상상 속의 생명체들도 이러한 상상의 산물이다. 플로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해저를 직접 촬영했음에도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우주공간이나 아포칼립스 세계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공 암조와 어망이 함께하는 심해물고기와 수천 종의 서식지로 플로흐는 이를 "생산적인 풍경(producitve landscapes)"라고 부른다.
이와 대비되는 <La couleur de l'eau, Colonnes d'dau(물의 색, 물 기둥)>(2019)는 초록색과 푸른색 톤으로 구성된 수십장의 사진이 벽을 채우고 있다. 이 사진들은 물의 색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심과 미생물의 수에 따른 농도변화를 나타내고 있다. 플로흐는 연안에서 넓은 바다까지 지리적 순서에 따라 65장의 사진을 배치했다. 이 사진들에서 보여지는 물의 색은 마르세유(Marseile)가 공원 한 가운데에 폐수를 방류함에 따라 바다의 풍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색의 변화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푸른 색의 물빛에 점차 밀려드는 녹색의 물은 오염된 것 처럼 보인다. 만물의 근원이라고 여겨지는 물의 색의 다채로운 변화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직관적으로 느끼게 한다.
자연은 수많은 예술가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온 존재이다. 예술가는 그림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을 예찬하기도 하고, 자연은 작품의 재료가 되어주기도 한다. 모든 생명의 터전인 자연은 예술가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식량부터 창작의 재료까지 많은 것을 내어주었다. 그러나 지구의 자연을 살펴본다면, 지금껏 인류가 자연에게 되돌려 준 것은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주 찰나의 시간동안 머무는 우리가 일으킨 순환의 바람은 자연에게 있어 멸망과 회복 그 경계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돌려주어야 할까. 이 전시는 그 질문을 예술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던지며 우리에게 그 답에 대해 고뇌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