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기업과 아트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롯폰기 역에는 눈에 띄는 빌딩이 하나 있다. 바로 롯폰기 힐스의 랜드마크 빌딩인 모리타워이다. 54층의 높은 건물 꼭대기, 하늘과 가까운 곳에모리 미술관이 있다. 아직 봄을 방해하듯 차가운 비가 내렸던 3월에 방문했던 전시는 2003년 개관한 모리미술관의 20주년 기념 전시 <Our Ecology: Toward a Planetary Living(우리의 생태: 행성의 삶을 향하여)>이다.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심각한 표정의 어부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르타 마티엔자(Martha Atienza)의 'Adlaw sa mga Mananagat 2022(어부들의 날 2022)'와 경고하는 듯한 노란색이 결합된 포스터가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는 우리가 누구인지, 지구 환경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묻고자 한다. 인간중심적인 관점뿐만 아니라, 더 넓고 포괄적인 관점에서 지구의 다양한 생태를 바라보면서 환경 문제와 기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를 전시장 전체에서 보여주기 위해 모리 미술관은 교통 이용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많은 자원을 재사용 및 재활용했다. 미술관은 이번 전시의 디스플레이는 환경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되었다고 설명하는데, 예를 들어 이전 전시회의 디스플레이 벽과 벽 패널의 일부를 재사용하고 페인트 마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원을 절약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100% 재활용 가능한 석고보드를 사용하고, 재활용 재료로 만든 건축 자재를 사용하여 폐기물을 줄이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부분들은 전시 곳곳에 설치된 안내문으로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미술 전시는 생각보다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 행사이다. 작은 못이나 철사, 페인트부터 가벽까지 다양한 쓰레기들은 대형 미술관, 블록버스터 전시가 될 수 록 늘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명관광지이자 많은 전시들을 진행하는 모리미술관에서 작품들 뿐만 아니라 전시장의 구석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전시주제에 더욱 몰입하게 만든다.
비와 추위를 뚫고 들어간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끈 작품은 니나 카넬(Nina Canell, 1979)의 'Muscle Memory(7 Tonnes)(근육 기억(7톤)'(2022)이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방바닥을 조개껍질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5톤의 조개껍질을 바닥에 깔아 둔 이 설치물에서 관람객은 직접 발로 밟아 조개껍질들을 부순다. 이 작품에서 사용된 조개껍질은 홋카이도산 가리비 껍데기이다. 이는 매년 20만 톤 이상 폐기되어 이를 처리하거나 사용하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작가는 자연물을 인공물로 만드는 과정 속에 인간을 위치시킨다. 패각은 최근 석회석을 대체해 천연 시멘트의 재료로써 주목받고 있다. 인간이 무분별하게 먹어온 조개로 배출된대량의 쓰레기는 또 다른 과정을 거쳐 인간의 생존을 위한 도구로써 변모된다. 작가는 이처럼 산업화 및 근대화 과정에서 인간의 척도를 넘어선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순환에 개입하고자 한다. 이에 직접 조개껍질을 부수는 가공의 기초적 단계를 경험하도록 만들어, 발밑에서 느껴지는 감촉, 소리를 이용해 인간을 초월한 존재와의 관계성에 주목하도록 한다.
Muscle Memory(7 Tonnes) | Of Men and Gods and Mud | My Own Death
마감되지 않은 벽들을 지나 알리 셰리(Ali Cherri, 1976) 'Of Men and Gods and Mud(사람들과 신들과 진흙에 관하여)'(2022)라는 영상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의 가장 큰 수력발전소 중 하나로 수단에 위치한나일강의 메로웨(Merowe) 댐 건설로 인해 피난민이 된 사람들을 묘사한다.
메로웨 다목적 수력 프로젝트(Merowe Muti-purpos Hydor Project)로도 알려진 이 댐은 수단 북부 메로웨 타운 근처 나일강 유역에 설치되었다. 2004년 공사를 시작해 2009년 3월에 완공한 이 댐은12억 유로라는 거대한 자본을 사용한 대형 댐으로 전력 생산을 주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 댐은 건설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건설이 시작되기 전에 약 55,000~70,000명의 암리(Amri) 부족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강제로 이주되었다. 이들은 원래 대추야자와 같은 채소를 재배해 왔기에정부에서는 금전적 보상 외에도 토지를 배상하였으나 예전보다 수입이 적음 빈곤율 증가하였다고 평가받았다.
작품에서는 피난민과 함께 흙, 물과 관련된 신화인 나일강 신화, 골렘 전설 그리고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흙, 물과 연관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먼저 고대 이집트의 신 '하피(Hapi)'는 나일강을 주기적으로 범람시키는 신이다. 과거 나일강의 범람은 농경사회인 이집트에서 매우 중요한 자연현상 중 하나였다. 범람된 강이 땅에 퇴적물을 쌓아 기름지게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골렘(Golem)은 유대교에서 전해지는 전설로 본래 히브리어로 "형태 없는 것" 또는 "태아"를 의미한다. 유대교 경전 <탈무드>에서는 율법학자들이 지구의 모든 지역에서 먼지를 긁어모은 후 이를 반죽해 만든 진흙인간으로 등장한다. 골렘은 보통 높은 경지에 오른 랍비(Rabbi)가 수행, 의식을 마친 후 진흙을 뭉쳐 만든다. 그 후 주문을 외우고 히브리어로 '에메트(אמת, 진리)'를 이마에 새기거나, '셈(שם, 이름)'를 적은 양피지를 입속에 넣으면 완성된다. 랍비는 골렘을 없앨 때, 이마에서 'א' 한 글자를 지워 '죽음(מת)'을 의미하는 단어로 만들거나 , 입 속에 있는 양피지를 제거하면 된다. 이 골렘들은 영혼이 없기 때문에 행하는 모든 행동들은 랍비의 책임하에 있으며 만약 골렘이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바로 랍비의 죄가 된다.
구약성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노아의 방주'로 더 유명하다. 사람들이 타락한 생활에 빠져 하나님이 홍수로 이들을 심판하려 할 때 홀로 바르게 살던 노아가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로 홍수가 올 것을 미리 알게 된다. 예언에 따라 노아는 배를 만들고 가족과 정결한 짐승 암수 7마리씩, 부정한 암수 1마리씩, 새 암수 7마리씩 싣고 홍수를 피하게 되었다. 인간을 위해 풍요로운 자연을 만들었던 신은 인간을 모두 심판할 수 있는 자연의 힘을 보여준다.
이 세 이야기는 모두 자연 현상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며, 만약 우리가 그것을 통제하려고 시도할 때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우리 인간의 책임임을 보여준다. 인간은 뛰어난 기술과 자본으로 흙과 물 등 자연을 지배한다고 믿곤 한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자연의 일부로써 그 거대한 힘에 대항할 수 없으며, 자연을 파괴하고 임의로 조정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인간에게 책임이 있기에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를 재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품은 유타카 마쓰자와(Matsuzawa Yutaka,1922-2006)의 My Own Death(나 자신의 죽음)' (1970)이다. 마쓰자와는 나가노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국제적인 아티스트로 그의 작품은 2개의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4년 5월까지 '프사이(Ψ, Psi)의 방'이라 이름 붙인 공간에서 회화, 그래픽, 설치 등 방대한 양의 작품 제작했다. 그러나 1964년 6월 1일 "오브제를 지워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그는 이후 말이나 관념만을 표현하는 '관념미술' 작품들을 제작했다. 이때부터 물질의 소멸, 인류의 소멸 그리고 사물의 소멸 등 '사라지는 것'이라는 주제가 중심이 되었다. 'My Own Death'는 그의 후기 작품으로 1970년 도쿄 비엔날레에서의 전시를 본떠 텅 빈 방 입구와 출구에 각 패널을 설치하였다. 설치된 패널의 내용은 아래와 같이 해석해 볼 수 있다.
나의 죽음 (시간 속에만 존재하는 페인팅) 네가 이 방을 조용히 건너가서 번개처럼 번쩍이는 마음으로 나 자신의 죽음을 건너갈 때, 그것은 미래의 나의 진정한 죽음이며, 너의 미래의 죽음뿐만 아니라 과거 수억 명의 인류의 죽음과 미래의 천조 인류의 죽음과도 비슷하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죽음은 긴 세월을 거쳐 찾아온 것으로 보이지만, 지구와 자연의 관점에서는 번개처럼 순식간이라는 시선이 있다. 인류가 쌓아 올린 역사는 죽음이 찰나처럼 느껴질 만큼 많은 인간의 삶과 죽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인 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마쓰자와의 태도는 인간과 환경을 넘어 우리의 존재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과거에는 회화나 조각과 같은 장르로 한정되어 있던 미술이 퍼포먼스, 설치, 영상 등과 같은 다양한 형식으로 장르적 범위가 확장되면서, 환경 파괴가 따라올 수밖에 없게 되었다. 최근에는 많은 관람객들을 사로잡는 대형 스펙터클 전시들이 유행하면서, 그 설치와 운영 과정에서 많은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미술 재료적 측면에서 발암물질, 화학 안료 등의 사용과 같은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 전시는 여러 국제적인 작가들의 다양한 시각이 함께 모여, 미술이 환경문제에 어떻게 관여해 왔는지 살펴보았다. 또한 현재 미술의 현장에서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 볼 수 있는지 직접적으로 제시한 것은 많은 미술관에 적용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전시는 미술계가 끊임없이 숙안 할 문제를 던지며 지난 3월 31일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