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들판을 가득 채우는 공사장 소리는 한 철도 근처에서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종이 정거장에서 시작해 또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새로운 역이 세워질 준비를 하는 이 공사는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벽돌을 쌓기 위한 기초공사를 시작하며 거칠게 파내진 땅을 다듬는 Y는 마치 자신을 새롭게 갈아내고 꾹꾹 누르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과정의 시작에서 기반을 다지는 행위는 과정의 끝에 이르렀을 때 단단하게 버텨줄 수 있는지에 대한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행위이자 필수 요소일 것입니다. 모든 학문에는 기초라고 불리는 기반이 존재하고 예술에 있어서 그 기반은 종교일 것입니다. 수천 년 전 인류가 동굴벽화에 풍요를 기원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수많은 신들이 대리석 조각으로 탄생돼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기독교가 서유럽을 지배했을 때 신의 말씀을 누구나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미술이 사용되었으며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들어서며 나타나는 문화 부흥기 르네상스로 연결 지어 볼 수 있을 겁니다. 종교가 미술에서 기초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대중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에도 이어져 관람객들에게 인기를 얻는 작품들이 큰 성공을 얻기도 하고 대중들의 공감대와 결합된 작품들이 좋은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현재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는 '호크니' 또한 "예술의 기반은 대중성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주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늘 동시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그의 아이패드로 그린 작업들은 이러한 그의 태도를 가장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작업대 위에 놓인 Y의 역을 위한 도면은 수많은 계획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미래를 그리며 탄탄한 일정을 그려두지만 이러한 계획들이 그대로 수행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우울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구나 겪는 변화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존재감을 가진 '피카소'역에서도 역이 지어지는 동안 수많은 과정의 변화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3세라는 어린 나이에 역을 짓기 시작한 피카소는 아주 사실적이고 가톨릭 신앙이 가득 담긴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15세에 정통 사실주의 그림의 정점을 찍은 그는 점차 아방가르드적 느낌을 찾아나가기 시작하며 청색시대(1901~1904)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청색 물감만을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 냈으며 절망에 빠진 개인들 주제로 삼았습니다. 1904년 장미 시대에 접어든 그는 따듯한 색조와 함께 서커스 공연자, 곡예사와 같은 인물상을 그렸습니다. 그 뒤 아프리카 시대(1906~1909)에 그는 모든 종류에 대한 인물에 대한 추상적 아프리카 마스크에서 영감을 얻은 묘사를 했습니다. 이 시기 가장 유명한 작품이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입니다. 이후 그는 조르주 브라크와 함께 큐비즘의 개척자가 되었고 그의 큐비즘의 성격은 분석(Analytical: 1908~1912)과 합성(Synthetic: 1912~1914)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초창기적 작품 성격과 가까운 고전주의와 자연주의 스타일을 다시 구사하며 이를 그의 신고전주의 시대(1917~1925)로 부릅니다. 후에 다시 자연주의에서 멀어진 그는 초현실주의(Surrealism:1925~1932)에 들어섰습니다. 이 시대 이후 1973년 사망 전까지 앞서 보여준 수많은 스타일을 내포하고 있는 작업들을 생성해 냈습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다이내믹하게 변화한 '피카소'역처럼 마음과 생각 그리고 가치관의 변화에 따른 계획의 변동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계획의 실행 앞에는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태풍이나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재해들이 역을 향해 사나운 손길을 뻗을 겁니다. 그들 중 일부는 역으로 다가오는 와중에 산들바람이 되어 사라질 수도 있고, 또 다른 일부는 다른 재해들과 합쳐져 역을 산산조각 내 버릴지도 모릅니다. 부서진 역에서 역경을 헤쳐나가며 새로운 계획으로 역을 다시 세우고 공간을 메꾸고 확장하는 것은 어떠한 방향성을 가지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상상을 뛰어넘은 다채로움으로 가득 찬 역이 될 것이란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수개월 동안 많은 역들을 방문한 Y는 이제는 자신만의 역에 지붕을 올리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이 공사는 무기한으로 진행될 수 도 있고 예상치 못한 순간 이르게 끝나 버릴 수도 있지만 Y에게 있어 후회되는 길은 아닙니다. 자신이 만들어낼 정거장이 또 다른 세게를 여행할 누군가에게 애정 어린 인사를 받을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