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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Aug 19. 2022

종이 정거장

열 번째 정거장 | 김진선

Y는 종이 정거장에서 출발한 긴 여정을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역에서 터져버린 향수병을 떨쳐내고 여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외로움을 감출 길은 없을 듯한 기분입니다. 축 쳐지는 기분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달달한 간식이 최고이기에 언젠가 사두고 가방 구석에 넣어 두었던 곰돌이 모양 젤리를 꺼내봅니다. 달달한 과일향들을 입에 넣고 쫀득쫀득한 식감을 즐기며 달곰한 맛으로 조금이나마 기분을 환기한 Y는 평안한 여정을 위해 다음 역을 만날 준비를 시작합니다. 안기고 싶을 만큼 폭신하고 색색깔의 빛을 내고 있는 '김진선'역으로 기차가 들어서며 속도를 줄입니다.


'김진선'역에서 발을 내딛자마자 겨울 옷에서 날 것 같은 푹신한 향기가 Y의 코끝을 간질입니다. 파스텔빛의 색깔들로 가득 찬 작은 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은은하게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는 수세미 실들입니다. 실이라는 존재는 사실 이 여정에서는 조금 새로운 느낌의 오브제 일 겁니다. '실'은 생활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물품으로 익숙합니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고 떨어진 단추를 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옷을 만드는 것까지 의식주에서 '의'를 담당하는 큰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다양한 문화권의 문학에서 여러 의미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대표적으로 '운명의 붉은 실'이 있습니다. 사람을 의미하는 실은, 특히 연정을 품은 두 사람의 인연을 이어준다는 중국의 고대설화가 바탕이 되어 동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퍼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로 익숙한 아리아드네의 실이 대표적일 겁니다. 크레나 섬의 왕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러 찾아온 아테네의 왕자 테세우스를 보고 사랑에 빠져 실타래를 풀면서 미로 안에 들어가도록 합니다. 이 신화에서 실은 현대에도 많이 쓰이는 의미인 고난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김진선'역에서 이 실들은 서로에게 얽히고설키는 과정인 뜨개질을 통해 하나가 된 채 다양한 형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열고 닫는 조각 (2022) 지퍼, 가변 설치

역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 옆 창가에는 한 무더기의 지퍼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서로 여러 방향으로 붙들고 있는 지퍼들은 무지개처럼 다양한 색을 가지고 연결되어 있습니다. 꽉 다물려 있기도 하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한 이 지퍼들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툭 치면 다 분리될 것처럼 보이지만 지퍼의 꽉 다물리는 특성상 보이는 것보다 훨씬 단단하게 뭉쳐져 있습니다.

창을 통과하는 바람에 펄럭이는 듯한 오색찬란한 지퍼들의 덩어리는 무지갯빛 깃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서양에서 먼저 시작된 성 정체성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들은 이제 한국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들이 되었습니다. 생물학적 성의 구별과 별도로 스스로 느끼는 것이 반영된 심리적 상태이자 자아의식을 말하는 '성 정체성'은 남성 정체성, 여성 정체성, 젠더퀴어(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 의미) 정체성으로 나뉘는 이 정의는 현대 사회에는 익숙한 '정체성'의 종류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체성(Identity)'이라는 것은 신프로이트주의 이론가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에 의하면 자신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의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 정체성은 인간의 외관과 성 역할 등 많은 사회적 관계와 연결되기에 현대 사회에서 강조되는 정체성들 중 하나인 것입니다. 정체성은 다양한 정보와 경험들이 결합되어 한 사람을 구성하는 것으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라는 의견과 본질적인 특성이 존재한다는 의견이 혼재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가 섞여 사회적 통념들과 개인의 경험이 결합되고 부딪혀 깨지기도 하면서 조각되는 것이 정체성으로 향하는 최종적인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벽에 걸린 지퍼들의 모습은 사회 속 다양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유대와 연결로 볼 수 있습니다.


스치는 조각 (2022) 수세미 실, 가변 설치

계단 끝 역의 좁은 통로에서 Y는 천장에 걸려있는 기다란 덩어리들을 마주합니다. 과거 문이나 창가에 걸어두곤 했던 발처럼 보이는 이들은 까슬한 수세미 실과 그 속을 가득 채운 솜이 말랑하고 폭신한 느낌을 줍니다. 마치 아기들이 가지고 놀 것만 같은 인형 같은 발을 해치고 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본래 우리에게 익숙한 발은 대나무를 실로 엮어 햇볕을 가리는 물건입니다. 오로지 빛만을 가리는 발은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바람은 막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도록 합니다. 이러한 발의 속성은 과거 정치적인 쓰임새로도 이용되었는데 드라마에서 자주 보였던 수렴청정()을 할 때 남녀가 내외를 하던 시기 공간을 나눔과 동시에 임금의 대리정치를 하던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보여주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물이나 공간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를 의미하는 '경계'는 사람뿐만 아니라 사건이나 능력과 같은 것들 사이에서 애매모호하게 경계선을 만드는 발처럼 뚜렷하게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곤 합니다. 때문에 그 경계를 넘어서 다른 곳으로 향하게 되었을 때 스스로 또는 주변에 일어난 미묘한 변화를 눈치채는 것은 힘듭니다. 소심한 듯이 간질이고 지나간 변화의 지점들은 여러 경계에서 나타나는 만큼 신경을 곤두세우고 찾아보아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요소들이 모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지나려고 했던 그 경계를 넘어 다른 곳으로 달려 나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폭신폭신한 발 걷고 좀 더 나아간다면 커다란 뜨개질 덩어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성인 남성보다 커다란 모습을 하고 있는 이 덩어리는 다채로운 색깔의 수많은 수세미 실들이 서로 얽혀 거대하고 까칠까칠합니다. 서로 엮여있는 많은 실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색은 빨강과 파랑입니다. 하지만 이 극단적인 두 색깔 사이에 노랑, 초록, 분홍 등 다양한 색들이 존재하기에 이 덩어리가 정확하게 무슨 색이다라고 정의하기엔 어렵습니다.

홀로 벽을 등지고 있는 이 덩어리는 말랑말랑하기에 혼자서 설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어딘가에 항상 기대어져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 덩어리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다양한 매체와 SNS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현대에서는 나 혼자 무인도에 떨어진 것처럼 사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이젠 그 무인도도 인터넷이 잡힐 확률이 더 높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다양한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그룹들이 모여 복작복작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그룹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어떠한 사건이 터지면 다른 이가 더 잘못한 것이라고 싸움이 나곤 합니다. 하지만 2007년 태안군 앞바다에서 일어났던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호 원유 유출 사건 때처럼 큰 재난이 닥치거나 2002년 월드컵 때처럼 기쁜 일이 생길 땐 다들 하나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고 행복한 마음을 나누며 다투며 옹졸해졌던 마음들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는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음을 더욱 공고히 하는 모습들 일 겁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머리가 2개, 팔다리가 4개씩 있었는데 이를 두려워한 신들이 반으로 갈라버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 함께할 때 커다란 고난도 극복할 힘을 낼 수 있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Y가 여행을 하며 지나온 역들 또한 두텁고 단단하게 쌓아온 유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액자 위 눈처럼 뽀얗게 먼지가 쌓일 만큼 오래된 시간들과 예술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끊기지 않는 노래와 과거의 답습을 공격하며 전복시켜온 수많은 전투들이 얽히고 묶여서 거대한 거미줄을 만들 듯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Y 역시 거대하고 오래된 유대 속에 자신을 묶어 놓게 되었습니다. '김진선'역은 Y가 미쳐 알지 못했던 소중한 연결들을 찾아주곤 작별인사를 건넵니다. 두터운 이불에 웅크렸다 일어난 듯한 아쉬움을 느끼며 Y는 다음 역으로 향하는 기차 시간표를 확인합니다. 여전히 맴도는 푹신한 향을 마지막으로 맡으며 플랫폼을 떠납니다.



표지 - 기댄 조각 (2021), 수세미 실, 208x62x78cm, 부분 확대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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