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역들을 경험하는 긴 여정에 조금 지친 Y는 의자에 기대 휘청거리는 고개를 애써 바로 잡으려 합니다. 또 다른 역에 멈춰서 새로운 여행객을 태우고 떠나보내는 기차 플랫폼에 작은 소녀와 함께 있는 가족의 모습이 눈 표면에 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집을 박차고 나온지도 벌써 3개월째입니다. 문득 뇌리 속을 스치는 집에 대한 생각들이 결국에는 멈추지 않습니다. Y를 힘겹게 했던 가족들이 그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Y의 작고 커피 향이 가득했던 방에 놓아둔 스케치북들, 톡톡한 이불에서 나는 피죤 냄새, 어릴 적 자신을 악몽으로부터 지켜는 보드라운 테디베어는 다시 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집 창가에서 항상 밖을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 고양이 후추의 도도한 애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게 만들 뿐입니다. Y는 새삼스레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달리는 기차가 공기는 가르는 소리, 미세하게 쿰쿰한 에어컨 냄새, 의자에 배겨버린 먼지 냄새로 가득 찬 작은 3 호칸을 벗어나고 싶어 집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터지기 직전 기차는 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을 울립니다. 우울하게 부푼 마음을 누르고 Y는 '황지민'역에 발을 내립니다.
Untitled 9 (2022) Oil on Canvas, 28.5 x 39.5 inches
천장 위 투명한 유리를 뚫고 내려오는 따스한 햇살이 가득 찬 '황지민'역은 어딘가 모르게 마음의 한 구석이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플랫폼을 내려와 나온 역의 가운데에는 어딘가 익숙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놀러 갔던 한강공원의 모습 같기도 하고, 친구들과 손을 잡고 등하교를 하던 동네 조그마한 공원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가운데 놓인 나무 벤치에는 한 여성이 앉아 있습니다. 이 여성의 모습 또한 어디선가 스쳐 지나가며 본 것처럼 익숙해 아는 사람인지 고뇌하게 합니다. 왼쪽 턱에 손을 괴고 저 너머를 응시하는 듯한 이 여성은 과거의 단편에서 튀어나온 듯합니다. 컬러 필름 카메라를 사용해본 사람이라면 이 여성의 모습이 더 익숙할지도 모릅니다. 오른쪽 아래 묘한 주황색으로 날짜가 박혀 추억들이 새겨져 있는 인화된 사진들 사이에 유사한 모습을 풍기며 찍힌 자신의 또는 어머니, 여동생, 언니, 친척, 친구와 같은 피사체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정확하게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선글라스에 가려진 그녀의 눈빛이 어떠한 것을 바라보고 있는지, 슬픈지, 기쁜지도 알기 힘듭니다. 하지만 그녀의 포즈, 옷, 가방, 모자, 구도와 같은 요소들이 방문객의 과거에 함께한 흐름을 슬며시 보여주면서 그와 함께한 기억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Untitled L (2020) Oil on Canvas, 14 x 18 inches
햇살이 넘치는 공원을 지나 Y는 익숙한 가정집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공간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기나긴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 속에서 기차 안에서 차게 식었던 양손에 조금은 열이 오릅니다. 눈앞의 문을 살며시 열자 따스한 가정집과 같은 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간에서 두 사람이 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기에 숨을 죽이고 살펴본 방안을 가득 채우는 햇살은 여유로운 주말 늦은 아침 눈을 뜨기 직전 느껴지는 따스함과 같습니다. 현대인의 대표적인 주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아파트에서 보이는 창틀과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보일 것 같은 꽃무늬스러운 침대보의 조화는 이 공간을 더욱 익숙하게 만듭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깨우기 위해 들어간 안방을 느낄 것이고, 누군가는 친구들과 밤새 열심히 논 다음날 아침 풍경을 떠올릴 것이며 누군가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하는 아침의 모습을 이 공간에서 떠올릴 것입니다.
'황지민'역에서는 우리 주변을 둘러싼 것에 대해 간과하고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일상은 내 주변을 가득 매우고 있는 익숙한 것이기 때문에 깨져 버리기 전까지는 얼마큼 소중하고 안정된 것인지 느끼지 못합니다. 일상이 주는 소중함, 안정감, 정신적 충족은 주거 공간, 직장, 출퇴근길이라는 거대한 공간부터 시작하여 핸드폰 충전기, 이어폰처럼 놓치기 쉬운 아주 작은 요소까지 합쳐져 완성된 거대한 탑이기에 끄떡없어 보이곤 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깃털만큼 가볍고 얇은 유리만큼 깨지기 쉬울지도 모릅니다.
시선 끝에 맞닿는 어딘가 익숙한 풍경을 섬세히 바라보던 Y는 기억 저편에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주변에 작고 익숙한 요소들로 인해 환기됩니다.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떠한 계기가 제공된다면 망각의 뒤편에 숨어있던 많은 이야기의 실마리를 조금은 되돌아볼 수 있습니다. 뇌리 저편에서 불러일으켜진 기억들은 다양한 추억을 가져옵니다. 이렇게 작은 찰나에 달라붙은 기억들은 부각되고 포착된 일상입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통해 끊임없이 과거를 환기하고 또 다른 기억들을 만들어 내며, 이는 일상으로 이어집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행위의 연속인 일상은 습관과 무의식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나'를 이루는 부분에서 큰 영역을 차지합니다. '일상'은 카를 융(Carl Jung)이 주장하는 개성화(individuation)에서 무의식적 내용을 통합해 고유한 자기 자신이 되는 과정 중, 무의식적 내용의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일상이 깨져버리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낍니다. '내'가 형성되는 과정이 어그러져 버린다면 자아가 갈 길을 잃어버리고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시 안정된 무의식을 만들어 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그러진 순간 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아 형성을 할 수 없습니다. 존 듀이(John Dewy) <경험으로서의 예술>에서 "인간의 마음은 기본적으로 동사(verb)"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인간의 마음이 관찰, 회상, 예측 그리고 판단을 수행하는 고정된 실체라는 생각은 신화라고 주장합니다. 지속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입니다. 불안정한 바닥 위에 놓인 인간의 마음이 더 중심을 잡을 겁니다. 안정된 일상이 존재해야만 그것이 깨어질 수 있고 그 조각들로 우리를 다듬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찰나 동안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은 짧지만 거대하게 다가옵니다. 중심을 잃어버린 이러한 감정들은 날카로운 유리조각처럼 몸과 마음에 깊은 자국을 남깁니다. 이렇게 쌓인 거대한 감정의 흉터들은 조각날 뻔 한 '나'를 완성시킨 살아남았다는 증거이자 영광된 상처 인지도 모릅니다.
Y의 눈앞에 펼쳐진 무시하고 싶은 수많은 고뇌들은 '황지민'역이 내뿜는 익숙함에 취하며 흐려집니다. 안락하고 명확한 울타리 아래 어린양처럼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하고 싶어질 뿐입니다. 하지만 Y는 이내 마음을 다 잡고 다시 발길을 돌려 역의 입구로 향합니다.
멀어진 일상은 앞으로 내가 넘어야 할 고난과 위기의 개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황지민'역에서 바라본 따스한 과거의 편린은 Y의 등을 찌르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이야기합니다. Y는 눈앞에 놓인 플랫폼으로 향하는 높은 계단을 오르며 다시금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표지 - Untitled M(2020) Oil on Canvas, 20 x 20 inch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