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 준다고?

수능 D-46

by 젼샘

"이걸 준다고?"

운전석 뒷자리에 앉은 아들이 호들갑이다.

수능 수학문제를 보며 하는 말이다.


"엄마, 수리논술 문제를 풀 때는 말이야,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알아내고 증명을 해야 되거든. 근데 수능 수학 문제는 너무 아름다워.

그냥 대입해서 풀기만 하면 되거든. 개꿀~"


연세대 수리논술전형을 보러 새벽부터 신촌으로 향했다.

수능 시험 이후 최저를 맞출 필요가 없으니 너도나도 연세대 논술전형에 지원한다.

물론 우리 아이도 같은 이유로 지원했다.

신촌보도블록만 밟았을 뿐인데 연대생 엄마가 된 것처럼 가슴이 울렁거렸다.

시험을 보는 학생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정말 신바람이 나서 신촌 바이브 좀 느껴볼까 싶은 학생도 있고 누가 봐도 오늘 인생을 걸고 결전을 치르러 조부모님까지 대동해서 온 학생도 있었다.


매일 자신과의 싸움을 하지만 초조함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아들은 공부를 별로 안 해서 떨리지도 않는다며 너스레를 떤다.

그게 아닌 걸 나는 안다.

수학이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이 되기까지 수학에 쏟아부은 시간은 절대적이었다.

그러니 제 딴에는 제발 수학으로 대학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교육과학원 건물로 아이를 들여보내고 비탈길을 내려오다 그대로 멈췄다.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수험생 엄마와 아빠가 보였다. 뭔가 의식을 치러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내 모든 걸 다 바치고 영혼까지 바칠 테니 우리 애가 원하는 대학 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매일 보는 학생들 쉬는 날에도 만나는 거 싫어서 그렇게 도망 다녔지만 우리 애 대학 붙여주시면 주일학교 교사도 하겠노라 약속도 했다.


리 논술문제 풀다 수능 문제 푸는 것 처럼 큰 고통을 경험한 뒤엔 작은 고통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폭풍우 속에서 헤쳐 나왔던 사람에게 이슬비는 그냥 산책길의 배경음일 뿐이다.

살면서 큰 고통은 분명 잔혹하겠지만 이후의 삶을 덜 힘겹게 만드는 기준점이 될 수 있다.


아들아...

너무 많이 아프지 않지만

인생을 값지게 배울 수 있을 정도로만

너의 폭풍이 몰아쳤으면 하고 엄마는 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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