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텃세 1

라커룸에서

by 젼샘

나는 타고난 몸치라 가만히 앉아서 하는 놀이를 좋아한다.

지리멸렬한 흑백 영화 보기, 펼치자마자 잠드는 고전 읽기, 대바늘을 이용한 뜨개질이나 프랑스 자수 놓기 같은 것들이 좋다.


그런데, 운동을 하루에 3번 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철인 남편을 만나 20년을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운동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친정식구들이 모여 당뇨 환우 모임을 할 때, 나는 해당사항 없음이다.


올해는 모든 불운이 N, 내가 S인 듯 찰싹찰싹 잘도 들러붙었다.

두 번의 후방추돌사고로 집, 학교, 병원이 내 삶의 전부인 2개월을 보내고도 일상생활 회복이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골프도 그만두었다.

그래서 20년 만에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허리 통증으로 입원을 했다.

퇴원 후 어쩔 수 없이 병원 가는 마음으로 수영을 시작했다.

음파음파부터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어찌 그걸 버티고 상급반까지 올라갔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한숲스포츠센터'였다.

내가 처음 수영을 시작한 곳이다.


거기도 텃세가 있었던가?

지금 다니는 '00시 0000 센터'의 텃세가 나를 분노하게 하는 걸 보니 한숲은 텃세랄 것을 느끼지 못하고 다녔던 것 같다.

아니면 내가 텃세를 부린 장본인이라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곳에서 마주하는 무례함이 당황스러워 요즘 자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본다.

내가 너무 온실 같은 교직사회에 갇혀있어서 맷집이 약해진 건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의 독자들에게 또 묻고 싶다. 댓글로 생각을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꾸벅

첫 번째 텃세 이야기이다.

프런트에서 회원카드를 내고 락커열쇠를 받아 락커룸에 들어갔다.

가로세로 30*30, 깊이가 50 정도 되는 졸렬하기 그지없는 사물함이다.

게다가 내가 열쇠 번호를 보고 두리번거리면 여지없이 바로 옆, 또는 바로 위에 누군가가 활짝 열린 자신의 사물함 앞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비언어적 몸짓으로, excuse me를 외치고는 가능한 먼저 오신 분보다 불편한 모양새로 내 볼일을 시작한다. 허리를 살짝 숙이거나, 옆걸음으로 조금만 물러나도 나의 excuse me는 전달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역시나 붐비지만 조심스럽게 열쇠를 사물함에 꽂아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바로 오른쪽 위 사물함을 받은 여자가 짜증 제대로 섞인 목소리를 내 귀에 대고 내뱉었다.


"왜 사물함을 이딴 식으로 가까이 주는 거야?!"


??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때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나는 이 무례함이 당황스러웠다.

누구한테 하는 소리지?

내가 지한테 뭐라 했나?

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안 하고 그녀가 던진 짜증을 내가 온전히 받은 것이 두고두고 분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자꾸 그 순간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때 이렇게 해야 했었어.'


선택 1> "그쵸?"

(빵긋 웃으며)


선택 2> "....."

(0.2초 고개를 그쪽으로 향하고 멈춘다)

이것은 상대방에게 멈춤을 통해 화를 내는 것이다.


선택 3> "피차 불편하긴 마찬가지네요!"

(앙칼진 목소리로)


아니야...ㅜㅜ 시간을 돌린다 해도 나에게 주어진 0.2초 동안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출근해서 급식을 먹으며 동료 샘들에게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삐삐리 삐삐 뿅뿅뿅 했어요~~~


내 편:

"정말요? 너무 무례하네요!~~~"라며 미간을 사정없이 찌푸려주는 동료가 참 고마웠다.


남의 편:

"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새벽 6시 반 최상급 레인에서 1번을 20년간 하고 있는 남편의 반응이다.


수영장 텃세는 왜 유독 심한지 생각해 봤다.

새벽녘 이불을 걷어차고 나올 수 있는 사람은 일단 기세가 좋은 사람이다.

20바퀴를 넘게 돌고도 심박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상급반 고인 물들은 각자의 삶에서 한 가닥씩 하는 사람들이다. 지구력과 인내심으로 자기 자신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보통 깡다구가 아닐 것이다. 그 기세가 묘하게 비언어적 위계로 나타나는 듯했다.


이것은 소리 없는 물속 전쟁이다.

수영이란 운동이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물속에서 사람의 본능이 드러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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