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슥 삭삭 나무 갈리는 소리에
온몸이 리듬을 타며 들썩거린다.
연필을 깎기 위해 회전근을 강화시키고
수영으로 등 근육을 강화한 것 마냥
온 힘을 다해 손잡이 없는 하이샤파를 돌린다.
아침 조회 시간에 아이들에게 짧게 전달사항을 전하고 각자 필요한 걸 하라고 한다.
젼쌤은 오늘도 먹잇감을 찾는 맹수처럼
연필을 찾아 나선다.(희번덕 희번덕)
그리고 조용히 다가가 묻는다.
"연필 깎아 줄까?"
이렇다 할 대답 없이 스멀스멀 필통에서 연필이 하나 둘 나온다.
연필 쓰는 학생들이 많지 않은데
신기하게 한 두 자루씩은 들어있다.
특히 공부하기 싫어하고 주변정리 잘 못하는
털털한 남학생들 필통에 뭉뚝한 연필이 많다.
나는 신나게 연필깎이 손잡이를 돌린다.
신나게 온몸을 들썩거리며 물레질을 한다.
아침마다 단골들의 연필을 깎다 보면
연필들이 말을 거는 것같다.
'젼샘~저는 어제 교실 바닥만 뒹굴었지 솔진이가 한 번도 안 써줬어요.ㅜㅜ'
'샘~저는 자꾸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나왔다 여기저기 떠돌기만 하고 한 번도 찐 주인을 만난 적이 없어요.ㅜㅜ'
'톡톡 누르면 얇은 샤프심이 쏙쏙 나오는 샤프가 부럽기도 하고 얄밉기도 해요.'
저런 저런...
사랑받는 연필이 되고 싶은 거구나....
안쓰러운 연필들아....
주인이 너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네가 쓸모없는 건 아니잖아.
연필 몇 자루 깎는 동안 혼자 마음속으로 상황극도 해본다. ㅎㅎ
우리 집 꼬맹이들이 꼬맹이었을 때
식탁에 연필깎이가 있었다.
방과 후 얼른 저녁 먹고 숙제 해치우고
학교 갈 준비를 마치려다 보니 그리되었다.
아이들이 툴툴대며 숙제를 할 때
나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젖은 손으로 연필을 깎았다.
바쁘게 한 주를 보내고 주말이 되면
연필이 뭉뚝해져 더 이상 깎기 어려울만치 짧아져있었다.
그럴 때 연필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지그시 되네였다.
'네가 짧아진 만큼 우리 아이들이 쑤욱 자랐겠구나...'
연필이 짧아질 때마다
수학의 연산을 알아갔을 테고
알파벳을 조합해 단어를 썼겠구나^^
받아쓰기에서 받침이 두 개인 글자가 너무 싫다며 징징댔겠지?ㅎㅎ
겉포장이 살짝 벗겨진 연필을 책상 위에서 굴려보면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이 또르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다시 신나게 연필깍이를 돌려본다.
한 바뀌 돌릴 때
사랑의 주문을 외고
두 바퀴 돌릴 때
격려의 가루를 뿌리고
세 바퀴 돌릴 때
모르는 문제를 피하지 않을 용기 한 스푼을 더한다.
마지막 바퀴를 돌릴 때는
무한한 축복과 응원을 흩뿌린다.
그렇게 뾰족해진 연필로 둔갑한 엄마의 사랑, 응원과 격려는 학교, 학원 어디든 함께 가서 내 아이를 응원한다. 그렇게 내 아이의 하루 동안 온종일 함께 한다.
이제
더 이상 연필 수발을 들 필요가 없게 아이들이 컸다.
큰 아이는 수능을 마치고 어른의 문턱에 이르렀고 작은 아이는 예비 고등학생이 되었다.
물론 연필을 쓰지 않는 것 같다.
연필 깎아주며 아이들 옆에서 은근히 서성일 수 있어 좋았는데
이제 필통을 들춰볼 기회조차 없어 여러모로 아쉽다.
그래도 젼샘은 오늘도 먹잇감을 찾아 헤맨다.
찾았다!!!
1교시부터 6교시까지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솔진이의 연필을 깎는다.
윤호의 연필을 깎는다.
민아의 연필도 깎았다.
민겸이의 연필
태호의 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