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 차도 급정거했다고?
그럼 내가 옴팡 뒤집어쓸 필요 없는 건가?
순간 얄팍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손익을 따진다기보다 이 재앙 같은 사고가 온전히 내 책임이라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명분이 필요했다.
구급대원의 안내에 따라 조금씩 감각을 되살리고 나자 몸이 움직여졌다.
그 즉시 차 문을 열고 내렸다.
나는 절뚝거리며 다리를 질질 끌고 앞 차를 향해 갔다.
운전자는 너무나 말끔한 상태였고 본인은 괜찮다며 노여워함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가동범위가 허락하는 한 죄송하다고 연신 몸을 조아렸다.
너무나 다행이었다.
상대방이 안 다치고 내가 다친 게 다행이었다.
횡설수설하는 내 설명때문에
우왕좌왕하다 남편이 도착했다.
나는 그제야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남편은 내 상태를 빠르게 확인하고는
상대 운전자에게 다가갔다.
정중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나 믿음직한 내 편이 상황을 수습하고 있었다.
보험사 직원이 블랙박스 영상을 보며 사고정황을 설명했다.
앞 앞 차의 급정거가 원인이더라도
앞 차는 안전거리가 확보되어 추돌하지 않았다.
안전거리 미확보.
전방주시 미흡.
반박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 죄목이 명명백백히 드러나니
억울했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사고 발생 한 시간여 만에 현장에서 벗어나
응급실로 향했다.
접수를 하며 다친 경위를 설명했다.
내가 운전자고 내가 사고를 냈다고 하니 병원비가 엄청 많이 나올 텐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사람의 안위에 앞서 돈 걱정을 먼저 하라고 할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는 걸까?
걱정스러웠지만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갈 상태도 아니었다.
엑스레이를 찍도록 의사가 오더를 내리는데
TA환자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아.... 메디컬 드라마에서 듣던 말이네....
Traffic Accident...
교통사고 환자는 의학적으로나 행정적으로나
구분되어야 하는 존재였다.
특히나 가해자인 나는 아파도 떳떳하지 못했고 직장에 끼칠 민폐를 생각하니 깊은 한숨이 나왔다.
진통제 주사를 맞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골절 소견은 보이지 않지만
부은 상태로 봐서는 심상치 않으니
정형외과 진료를 봐야 한다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바로 연결하기는 힘들었다. 대기 시간만 한 달이란다.
일단 귀가 후 MRI 촬영이 가능한 동네 병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다리를 땅에 디디지 말라며 깁스와 목발처방이 내려졌다.
운동 싫어하고 움직이는 거 싫어하는 나는
살면서 팔, 다리가 부러져 본 일이 없다.
당연히 목발도 처음이었다.
휘청거리다 기우뚱 넘어져버리고 마니
간호사가 시범을 보여주었다.
진료비를 계산해보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교통사고 가해자는 우리 사회에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레알, 오리지날 병원비 100%를 내야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입장이 되니
잘못은 했으나 서러웠다.
나는 죄인이었다.
생각해 보니 음주측정기를 들이대던 경찰과의 대면에서부터 나는 죄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