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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해지고싶다 Mar 24. 2024

신뢰의 가장 어두운 그늘: 사기당한 순간

사기를 당하고 나서야 깨달는 것들(2)

 채무자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 급한 마음에 전화를 서너통씩 연달아 걸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자꾸만 초조해져 사무실에 앉지 못하고 이리 저리 돌아다닌다. 오전 내내 한숨만 쉬다가 반차를 낸다. 불안함이 만드는 비참한 눈물을 사무실에서 보일 수는 없었기에 서둘러 사무실을 떠났다.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반차를 내고 퇴근하는 길이지만 발걸음은 전혀 가볍지 않다. 다 큰 성인이 서럽게 울고 낡은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근처에 있는 광안리 해변으로 향하는 모습은 청승맞기 그지 없지만, 나는 남의 시선을 느낄 수조차 없었다.


 아직 겨울을 머금은 봄의 바닷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얅게 입은 잠바 사이 사이로 찬바람이 온 몸을 할퀴고 지나간다. 덜덜 떨며 새우처럼 움츠려보지만 전혀 따뜻해지지 않는다.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이대로 나 자신이 없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한번에 일어나자 현실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다.


 바다 끝에 자리한 광안대교를 멍하니 바라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서 굉장한 존재감을 뽐내지만, 오늘만큼은 그저 하나의 병풍일 뿐이다. 멍하니 바라보다보니 지인과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그는 내 직장동료였다. 하지만 단순히 동료라고 하기엔 정말로 친했다. 가족들끼리 식사를 한 적도 있고, 내 아버지 장례식장도 지켜주었으며, 내 아이 돌잔치 때도 부자되라고 금수저도 만들어준 친형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보낸 시기가 10년이었다. 그런 그가 확신을 가지고 권유하였기에, 나에게는 아주 큰 돈이지만 믿음으로 기꺼이 빌려주었다. 차용증도 없이 멍청하게.


 한 때 그는 소위 정말 잘나가 보였다. 잇따른 투자에서 계속 성공하였고, 투자 수익이 어느새 월급보다 훨씬 많아지자, 직장도 관두고 투자에 올인하게 되었다. 그가 직장을 관두고 나서도 꾸준히 연락을 하였기에 나는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다만 돈을 상환할 시기가 다가왔고 나에게도 여러 사정이 생겨 더 이상은 기다려줄 여유가 없었기에 상환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몇 달간 변명과 회피를 거듭한 끝의 결말은 파멸 뿐이었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간접조명 아래에서 아내가 소파에 앉아 졸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인기척에 일어난 아내는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까봐 걱정하지만, 마음이라도 상할까 재촉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리고만 있었다. 다시 한번 눈물을 흘리니 아내는 따뜻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내일, 우리 병원가보자. 돈보다 당신을 먼저 지켜야겠어."


 아내의 걱정에 나는 그저 '응'이라고 힘없이 대답한 후 소파에 기대 눈을 감는다. 아내의 마음에 고마움도 표하지 못하고, 적막에 질식할까 무서워 침실에도 들어가지 못한다. 신이 있으시다면 딱 한번만 살려달라고 속으로 고함으로 지르며 눈만 감고 차가운 몸을 소파에 억지로 구겨넣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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