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렇기에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이겨내지 못한다면 적응할 수 있을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난 고소공포증이 아주 아주 심하다. 어느 정도 높이의 계단이나 난간 위에 서 있으면 절로 다리가 후들후들거린다. 해안산책로로 조성되어 있는 철제 난간을 지날 땐 침을 꿀꺽 삼키고 한 발자국씩 겨우 발을 떼곤 한다. 그마저도 난간 아래 절벽을 힐끔 보는 날에는...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붐비된다.
이런 나약한 초등학생이 못마땅했던 호랑이 같던 아버지는 '극기'를 이야기하시며,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 무작정 나를 빌라 옥상에 데리고 올라가셨다. 용감한 동생들과 친구들은 같이 올라 가자는 아버지의 말에 먼저 올라가 옥상에 돗자리를 펴고서는 한참을 으스대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즐겁던 그들과는 다르게 나는 분명 난간이 멀리 있음을 앎에도 올라갈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난간으로 굴러가 떨어질 것만 같았기에 옥상에서 마음 편히 앉아있는 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옥상 입구에서 악몽같던 경험은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내 마음에 남겼다. 아버지의 바람과는 다르게 여전히 나는 고소공포증을 이겨내지 못했다
'봄이'도 나와 비슷하다. 조금만 높은데를 올라가면 꼼짝도 하지 못한다. 좋은 것만 주고 싶었는데 이런 점까지 주게 되어 '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식은 부모를 닮기 마련인데.
그렇기에 나는 봄이가 '봄이'가 두려움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주려고 한다. 지금 내가 윽박을 지른다고, 억지로 높은데 올린다고 가 '봄이'고소공포증을 이겨낼 거 같지는 않기도 하고, 또한 지금 '봄이'의 마음에 나와 같은 얼룩을 남긴다면 나중에는 이겨내고 싶어도 정말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마음도 들기 때문이다.
아이의 모습이 못마땅하거나 도와주고 싶더라도, 심호흡을 한번하고 한번만 더 기다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