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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냥해지고싶다 Apr 01. 2024

신뢰의 가장 어두운 그늘: 사기당한 순간

지인을 만나다(1)

 

 '불행을 만나게 되면 개인적 품위에 초점을 두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지혜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라.'


 [행운에 속지 마라 by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누구에게나 불행은 다가온다. 어떤 모습을 하고 올지, 언제 올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불행을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면) 우리는 어떤 불행을 만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불행과 부딪쳐 품 안의 소중한 것들을 놓쳐 버렸다. 땅에 떨어져 깨지고 흩어져 버린 내 인내와 노력의 흔적들. 흙이 잔뜩 묻어 쓸모가 없어졌을지라도, 지금이라도 품위 있고 지혜롭게 주워 담고자 한다.


 그래서 더 이상 불안해하며 멈추는 대신 지인에게 문자를 남겼다.

  

 '이번 주 일요일, 집 앞에서 봅시다.'

 

 내 문자의 답은 아주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짝을 만났다.





 일요일 아침, 불과 2달 전에도 봤지만 오늘은 지인을 보는 것이 너무나 떨렸다.

 

 혹시 오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고, 일이 뜻한 대로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막막함도 같이 다가왔다. 불안한 마음이 내 발걸음을 서두르게 한다.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앞서 도착한 나는 멀리 서지만 지인의 집이 보이는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 공원에는 주말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볐다.


 옛 생각들이 구름처럼 흘러간다.


 노력해서 성공하자고 수 없이 같이 했던 다짐들. 게으르게 살지 말라고 받았던 독려. 서로의 가족들을 챙기던 모습들.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따뜻하기만 할 줄 알았던 봄의 변덕이 가슴속에서 요동을 친다.


 잠시 뒤, 지인이 나타났다. 아주 반갑지만 미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곁에서 살짝 나는 맥주냄새. 씻지도 못하고 곧장 나온듯한 그의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항상 자신감에 차 있었고, 옷차림과 행색을 단정히 하던 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모습이었다. 당황한 모습을 숨기기 위해 말을 둘러대며 근처에 봤던 카페로 서둘러 가자고 하였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2잔을 주문했다. 카드도, 휴대폰도 정지당한 그는 구겨진 만 원짜리를 내밀며 자기가 커피값을 계산하겠다고 한다. 괜찮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지만, 추레해진 그의 행색은 나를 괴롭게 했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셔도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뭇거리는 내 모습에 그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미안해."


 그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줄줄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주식 장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니, 자신에게 돈을 맡겼던 사람들이 다들 돌려달라 한다고. 그는 그 투자금들을 책임지기 위해 대출도 받고 했지만 나중에는 대출로 인해 조급해진 마음 탓에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내 돈만큼은 수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더라고. 계좌가 압류당하기 전에 돈을 줬어야 하는데라고 이야기를 하는 그는 마치 준비한 듯이 그동안의 변명만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3년만 기다려준다면 반드시 내 돈을 돌려주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난 바로 대답하는 대신 그대로 앉은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예전에 우리가 같이 놀던 거리 곳곳에는 셔터를 내린 채 임대가 붙은 가게들만 보였다. 새빨간 색으로 임대 표시를 붙이게 된 가게들의 주인들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인의 얘기에 답을 해야 하는데 머릿속으로 새빨간 물줄기들만 지나간다.


 나는 어떻게 품위 있고 지혜롭게 대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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