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by 송나영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다는 게 이렇게 자랑스러울 줄이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려줄 것이 없어서 자식에게 미안했었는데 상속세가 어마무시하다는 걸 알고부터 아들한테 떳떳해졌다.

현금은 통장을 스치듯 지나간다. 상속세는 현금으로 낸단다. 팔리지도 않고 팔 생각도 없는 제주도와 거제도에 있는 땅 때문에 엄마랑 입씨름을 하곤 했다. 칼같이 말을 메다꽂는 엄마한테 배운 그대로 엄마한테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 정리하시라고 했다. 상속세 나올까 걱정이 컸다. 여럿이 나눠서 산 거제도 땅은 한 오 년 전에 간신히 팔렸다. 너무 오랫동안 안 팔려서 딸들에게 땅을 상속했던 어느 집이 끝까지 팔기를 거부했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겼었나 보다. 그 땅은 해결됐지만 제주도의 어느 곳에 있는 지도 모르는 땅 때문에 가끔 걱정은 된다. 가시기 전에 정리하라고 만날 때마다 말을 했었다. 엄마랑 간간히 만났을 때 점점 살벌하게 엄마한테 말을 하곤 했었다. 내가 점점 독해져 갔다. 이제야 나의 말로 상처가 컸겠다는 생각도 든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는데 나는 포기했었다. 집안 형편이 갑자기 힘들어진 것도 있었고 엄마 혼자 고생을 하는 터라 엄마를 도와 도매업을 키우려고 했다. 새벽 도매 시장에서 머플러를 만들어 팔던 엄마가 걱정이 됐었다. 자식이 자랑이 되지 못하고 시장에 나와 장사하는 것이 몹시 못마땅했던 엄마와 자주 싸우곤 했다. 한심하게 보는 엄마의 눈초리를 나는 견디지 못했다. 머플러를 무역으로 키워보자고 덤벼들었지만 엄마는 내가 빨리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랐다. 돈 잘 버는 엄마 친구들의 자식들과 비교하면서 나도 그들처럼 월급의 반을 따박따박 갖다 주기를 엄마는 몹시 바랐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는 환갑 이전에 그 일을 그만두었다. 엄마가 일흔을 중반이나 넘기고 나랑 같이 머플러를 만들어서 무역을 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말로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자식들이랑 함께 의류 제조업을 계속했던 엄마의 지인들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서 몹시 부러웠던 거다.

아들은 이제 자기 앞길을 찾아보고 노력하는 중이다. 아들을 볼 때마다 기특하다. 매일매일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에 내가 흥이 난다. 중고등학교 때 제발 노력을 좀 하라고 다그쳤는데 지금은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내 말이 점점 짧아진다. 아들이 신나서 자기 자랑을 하면 듣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아들한테 엄마가 힘껏 뒷바라지해 줄 테니 더 공부하고 싶으면 알아보라고 했다. 아들 공부 뒷바라지에 쓰고 내 병원비로 충당할 만큼만 남으면 되는 게 아닐까. 큰돈은 어차피 내 몫이 아닌 듯싶다. 있는 돈 톡톡 털어서 아들이랑 나랑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거다.

얼마 전에 어느 영상에서 자수성가한 분이 암에 걸리고 6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 당신 아플 돈은 마련해 뒀으니 60%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고 나머지는 자식들에게 돈을 물려줬다는 얘기를 들었다. 청소년 시절에는 나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고 싶다는 꿈을 야무지게 꿨었다. 오십 넘게 살았지만 쥐꼬리만 한 기부금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나중에 나도 세상을 떠날 준비를 그분처럼 멋지게 하고 싶다.

집 한 채면 충분하다. 사회에 환원할 만큼의 재산은 못 만들었지만 아들의 꿈을 펼치고 남은 나의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하다. 집에 돈을 깔고 살 일이 아니라 이걸로 미래를 만들어야겠다. 혹시라도 내 꿈이 대박이 나서 계산하지 않고 마음껏 기부할 수 있다면 더 바랄 일이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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