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학대

by 송나영

모진 말은 가족이 한다. 다 잘 되라고 하는 말이란다. 모진 말은 독을 부른다. 독을 뿜는데 독인 줄 모른다.

얼마 전에 들은 얘기다. 두 아들을 키운 엄마는 큰아들과 살았다. 큰아들은 가난한 집 딸과 결혼했다. 둘째 아들은 부유한 집 딸과 가정을 이뤘다. 시어머니는 부유한 집에서 나고 자란 며느리가 이뻐서 함부로 아무 말이나 하지 않는다. 모진 말은 큰며느리 차지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랑 함께 살아주는데도 이쁘지가 않다. 우리 아들이 손해 본 거 같아 약이 오르고 속이 쓰린가 보다.

큰 며느리는 착한 사람이었다. 모지리 남편이 시어머니의 말을 들어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동안 큰며느리는 썩어 들어갔다. 자식을 셋이나 키우는 동안 가슴에는 시퍼렇게 큰 멍이 들었다. 그 며느리가 떠난 날은 큰비가 내렸다. 하루 종일 장대비가 내린 그날 큰며느리는 자식 셋을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다. 늘 웃던 사람이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며느리 될 아이를 따로 불렀다. 결혼을 앞두고 점쟁이는 사돈 집안에 우환이 많다고 했다. 자기 아들이 잘 안 될까 봐 불안했다. 시어머니 될 사람은 누구네 조상인지도 모를 조상신을 모시고 굿인지 천도재인지 요상한 것을 절에서 지내자고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참고 하자는 친정어머니의 말을 듣고 미래 시어머니가 하자는 대로 했다.

당신 아들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했다. 아들한테 미움을 사기 싫다고 했다. 두고두고 약이 오른 며느리는 남편에게 당신 어머니가 이렇게 했다고 얘기했다. 아들은 그때 하지 말았어야지 왜 해놓고 후회하냐고 말한다.

자기 아들에게 무언가 해주는 것이 아들을 망치는 거라고 생각하는 시어머니는 자식을 결혼시키면서 사돈한테 돈을 넙죽 받아 아들의 사업장을 차렸다. 그리고 투자를 해서 돈을 불려주겠다고 사돈한테 돈을 빌렸다. 아들이 가게를 옮기려고 새로운 곳으로 이동했을 때 시어머니는 당신이 늘 보던 점집에서 그 자리는 죽는 자리라고 했다며 죽어도 안 된다고 아들을 뜯어말렸다. 그리고 아들한테 사돈한테 빌렸던 돈을 보태 주었다.

이십여 년이 흐른 뒤에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아들을 위한 기도비를 보태주기를 바랐다. 아들을 위해 당신이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 모른다며 점집에 갖다 바치는 그 기도비를 이제는 며느리가 내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며느리한테는 너네 집안의 조상 때문에 자기 아들이 안 되는 거라고 했다. 며느리네 집안은 가족끼리 우애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 아무 걱정거리가 없는 집이다. 그 며느리는 늘 동서가 왜 시댁에 발길을 끊었는지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동서는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 자랐다. 넉넉지 못한 살림을 돕기 위해 결혼을 해서도 일을 계속했고 친정 부모님께 도움을 드렸다. 큰며느리한테는 받은 게 있으니까 13평 오피스텔로 살림을 내주었지만 둘째 며느리는 해 온 게 없어서 같이 살았다. 며느리는 모멸감을 느꼈으리라. 자기 집안을 깡그리 무시하는 시어머님의 독한 말이 듣기 거북했을 거다. 점점 쌓여가는 말은 봇물이 되어 둑을 터뜨린다. 둘째 며느리는 어느 날 대성통곡을 하고 시댁에 다시 오지 않았다.

자식한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아는 어머니였다. 아들이 지방의 어느 대학교를 다닐 때 아파트 전세 사기로 돈을 다 잃을 지경에 사색이 되어 어머니께 와달라고 했단다. 어머니는 가 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을까? 자식이 알아서 하도록 가지 않았다. 그렇게 자란 아들은 자기 자식이 40도를 오르내리는 고열로 밤새 시달릴 때 부인의 다급한 전화에 한 마디 했다. 동료들과 술자리에 있었던 남편은 내가 지금 집으로 들어간다고 자식의 열이 내리는 것도 아니고 안 아플 것도 아닌데 집에 바로 간다고 뭐가 달라지냐고 했다. 술자리가 끝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가 마음으로 챙겨주지 않고 키운 자식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내 앞가림하기에 바빠서 삶을 사는 것도 벅차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내 삶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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