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여행

by 송나영

파주 헤이리마을 오랜만이다. 여름이 끝나가나 싶더니 벌써 쌀쌀하다. 가을이 후다닥 지나가버리기 전에 지인과 함께 길을 나섰다.

황인용의 카메라타라는 곳에 처음 왔다. 의자 두 개를 작은 원형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줄로 맞추어 놓았고 오직 음악감상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음악감상실이 처음이라 낯설었다. 빵빵한 스피커로 귀호강을 하는 것에 비해 좌석이 아쉽다. 그냥 앉아 입 다물고 들으라는 건지 앞으로 나란한 좌석이 극장 같다. 좀 더 편안하게 앉아 음악에 푹 빠졌으면 좋으련만 말이다. 나이 든 사람들도 꽤 보인다. 입장권을 사면 차를 고를 수 있다. 자리를 잡으면 차를 가져다주고 책을 읽는 사람이나 나처럼 노트북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받침대를 가져다준다. 지인이 이곳을 추천하면서 여기서는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니까 책을 가져오라는 말에 그동안 밀린 글이나 쓰려고 노트북을 챙겨 들고 왔다.

추석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어디 가기도 마땅찮았었다. 가끔씩 반짝 해가 뜨면 가을 햇살을 맞으러 나섰다. 지난번 아침에 동네를 나섰다가 반짝반짝한 햇살이 아까워 집으로 들어가던 도중에 방향을 틀어 원주로 향했다. 우중충한 먹구름을 일주일 만에 벗어버린 하늘이 더없이 파랬다.

자주 다니던 원주 용소막성당이 아닌 치악산을 목표로 차를 몰았다. 치악산 둘레길은 처음이었다. 맨발로 걷는 산책길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근처 직장인이 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러 하나 둘 산책길로 들어섰다. 사람들로 붐비지도 않았고 혼자이거나 둘, 서넛이 모여 산을 올랐다. 높지 않은 산둘레를 맨발로 걸었다. 발바닥이 금세 적응을 한다. 처음 밟을 땐 무척 따갑더니 곧 참을 만하다. 중간중간 진흙 같은 땅도 있어 부드럽게 밟힐 때도 있었다. 한 삼십 분 천천히 돌다 내려왔다.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젠 무엇이든 무리해서 하고 싶지 않다.

치악산입구에서 좀 떨어진 듯하다. 시내로 나오면서 한옥으로 만든 베이커리 카페에 들렀다. 빵이 커서 남길 줄 알았는데 후딱 다 먹었다. 카페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커피 한 잔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섰다. 박경리문학공원을 향했다. 박물관 같은 곳은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가 없었고 박경리선생이 토지 3,4부를 썼다는 집을 겉에서 구경했다. 이층 집이 단아하다. 정원에 둘러싸여 고즈넉하다. 삼십 분을 기다려 해설자의 설명을 들으며 집을 구경할까 하다가 다음을 위해 아껴두고 나왔다. 또 올 구실을 만들고 원주를 벗어났다.

쳇바퀴 돌듯이 똑같은 일상에서 가끔 일탈하듯 길을 나서면 신이 난다. 속이 뻥 뚫리는 것만 같다. 같은 일의 반복은 밥벌이의 안정감을 느낄 수 있지만 답답함이 종종 차오른다. 덕분에 살아갈 수 있어 고맙기도 하지만 내 수족의 고단함을 위로해주지는 못한다. 가끔 맑은 공기로 씻어줘야 한다. 눈에 녹색도 가득 채우고 마음에 숨을 불어넣어 주어야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한나절의 원주 여행이 달콤했다. 지인에게 다음에 박경리문학관을 같이 가자는 약속을 하면서 몇 주 전에 약속했던 시월의 여행으로 어디를 갈지 얘기를 나누다 파주 헤이리로 정했다. 지난번에 지인의 가보고 싶은 음식점 목록에 있었던 터키 음식점을 달려왔었다. 7시가 넘지 않은 시간이었는데도 식재료가 다 떨어져 먹을 수가 없어서 아쉽게 발길을 돌렸었다. 그 아쉬움이 파주 헤이리에 다시 가자는 새로운 약속이 되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고 터키음식점에 왔다. 음식점은 구석구석 이쁜 장식들이 많았고 아기자기하다. 그래서인지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이 종종 보인다. 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와 중년의 부부도 있다. 음식을 탐하러 온 나 같은 사람에겐 양이 좀 아쉽다. 배가 빵빵하게 터질 정도로 먹고 뒹굴거리기 좋아하는 나에게 입맛 돋우기 정도라 한 상 가득한 한정식이 그리웠다. 터키음식이란 것도 새롭게 겪어보고 헤이리마을을 산책했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참 많이 눈에 띈다. 인테리어 소품을 집에 두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 천국이다. 구경하기가 많이 미안하다. 헤이리를 평일에 와서 그런가 사람도 별로 없이 한적하다. 사람을 기다리는 가게 주인들에게 실컷 눈요기만 하면서 돌아 나오기가 멋쩍다.

헤이리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카메라타에 왔다. 음악이 온몸에 꽂힌다. 커다란 스피커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니 행복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주중에 놀러 다닐 수 있어 참 감사하고 놀러 다닐 수 있게 적당히 벌어주는 밥벌이가 있어 고맙다. 기타 소리가 멋지게 울려 퍼진 이 공간에 나 혼자 있는 것만 같다. 주변이 모두 사라지고 음악과 나만 오롯이 느껴진다. 가을여행이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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