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깨서도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는다. 짜증이 확 솟구쳐 오른다. 꿈에 엄마가 나를 찾아온 거다. 희한하게도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으로 엄마가 나를 만나러 왔다. 엄마를 보는 순간 난 얼었고 움찔했다.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오는 엄마가 공포스러워서 나는 집안에서 엄마를 피해 도망을 쳤다. 아직도 엄마는 나한테 공포의 존재다. 육십이 내일모레인데 엄마에 대한 내 애증은 여전하다.
이혼을 하면서 엄마한테 마지막 문자를 넣었다. 이혼을 했고 잘 해결됐으니 평안하게 사시라고 깍듯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다시는 엄마를 안 보리라. 당신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한 결혼을 했다. 딸이 이혼하고 집으로 돌아올까 두려워했던 당신의 마음에 나는 상처받았다. 왜 애 딸린 남자랑 결혼하느냐고 펄쩍펄쩍 뛰었다. 첫 번째 남편의 폭력으로 친정에 잠시 있었을 때도 나는 콩처럼 볶였다. 왜 그쪽 부모는 아무런 말도 않고 있냐고 그 부모를 만나봐야 되지 않겠냐고 난리를 쳤다. 마음과 몸이 만신창이가 돼 돌아온 딸에게 위로라고는 없었다. 다시 돌아간 나에게 엄마는 안녕하냐고 묻지도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다.
명절 때마다 입씨름을 했다. 상처를 주고 할퀴는 소리가 오고 간다. 제부와 애 딸린 남자를 비교하는 건 늘 일상이고 내 자식도 동생의 딸과 비교를 한다. 아이도 모르지 않는다. 어느 날 넌 공부 잘하냐고 묻는 외할머니에게 아들은 느닷없이 외사촌누나보다 못한다는 말을 해서 내심 놀랐다. 아들도 자기를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눈빛이 외사촌누나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었나 보다. 그 눈빛이 달라진 건 아들이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묵묵히 조문객을 맞는 모습을 본 뒤부터였다. 갑자기 아들한테 살갑게 굴었다. 개밥의 도토리 취급을 했는데 말이다.
당신의 가장노릇을 내가 도와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결혼 전까지 나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열심히 하는 것에 비해 늘 통장은 마이너스였다. 당신 친구의 아들딸이 얼마나 잘 나가는지 얘기하며 다달이 백이상을 보태준다는 얘기를 끊임없이 했었다. 돈 달라는 말을 그렇게 한 거다. 당신이 늙어서까지 이렇게 일을 하는 것이 서럽다고 나를 붙들고 하소연을 길게 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 어느 날 괜히 일을 관뒀다며 더 할 걸 그랬다는 둥 다른 집 자식들이 대를 이어 도매업을 하는 것을 보고는 너랑 같이 할 걸 그랬다는 둥 속 뒤집는 소리만 했다. 고3 때 허리디스크로 다리를 절고 다니며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엄마는 나를 데리고 접골원이며 지압사를 찾아다녔었다. 당신은 일하랴 딸 데리고 다니랴 힘들었는지 그렇게 아프고 힘들면 죽어버리라고 했었다. 그랬던 엄마가 당신이 허리가 아파 다리를 끌며 다니면서 네가 이렇게 아팠구나라고 했을 때 내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안 만난다. 엄마를 안 만나고 마음 한편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평화롭다. 엄마에게 안녕하시라는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해 명절을 조용히 나 혼자 보냈다. 그다음 해 명절도 아버지의 영탑만 다녀오고 나 혼자 보냈다. 몇 해를 그렇게 보냈다. 이제는 마음이 잔잔하다. 나를 흔들고 뒤섞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생기지 않는다. 이모는 그래도 엄마 찾아가라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나는 더 이상 죄짓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도리를 다 하겠다고 찾아가서는 악만 쓰고 돌아오는 일을 수도 없이 했다. 결혼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리더니 이혼하지 말라고 기도하는 엄마를 보면서 절망했다. 정말 자식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남보다 못한 관계였다.
사랑한다. 계절이 바뀌었다면서 문자를 보낸다. 나는 지워버린다. 엄마의 문자는 끔찍하다.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언제 어느 때고 간에 갑자기 짜증이 치솟는다. 엄마와 함께 한 기억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다. 상처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퍼붓고는 언제 그런 말을 했었냐고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 너는 안 한 말을 했다고 한다고. 어느 날은 내가 소리를 쳤다. 내가 미쳤냐고 듣지도 않은 말을 들었다고 그런 말을 지어내겠냐고. 엄마의 독설이 심해질수록 나의 독설도 만만치 않았다. 엄마는 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사람이라며 내가 힘들 때 나를 더 힘들게 한다고 악을 썼었다. 평화로운 날들에 가끔씩 돌을 던지는 건 엄마의 문자다.
나는 아직도 엄마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니 안 만날 거다. 이제야 나답게 살고 있다. 내 본성이 이거였다는 걸 느낀다. 마음이 힘을 쓸 일을 없으니 평화롭다. 사십 해 가까이 내 삶과 겨루고 나를 둘러싼 관계 때문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텼다. 엄마가 등장하는 악몽은 가끔 꾼다. 나는 단 한 번도 엄마를 반기지 않는다. 꿈에서조차 엄마를 온몸으로 거부한다.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등장하는 꿈은 공포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