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by 송나영

내 이름은 요즘 아이들 이름으로 많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나랑 같은 '나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세 명이나 있었다. 그때는 흔치 않았는데 요즘 흔하다. 우리 때는 은영, 미영, 은주, 현주, 혜영, 경자, 미자, 미숙, 은숙 이런 이름들이 흔했다.

병원에 갔을 때 나는 흔히 아이들 이름으로 오해를 받곤 한다. 이비인후과를 갔을 때는 당연히 아이인 줄 알고 부르다가 아줌마인 내가 등장하면 간호사는 당황한다. 종종 겪는 일이다. 십여 년 전 추석 전날쯤이다. 면봉으로 귀를 후비다가 갑자기 솜이 쏙 빠져서 귀에 박혔다. 귀는 먹먹하고 당황스러웠다. 주변의 이비인후과가 연 곳이 있나 찾아보니 명절 전이라 이미 문을 다 닫았다. 며칠을 참고 있을 생각을 하니 답답했고 근처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은 사람들로 붐볐다. 무엇 때문에 왔냐는 질문에 귀에 솜이 박혀서 왔다고 했고 차례를 기다렸다.

확연히 들리는 내 이름 석자. 다들 누구 씨로 부르는데 나만 이름 석자를 외쳤다. 의사는 벌떡 일어선 나를 보고 너무 당황스러워했다. 이름 때문에 머리 허연 아줌마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나 보다. 게다가 귀에 면봉의 솜이 들어간 거니 더 어린 애일 거라 생각한 거 같다. 이름 때문에 애 취급을 당하는 일이 흔해서 이젠 그러려니 한다. 의사의 확장된 동공은 곧 점잖게 나를 대하는 걸로 바뀌었다. 동생은 응급비용이 들어가면 더 비쌀 거라고 추석 명절 며칠만 참으라고 했지만 귀가 먹먹한 불편함을 견딜 수가 없었다. 별거 아닌 걸로 응급실을 더 붐비게 만들어서 내심 미안했지만 갈 병원이 없었다.

아들 이름을 바꾸었다. 아들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던 사춘기 시절에 답답했던 나는 사주를 보러 갔었다. 아들 이름이 많이 안 좋다며 바꾸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참 많은 이름을 받았다. 루겸, 준혁, 주원 등등 여러 개였다. 나를 보는 아들의 눈이 싸늘해져 갔고 입은 점점 다물었다. 아들이 잘 되길 바란다는 명목 아래 아들을 들볶았던 내 욕심 때문에 아들과 멀어진 거였다. 아들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아들은 시끄러운 부모 때문에 속도 무던히 썩히며 살았다. 남남처럼 사는 부모를 어린 아들이 감당하기에도 쉽지 않았을 거다. 엄마는 친가에 발길을 끊었고 아버지 손을 잡고 억지로 친가에 갈 때마다 엄마의 욕을 들었을 거다. 며느리가 미우니 손주가 이쁠 리가 없다. 손주 앞에서 말조심을 하지 않으니 별말을 다 들었을 거다. 아들은 그걸 참다가 결국 사춘기를 지나면서 터지기 시작했다. 곪았던 마음의 종기가 터져 나왔다. 이름 석자가 아들한테 안 좋다니 아들을 달래서 이름을 바꿨다.

내 이름은 외할머니댁에 사셨던 작명가 분이 지으셨다고 들었다. 작명가한테 이름을 받았던 나도 자연스럽게 아들 이름을 작명가한테 맡겼다. 돌아보면 내가 열심히 찾아서 이름을 지어도 되는데 내가 자식을 키우는데 정성이 부족한 엄마였다. 그저 앞이 막막하고 답답해서 어떻게 될지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자식을 닦아세운 것만 같다. 아들 이름을 바꾸고 달라지길 바랐다. 나쁜 일이 모두 사라지길 바랐다. 아들의 앞날이 창창해지길 바랐다.

무엇이 될지 아직 모른다. 어떻게 삶을 끝마칠지 모를 일이다. 다만 아들이나 나나 부끄럽지 않은 이름으로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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