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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Aug 01. 2024

다시 시작

  곱슬머리가 난다. 내 머리카락은 직모였는데 반백이 되면서 술술 빠지길래 탈모약을 먹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고 말리면 드라이기 바람에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이 훅 들리면서 텅 빈 머리통이 반짝반짝 빛났다. 심란할 정도로 머리숱이 적어져서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 지인이 탈모약을 먹어보라고 유튜브 영상을 보내줬고 어떤 약이든 환자가 원하는 모든 약을 처방해 준다는 병원을 찾아 탈모약을 처방받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머리숱이 늘었다. 머리숱만큼이나 온몸에 털이 났다. 특히 얼굴에 솜털이 가득해지고 구레나룻이 나고 팔 또한 엄청 털이 많이 자랐다. 샤워를 할 때 풀잎처럼 갈래가 진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머리털을 살리기 위해서 몸의 털은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새로 나오는 머리카락이 곱슬머리다. 어라? 이게 뭐지? 점점 곱슬기가 심해진다. 거의 이십 년 동안 단골로 다니는 미용사는 나보고 머리카락이 곱슬머리로 변했다고 희한하다고 했다. 몇 달에 한 번 머리만 자르는 나는 파마를 안 한 지가 삼십 년도 넘는다. 새로 나는 곱슬머리 덕분에 파마를 한 거 같다. 머리 손질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어서 염색도 안 권하는 미용사가 잘 됐다고 한 마디 한다. 곱슬머리 덕분에 납작하게 가라앉던 예전 머리와 달리 볼륨도 생겨서 머리숱도 많아 보인다.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거 같다. 곱슬머리가 인생 3막의 시작을 알린다. 세상모르던 십 대와 이십 대를 지나 결혼과 육아의 2막을 겨우 겨우 마감했다. 아들도 독립시키고 이제 나 혼자 오롯하게 진짜 내 인생을 즐겨야 할 때가 왔다. 하지만 나는 아직 시간을 조율할 줄 모른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놀 줄 몰라서 지켜보았고 밥 해주는 즐거움보다는 밥을 만드는 노동에 힘겨워했다. 쪼들린 살림을 보태고자 조금씩 해나갔던 일은 어느새 일상이 됐고 밥 해줄 시간도 없어서 끼니때마다 아들을 데리고 동네 식당을 전전했다. 아들을 혼자 집에 두고 늦게 들어와 마음 아팠는데 이젠 내가 혼자되어 마음 아프다. 이렇게 외로웠겠구나. 엄마 잠깐만 들어오면 안 돼? 일하는 사이 집에 잠시 들어와 아들을 안아주고는 몇 시간만 참고 기다리라고 하고는 도로 나갔다. 그때는 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도 못 했는지 모르겠다. 아들은 외로움을 이겨냈고 나름대로 혼자 노는 법을 터득했는데 나는 아직도 그때 생각에 가슴이 아리고 시리다. 과거에 매여서 혼자 잘 살고 있는 아들에게 나 혼자 애틋한 정이 넘쳐난다.

  월요일마다 아들이 온다. 취미로 드럼을 배우러 왔다가 바쁘지 않으면 들러서 저녁을 먹고 간다. 올 때마다 아들의 편안한 얼굴을 본다. 엄마가 배웅하는 걸 지독히 싫어하는 아들에게 너무 섭섭해서 물어봤다. 내가 대문 열고 잘 가라고 인사하는 게 왜 그렇게 싫으냐고 물었다. 내가 부끄러워서 나올까 봐 문을 쾅 닫냐고 했다. 아들은 감시당하는 거 같다고 했다. 내 탓이다. 애가 뭘 할 때마다 잔소리를 챙겼나 보다. 아들은 사사건건 꼬치꼬치 관심을 보이는 엄마를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그 말을 듣고는 이제 웬만하면 안 따라나간다.

  아들을 내보내면서 두 번째 자취니까 이제 너네 집에 안 갈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했다. 이사 간다고 짐을 챙기는 것도 혼자 하고 인사도 없이 나갔다. 내가 수업을 해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섭섭했다. 간다고 문자나 좀 하지. 새로 이사 간 집에 도착하고 짐을 부리면서도 연락이 없었다. 아들이 이삿짐 정리하느라 바쁠까 봐 전화도 안 했다. 아니 그보다는 무뚝뚝하게 바쁘다고 얼른 끊으라고 한소리 해서 내가 상처받을 거 같아서 전화를 못했다. 첫 번째 자취할 때 하도 자주 가서 쫓겨난 적도 있다. 그랬던 아들이 많이 달라졌다. 무뚝뚝한 것까지 나를 닮아서 살뜰하게 챙기는 건 못한다. 일주일마다 집에 오는 걸로 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전부다. 이제는 아들을 자유롭게 살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잘하는지 못하는지 아들을 챙기지 말고 정작 챙겨야 할 건 바로 내 마음이고 나 자신이다.

  며칠 전 병원에서 혈압약과 고지혈약을 타러 갔을 때 의사는 나에게 왜 그렇게 일을 열심히 하냐고 물었다. 우리 나이쯤 되면 일을 조금 덜 해도 되지 않냐고 했다. 내 딴에는 느긋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사람 눈에는 되게 피곤해 보였나 보다. 내 다크서클이 또 무릎까지 내려왔나? 판다처럼 보였나? 또 굳이 안 해도 되는 얘기를 꺼냈다. 천성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몇 년 전에 이혼을 했고 아들이 아직 대학생이라 좀 더 벌어야 한다고 했다. 비슷한 나이 또래인 내가 너무 동동거리고 사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일찍 일을 손 놓아버린 아버지는 우울했다.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냈을까? 이 긴 시간을 어떻게 그렇게 무료하게 보낼 수가 있었는지 그래서 일찍 정신을 놓아버렸는지 모르겠다. 내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면 아니 꽉 채워 하루를 보내려면 새로운 놀이가 필요하다. 느긋하게 여유 있게 천천히 해도 괜찮은 그런 일이 필요하다.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말고 돈에 쫓기지 말고 나를 만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나이가 오십이 넘어서 나를 조금씩 더 알게 된다. 여행을 동경했지만 결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과 바깥에 나가서 자는 것보다 차라리 밤새워 운전을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 새로운 풍경에 감탄하기보다 아무 미술관이나 들어가서 휘적거리며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것, 책에 대한 탐욕과 허영으로 그렇게 많이 읽었지만 뭐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것조차 없는 것, 운동신경이 좋은데도 결코 운동을 하지 않는 것, 움직이기보다 꼼짝하지 않고 엎드려서 책을 보든지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돈 아까운 줄 모르고 맛있는 거 사 먹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아간다. 나는 눈을 보러 삿포로를 가지는 않겠지만 우동을 먹으러 갈 사람인 거다. 인생을 즐기며 할 일을 천천히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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