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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Aug 01. 2024

착각

  아들을 잃어버리면 다시는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란다. 기가 차서 그 남자의 얼굴을 봤다. 그럼 당연히 고맙지. 아들 때문에 저랑 사는 건데, 정이 다 떨어지고 이미 신뢰는 금이 간 지 오래돼서 쩍 하고 갈라지기 직전인 상태인데 이 사람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 애도 없는데 내가 왜 이 집에 들어오겠냐고 했더니 그 남자 입이 쩍 벌어졌다.

  그 남자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같이 놀러 가자고 차를 빌려달라고 했다. 한여름에 휴가 한 번 가려면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데 애 봐줄 사람도 여럿이겠다 당장 먹을 것을 사들고 따라나섰다. 이 복더위에 일하는 자기를 두고 놀러 간다고 심통이 나서 전화를 했다. 가장이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놀러 가는 게 말이 되냐고 했다. 가장이 그렇게 고생하는데 가족까지 집에서 궁상을 떨며 지내야 하냐고 맞받아쳤다. 같이 놀러도 못 가는데 우리끼리라도 즐겁게 놀고 와야 되지 않겠냐고 따졌다. 어차피 본인은 집 밖에 나가는 것도 싫어하고 운전하는 것도 싫어해서 애들 데리고 어디 놀러 갈 생각은 애초에 없는 사람이다. 그가 없기에 미시령에서 행복했다. 아이들도 부모 눈치 안 보고 아빠 친구들에게 사랑 듬뿍 받으면서 신나게 놀았다. 미시령에서 이틀을 보내고 모두가 아쉽다고 속초로 향했다. 바닷가에서 빼곡한 인파에 휩쓸리니 휴가 온 기분이 제대로 났다. 숙소를 안 정해서 속초에 있는 대형 찜질방으로 모두 몰려갔고 우리는 직원 안내에 따라 열과 줄을 맞춰 잠을 잤다. 마음 편히 휴가를 즐겼다.

  첫 해외여행이었다. 제일 저렴한 코타키나발루로 정하고 길을 나섰다. 집 밖에만 나가면 나를 더 들들 볶는 남자는 불평불만이 가득했다. 가기 싫다고 난리를 치더니 저 혼자 여행지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밤새 잠도 안 자며 알아봤다. 그 남자는 남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부담스러워해서 내가 매번 여행가이드한테 양해를 구해 하루 일정을 빠지곤 했다. 미안했다. 우리는 숙소에 남아 하루를 그냥 거기서 놀았다. 그게 내 속이 편했다. 숙소 앞에 있는 동네 식당에서 똠양꿍을 먹고 호텔 앞 바닷가에서 놀았다. 가이드에게 매번 핑계를 대는 것도 힘이 들었다. 아이들과 그 남자는 즐거웠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그 여행을 생각하면 피곤하기 짝이 없다. 싸우지 않고 여행을 기분 좋게 끝내려고 내가 너무 앞장서서 그 남자가 하기 싫어할 거라고 단정하고 앞가림을 했을까? 가기 싫다더니 밤새 여행 공부를 하는 걸 보면 진짜 가기 싫어했던 건가?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일주일을 싸우고 난리를 친 끝에 안면도로 놀러 갔다. 물을 좋아하는 아들은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안면도 가기 전까지 나가기 귀찮다고 갖은 짜증을 부리는 애 아빠와 나는 휴가 한 번 제대로 간 적이 없지 않냐고 애들한테 그것도 못 해주냐고 언성을 높이고 엉망진창인 채로 출발한 거에 비해 그 해변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아마도 안면도를 다녀온 뒤로 나 혼자 애들을 데리고 놀러 다녔던 거 같다. 애들 아빠와 어디를 함께 가는 것은 너무 피곤했고 치사스러웠다. 휴가 한 번 가는데 거의 일주일을 제 비위를 맞추고 어르고 달래다 결국 내 성질을 못 이겨 큰 소리를 내면 마지못해 가자고 했다. 곰을 데리고 나서도 그보다는 나을 거다.

  집에서 먹던 김치찌개 냄비를 들고 애들 친구네와 함께 계곡을 향해 집을 나섰다. 어느 해 여름에는 애들을 데리고 안동을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에 강가에 주욱 서있는 차들을 봤다. 그 길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강에 들어갔다. 다리 아래에 가족들이 모여서 커다란 솥에 음식을 해 먹었다. 한가롭게 흐르는 강물에서 애들과 다슬기를 잡느라 느릿느릿 걸어가는 날을 즐겼다. 해가 저물도록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집에 돌아온 우리는 그 남자의 어항에 다슬기를 잔뜩 풀어놓았다. 고양이처럼 하루 종일 어항에 붙어서 구경하는 그 남자는 다슬기를 반겼다. 우리는 그 남자를 빼고 양평 계곡으로, 강릉 경포대로 놀러 다녔다.

  그 남자에게 이혼협의서와 함께 이혼하자는 문자를 남겼다. 그가 떠난 자리에는 캠핑용품이 잔뜩 남았다. 그는 장문의 문자로 예전에 애들과 함께 떠났던 여행이 너무 좋아서 언젠가 함께 할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며 사모았다고 했다. 도대체 우리가 언제 캠핑을 간 적이 있다고 어떤 여행이 좋았다고 하는지 아무리 기억을 뒤져도 생각나지 않는다. 저 혼자 꿈을 꾸었나? 여행만 가자고 하면 신경질부터 내던 사람이 이런 걸 꿈꾸었다고? 자기 혼자서 언젠가 가족이 함께 다닐 때를 바라면서 예행연습도 했던 모양이다. 사용한 흔적도 있다. 아들이 사용하길 바란다고 했다. 아들도 나도 캠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몽땅 고물상에 다 팔았다. 그 남자는 우리를 너무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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