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나영 Aug 13. 2024

고물상 할머니

  책 욕심에 끌어모은 책이 만 권, 아니 이만 권이 넘을 거다. 방 세 개에 가득 차고 거실 벽면도 책을 천장까지 쌓아 올렸다. 초등학교 때 즐겨보던 금성출판사의 칼라명작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까지 한 권도 버리지 않고 갖고 있었다. 아버지와 내가 워낙 즐겨보던 책이라 버릴 수가 없었다. 독서지도를 하겠다고 똑같은 책을 세 권씩, 네 권씩 사서 모으다 보니 둘 곳이 없다. 책장에 이중 삼중으로 앞뒤로 책을 넣어둬도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집 입구에 있는 신발장에 책을 쌓아두어서 다른 집처럼 신발장에 있는 거울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독서 지도 한다고 서울과 경기권에 있는 헌책방을 들락거리고 책을 구했다. 부족한 책장을 늘릴 수가 없으니 결국 아끼던 전집들을 팔기도 했다. 월북작가가 해금되자마자 나왔던 해금작가 전집은 눈물을 머금고 신림동에 있는 헌책방에 내놨다. 그 전집을 들고 가서 조금이라도 돈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다고 그냥 두고 가란다. 옛날 헌책방은 그랬다. 알라딘이나 예스24에서 헌책을 사주기 전까지 헌책은 폐지만도 못 했다. 폐지는 돈이라도 받지만 책은 헌책방까지 힘들게 들고 가서 버려주니 고마워하라는 식의 말을 들었다. 

 코로나 때 초등생 독서지도 수업이 점점 줄다가 끝이 났다. 책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너무 많이 너무 오래 책도 손보지 않고 헌책방처럼 쌓아두었더니 집에서는 헌책방 냄새가 난다. 장마철은 지옥이다. 그 습기를 책이 다 머금어서 퀴퀴한 냄새가 말도 못 한다. 책 사이사이로 습기제거제와 곰팡이 제거제를 아무리 넣어도 쿰쿰한 냄새까지 없앨 수가 없다. 수업한다고 애들 책을 손 닿는 데 두고 아끼는 책들은 천장 가까이 올려놨더니 책이 다 망가졌다. 습기와 먼지가 합쳐져서 책이 끈적끈적했고 종이는 색이 다 바래서 책 욕심에 나중에 읽겠다고 사둔 새 책들도 모두 엉망이 돼 버렸다. 

 헌옷삼촌을 찾았다. 주변에서 말하기를 헌옷삼촌은 책을 싫어한다고 했다. 책은 무겁기만 해서 힘이 들고 돈이 별로 안 된다고 헌 옷을 좋아한다고 했다. 동네에 오가는 길에 본 적이 있던 고물상을 찾았다. 선글라스를 멋지게 끼신 할머니께 여쭤보니 집으로 오긴 오는데 그건 돈이 안 된다고 했다. 어차피 품값이라고, 매일 책을 조금씩 갖다가 팔라고 하셨다. 책이 너무 많아서 그러기가 힘들다고 했더니 그래도 꾸준히 갖다 팔면 된다고 하셨다. 겨울을 들어서면서 시간 날 때마다 차에 싣고 가서 팔기 시작했다. 시간이 좀 나면 알라딘이나 예스24에 팔 책들은 따로 분류했다. 양손 가득 팔이 떨어져라 백 권 이상씩 갖다가 알라딘에 팔았다. 지저분하거나 물 먹은 책들은 고물상으로 가져갔다. 겨울을 지나 봄이 지나가는데도 책은 줄지 않았다. 뒷 베란다며 앞 베란다까지 책장을 넣어서 가득 채웠던 책들도 몽땅 꺼냈다. 대학 때 전공서적까지 딸려 나왔다. 웬 책 욕심을 이렇게 많이 부렸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책을 꺼내 팔았는데도 책장이 비지를 않았다. 

 여기가 거울이었어? 아들이 신기한 듯 신발장에 달린 거울을 봤다. 현관에 있는 신발장 꼭대기까지 쌓았던 책을 다 꺼내 고물상에 팔았다. 아들은 책이 빠져나가면서 집이 넓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나 또한 속이 시원했다. 왜 이렇게 욕심을 부리고 부여잡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다 읽지도 못할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언젠가 읽을 거라고 기다리라고 혼자 흐뭇해했다. 도저히 책을 못 버릴 것 같던 마음을 책 곰팡이 냄새가 이겼다. 

 겨울에 시작한 책 팔기는 한여름이 돼 가도록 계속 됐다. 책을 싣고 나면 차가 가라앉았다. 차 트렁크를 열고 몇 시간씩 책을 싣는 모습을 이웃들이 많이 보았는지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엄청 책 많이 버렸던 아줌마라고 나를 기억했다. 아파트 청소해 주시는 아줌마가 아니었으면 그 책을 다 싣지도 못했을 거다. 아주머니가 책을 팔러 갈 때마다 한 시간 이상의 수고를 해주셨기에 그나마 쉽게 끝이 났다. 아니 쉽지 않았다. 집안의 책을 다 처분하기까지 6개월이 넘게 걸렸다. 책을 버리고 열다섯 개가 넘는 책장을 버렸다. 마지막 책을 털면서 고물상 할머니는 그것 보라고 끝이 나지 않느냐고 기뻐해주셨다. 

 아침의 고물상은 바쁘다. 책을 팔러 가면 아침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이마트에서 배송을 하시는 분들은 박스를 싣고 매일 오시는 거 같다. 리어카로 박스를 싣고 오시는 할아버지는 오히려 드물다. 편의점을 하시는 분은 커다란 비닐 자루에 캔을 한가득 싣고 오신다. 고물은 모두 무게로 받는다. 안 쓰는 프라이팬과 스테인리스 그릇, 들통을 모아 가져갔는데 무게가 얼마 안 돼서 만 원도 못 받았던 거 같다. 오히려 책을 차 한가득 싣고 가면 몇 만 원은 받았다. 아들 보고 가스레인지까지 차에 실어달라고 해서 낑낑거리고 고물상에 갔다. 

 고물상 할머니의 살아온 인생도 들었다. 육 개월이 넘도록 다니는 동안 할머니의 가족들과도 친해졌다. 할머니 딸이 나보고 진짜 돈 벌었다고 했다. 아무리 헬스를 다니고 아침마다 천변을 걸어도 빠지지 않던 살이 육 개월동안 책을 실어 나르면서 10킬로가 넘게 빠졌다. 지금은 몽땅 버려서 고물상에 갈 일이 없다. 조만간 프라이팬이며 버릴 것을 모아서 한 번 할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할머님 덕분에 진짜 땀으로 벌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름다운 부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