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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Aug 13. 2024

아름다운 부부

 덥다. 작년에 이사 오면서 에어컨 설치를 미뤘는데 언제 이걸 설치할지 고민만 했다. 겨울에 설치하면 싸다는데 그 겨울을 넘기고 차일피일 미루면서 장마를 거쳐 이제 한여름을 어떻게 지낼지 결정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게 됐다.

 작년에 묵은 살림을 다 버리면서 한여름이 가기도 전에 골드스타 에어컨을 떼어 버렸다. 동네 친한 언니가 이사 가면서 신혼 때부터 쓴 건데 아직까지 잘 나온다고 버리기 아깝다고 나를 주고 간 골드스타 에어컨이었다. 동네 이름이 냉장골이라고 처음 이사 와서는 여름에 시원했는데 주변에 아파트가 하나 둘 늘면서 해가 갈수록 더웠다. 이 오래된 에어컨이 고장도 안 나고 여름마다 톡톡히 효자노릇을 했다. 동네 고물상 할머님은 그 에어컨을 들고 와야 돈이 된다고 하면서 많이 아쉬워하셨다. 나 혼자 차에 싣고 가기가 너무 무거워서 책만 열심히 고물상에 갖다 팔았지 제일 돈이 되는 에어컨 실외기는 돈을 내고 버렸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집도 안 팔렸는데 홀딱 에어컨을 버려서 제일 꼭대기에 사는 나는 이사 가기 전까지 땡볕을 견뎌야 했다. 결국 새로 에어컨을 샀다. 이사 가서 다시 설치하더라도 일단 살고 봐야 했다. 인터넷을 밤새도록 뒤져서 1등급 에어컨을 골랐다. 매일 밤새워 틀어도 전기세가 안 나갈 에어컨이 필요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데 젊은 기사님이 오셔서 십만 원이 넘는 돈을 다시 내야 한다고 했다. 왜? 도대체 왜 새 물건을 샀는데 설치비용이 더 드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집처럼 많이 구부러진 경우에는 꼬불이 동관이 필요하단다. 의심의 눈초리로 꼭 그걸로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어쩔 수 있나 그렇다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따질 수도 없기에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조만간 이사 갈 건데 그러면 그때 다시 설치하는 비용은 얼마냐고 물었더니 실외기를 밖에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에 어차피 관은 새로 해야 되기 때문에 싸게 해 준다고 사십팔만 원이라고 했다.

 이사를 앞두고 친한 지인과 새 가전제품을 함께 구매했다. 지인은 에어컨을 샀고 나는 냉장고와 세탁기, 인덕션 등을 구매했다. 에어컨 설치기사님이 너무나 친절하시고 꼼꼼하게 일을 해주셨다고 했다. 나와 똑같은 에어컨을 구매했는데 설치비가 따로 들지 않았다고 했다. 가전제품을 새로 사러 다니면서 세상을 새롭게 안 게 참 많다. 설치비도 마찬가지다. 나는 십만 원이 넘게 설치비를 줬는데 그게 아니란다. 그게 정상 아닌가? 내가 아는 상식도 그랬는데 나는 이미 돈을 지불한 상황이라 황당했다. 어차피 이사 가면 새로 에어컨을 설치해야 하니 기사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일 년도 넘어서 그 기사님께 전화를 했다. 내가 기사님과 맞는 시간이 일요일밖에 없어서 그날 뵙기로 했다. 실외기를 베란다 밖에 설치할지 말지 고민을 했다. 법으로는 10층 넘으면 밖에 설치하면 안 된다고 들었다. 우리 집은 10층이다. 다들 밖에 설치한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실외기는 베란다에 그냥 설치하겠다고 했다. 그럼 부인과 함께 일요일에 방문하겠다고 하셨다. 저 무거운 걸 밖으로 들어서 옮길 걸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전한 게 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듯했다.

 시간에 딱 맞춰 부부가 왔다. 무뚝뚝한 기사님은 내가 나가기 전까지 시간에 맞춰서 해 드리겠으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에어컨에 연결할 동관을 펼치셨다. 꼬불이 동관이 필요하지 않냐고 했더니 여기처럼 베란다로 바로 연결된 곳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지난 집과 똑같은 구조다. 동관을 싸는 작업은 부인이 했다. 부인과 함께 올 것을 전화로 이미 알고 있었는데 예쁘장한 부인은 나를 의식해서 남편에게 깍듯하게 존대를 하면서 진짜 기사님 보조처럼 열심히 역할을 다 했다. 남편인 기사님이 뭐 달라고 하면 이거냐 저거냐 다시 물어보고 그러면 답답한 기사님이 직접 연장을 찾았다. 부인은 자기가 일요일만 함께 다녀서 잘 모른다고 쑥스러워했다. 부부가 어찌나 진실하고 성실한지 그들이 부담을 느꼈을 텐데 그것도 모르고 계속 부부를 지켜봤다. 날씨는 푹푹 찌고 선풍기 하나 없는 우리 집은 더웠다. 거실 천장에 달린 실링팬을 최대로 돌려도 기사님의 줄줄 흐르는 땀을 식힐 수는 없었다. 시원한 물 말고는 딱히 대접할 것도 집에 없었다. 얼른 방에서 새 수건을 꺼내 드렸더니 부인은 남편을 앞뒤로 쫓아다니며 땀을 닦아준다. 남편이 땀을 줄줄 흘리며 일하는 모습을 너무 안쓰러워했다. 부인도 더웠을 텐데 남편 챙기느라 자신은 더운 줄도 모른다. 기사님은 부인이 보조를 미숙하게 한다고 짜증을 부리지도 않았고 땀을 닦아주느라 왔다 갔다 하는 아내를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아내도 남편 일에 방해하지 않고 지켜보면서 눈치껏 땀을 열심히 닦아줬다. 기사님이 부지런히 에어컨을 설치하는 동안 부인은 주변 정리를 깔끔하게 해 주었다. 묵묵히 꼼꼼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남편과 수건을 들고 남편 땀을 훔치기 바쁜 아내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사랑스러운 부부의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방에 들어가서 쉬라는 데도 그들을 지켜보느라 옆에서 얼쩡거렸다.

 기사님과 부인이 일을 끝내고 돌아가는데 엘리베이터가 올 때까지 그들을 배웅할 수가 없었다. 격려와 수고를 아낌없이 나눌 시간을 그들에게 남겨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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