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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Sep 04. 2024

가정폭력

  왜 말을 못 하는지 모른다. 아들은 한 번도 제 아버지한테 반항하지 않았다. 나한테는 화 내고, 짜증도 부리고, 말도 안 하던 아이가 제 아버지한테는 화도 내지 않고 짜증도 부리지 않았다. 아예 건드리지를 않았다. 희한했다. 아직도 그 이유는 모른다. 아들이 아버지한테 마음을 닫은 것을 딱 한 번 술기운에 전화통화로 내뱉듯이 포기한 지가 언젠데라는 말을 통해서 알았다.

  왜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제 아버지한테 싫다고 말을 못 하는지 몰랐다. 왜 반항을 안 하는지 몰랐다. 명절에 조부모 집에 가기 싫다고 얘기하면 되는데 왜 못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거기 가기 싫어서 밤새도록 집에 안 들어오고 동네를 배회하면서 왜 그 말 한마디를 못하는지 밤새 애를 기다리는 나는 애가 탔다. 그 기억이 떠오른 건 가수 김수찬의 앞길을 막는 아버지에 대한 기사를 보고 그 글에 나온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아이들 어린 시절에 이혼했다는데 그 아버지는 아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없는 말을 지어내고 다 큰 아들이 맨발로 도망가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고도 했다. 진행자들은 그녀에게 왜 아들이 그런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건 나도 아들에게 묻고 싶었던 거다. 왜 네 아버지를 피하기만 했었는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단절을 한 것인지 묻고 싶었다.

  아들은 고등학교 시절에 잠을 못 잤다. 두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학원선생님에게 말을 했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자기가 맞을 때였는지 아니면 엄마가 폭행을 당할 때였는지 모르지만 그 기억이 떠올라서 잠을 못 잔다고 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다. 잠깐 슈퍼에 다녀올 동안 아이의 영어숙제를 도와달라고 했다. 길지도 않았다. 삼사십 분의 시간이었을 거다. 집에 들어왔는데 아이가 이상했다. 훌쩍거리지도 않고 뭔가 어색했다. 말도 우물쭈물 얼버무려서 도대체 얘가 왜 이러는지 아이의 등을 확인하기 전에는 몰랐다. 아이가 돌아서는데 목 뒷부분이 새빨갰다. 왜 목이 빨갛냐고 애 옷을 걷었는데 아이의 등이 새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애는 울지조차 못한 채 그렇게 내 옆에 서있었다. 반에서 제일 작았던 아이 등을 정육점의 고깃덩어리처럼 시뻘겋게 만들어놨다. 왜 애를 이렇게 때렸냐니까 크게 소리 내서 읽으라고 했는데 계속 말을 안 듣고 작게 읽어서 그랬단다. 제정신이 아닌 아비하고 말하기가 싫었다. 아이는 다음날 학교에서 캐러비안베이에 간다고 했었다. 이를 악물었다. 욕을 퍼붓고 싶었지만 당장 수영장에서 아이 몸을 가릴 긴팔 수영복을 사야 했다. 밤 11시에 마트로 뛰어갔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은 두려움을 부른다. 순식간에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모습을 봤다면 그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런 말을 못 하느냐고 말하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상식이 통할 때의 일이다. 고2인 전처 딸과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럴 거면 집을 나가라는 내 말에 왜 자기가 나가야 되느냐고 딸아이는 소리를 질렀고 순식간에 그 남자는 내 머리채를 잡고 휘둘렀다. 두려움에 떠는 어린 아들을 꼭 껴안았다. 피바람이 지나고 정적만이 흐르는 순간 112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이 도착했고 그 사이에 그 남자는 방에 들어가 자는 척을 했다. 경찰은 고요한 집안을 둘러보고는 그 남자가 술을 마셨냐고 물었고 맨 정신에 그랬다는 말에 자기네는 해줄 게 없다고 했다. 그들은 떠났고 기가 막힌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던 나는 친한 지인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늦게까지 넋이 나간 나와 함께 했다.

  두렵다. 이사를 하기 전까지 두려웠다. 그와 남이 되고 그는 떠났지만 마음을 졸이고 살았다. 그와 함께 살았던 집은 문득문득 살기 어린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찾아올까 봐 두려웠다. 두려움은 말하지 못하게 만든다. 보복을 당할까 봐 또 느닷없이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서 불안 속에 살게 만든다. 그 두려움이 얼마나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쉽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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