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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Sep 05. 2024

  신부님이 용하시네. 어떻게 네가 무당집에 다녀온 걸 알았지. 같이 간 언니가 그랬다. 얘가 방금 고해성사 봤잖아. 하루빨리 남편과 이혼하고 싶었던 나는 지인과 같이 무당집에 갔다. 답답한 나의 삶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이는 나에게 상처가 너무 깊어서 내 마음은 완전히 돌아섰는데 그 남자는 나를 놔주지 않을 거라 했다. 끔찍했다. 이혼 문서를 쓸 수 있을지 물었더니 소송으로 힘들 거란다. 갑갑한 마음에 며칠 후에 친한 언니들과 성지에 갔고 나는 고해성사를 봤다. 그날 신부님은 도대체 왜 무당집을 다니냐고 열변을 토했다. 그날 준비한 내용은 어디 가고 무당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스무 명도 안 왔고 안방 크기 정도의 성당에 고해성사를 본 사람은 몇 명 안 되는데 대놓고 욕하는 셈이다. 무당집까지 가게 된 신자의 마음은 안중에 없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한 신자가 괘씸했나 보다. 내가 성사를 안 보기 시작한 게 그날 이후이다.

   살아온 세월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사연이 다르고 겪은 게 다른데 어떻게 감히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사연마다 절절하지 않은 게 또 있을까? 누군들 무당집에 가고 싶고 누군들 점집에 가고 싶어 가겠냐고. 삶이 뜻대로 안 풀리고 생각대로 안 흘러가니까 답답한 마음에 한 번쯤 찾는 거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말하는 것만큼 무례한 일은 없다.

  나라면 어떻게 할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자기는 절대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건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함부로 장담하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겪고 상상도 안 해본 일을 하게 된다. 친한 언니가 티브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사람이랑 사냐고 자기라면 당장 헤어졌다고 했다. 그 언니는 새엄마한테 오랜 시간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새엄마와 돈 문제로 늘 시끄러웠다. 돈을 빌려주고 못 받아서 속상해하는 일이 늘 반복됐다. 도대체 왜 자꾸 돈은 빌려주냐는 말에 나이가 60이 다 된 그 사람은 새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돈을 빌려주면 자기한테 잘해 줄거라 믿었다. 돈을 빌려가는 순간만큼은 다정하다고 했다. 그 얄팍한 사랑을 받으려고, 새엄마가 자기 자식들한테 애틋하게 하듯이 한 번만이라도 따뜻하게 배려하는 말을 듣고 싶어서 돈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그이의 새엄마는 잘 해준 적이 없다.

  아버지가 말을 잃은 것은 아마도 말이 안 통해서 그런 건 아닐까? 당신은 사랑한다고 무척 따라다니다가 엄마와 결혼했지만 맞지 않았다. 그걸 어린 딸에게 밥상머리 교육으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굳이 결혼하지 말고 살라고 가르쳤다. 당신은 실직생활을 오래 했고 부인과 자식에게 무시를 당하면서 살았다. 예전에는 가정환경조사서라는 걸 써서 담임께 제출했다. 육성회비를 못 낼까 봐 그런 짓을 했나? 부모 직업, 부모의 학벌과 가구를 조사했다. 그 가정환경조사서를 쓰는 게 싫었다. 나는 당신을 무척 부끄러워했다. 남들한테 당신의 오랜 실직 생활이 알려질까 봐 친구들에게 내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 당신의 무능을 지적하며 대들던 나는 싸움닭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학교 갈 준비를 하는 나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하셨다. 아버지는 고생하는 아내를 도와주고 싶지만 마음처럼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신세 한탄을 하셨다. 전기사업으로 가진 재산을 홀랑 다 날리고 나서 엄마가 아버지에게 작은 가게를 하나 얻어주었다. 수완보단 그저 사람이 좋았던 아버지는 장사는 뒷전이었고 주변 상인들과 술을 드시고 엄마에게 아침을 선물하고 싶어서 무언가 사들고 가셨던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창피했던 엄마는 당신을 벌레 보듯 피했다. 그 아침에 터져버린 아버지의 서러움은 내겐 충격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당신의 솔직한 말이 내 안에 오롯이 살아있다. 당신의 삶을 인정하고 하나씩 마음에서 내려놓은 후 당신은 기억과 말을 잃었다.

  말이 따뜻하면 마음도 따뜻하다. 가시처럼 쏘지 않고 부드럽다. 상대의 마음을 읽으면 말을 골라하게 된다. 솔직함을 미덕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내뱉다가는 주변에 독을 쏘는 수가 있다. 때로는 콕 집어서 하고 싶었던 말을 속에 두고 있기에 버거운지 뒷담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모른 척해주는 것이 약이다. 가만히 두고 보아야 상처는 새로운 속살이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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