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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나영 Oct 22. 2024

대물림

  왜 외갓집이라는 음식점은 있는데 친가라는 이름은 없냐고 지인이 그랬다. 동행한 이가 외가라고 하면 무언가 푸근한 정이 떠오르지만 친가는 그렇지 않아서 그 이름을 붙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저 웅숭깊은 밑바닥까지 다 꺼내서 퍼부어 주는 외할머니가 계셔서 그럴 거다. 드라마를 보면 외할머니는 항상 손자들을 반겨주시고 바리바리 싸주시는 모습으로 나온다. 하지만 내 외할머니는 달랐다.

  보령의 오 진사댁 막내딸이었던 외할머니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크게 열병을 앓아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눈동자가 하얗게 되었다. 아들을 바랐던 외증조부는 막내딸에 실망하여 배다른 남동생을 얻었다. 외할머니는 말수가 적었다. 옛날 얘기 해달라고 조르면 가끔씩 당신은 어려서 한글 배운 거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작은 체구의 외할머니는 당신 몸을 더 작게 오므려 방 벽에 기대서는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곤 했었다. 늘 외로워 보였고 사는 게 별반 달갑지 않은 모습이었다. 당신은 목소리도 크게 내지 않았다. 당신의 눈은 좋은 혼처를 얻을 수가 없었다. 다 쓰러져 가는 초라한 집안의 가난한 의원에게 시집을 갔다. 외할아버지가 동경 유학까지 다녀왔다지만 너무도 가난해 부리던 몸종은 시집온 첫날에 친정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얄궂은 운명으로 오누이처럼 닮은 남편과 만났지만 바람둥이 영감쟁이 때문에 평생 속을 썩었다. 쌀쌀맞고 까탈스러운 외할머니와 달리 복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 다 불러서 개장국을 끓여서 대접했다는 외할아버지는 인심이 후했다. 친정에서 남의 손에 맡겼던 일들을 가난한 살림이라 당신 손으로 하려니 삶이 무척이나 고단했을 거였다. 아들만 자식으로 여기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외할머니 또한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다. 아들도 편을 가른다. 딸은 이미 눈밖에 있다. 큰 아들에 큰 장손만이 진짜 아들이다. 아들은 난봉꾼 영감쟁이 아들답게 바람을 폈고 결국 조강지처를 버리고 애인을 처로 삼았다. 당신 자존심에 자식 욕은 못 하니 굴러온 미운 며느리 때문에 혼자 속을 끓였다. 본처 내쫓고 앉은 기센 며느리한테 외할머니는 기죽어 살았다. 불행이 일생을 쫓아다녔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혹독하게 가르쳤다고 했다. 시집가기 전에 김치 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직장 생활했던 엄마를 밤늦게까지 앉혀놓고 혼을 내가며 가르쳤다고 했다. 엄마는 외할머니와 살갑게 얘기한 적이 없다.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다정하게 말하는 것을, 모녀가 마주 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는 모습을 난 본 적이 없다. 그들 사이에는 교과서 같은 격식과 예의만 있었다. 철이 바뀌면 외할머니의 옷을 사다 드리는 일로 엄마는 효도를 다 했고, 외할머니는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타박도 하지 않았다. 딸이 사 오는 알록달록한 모양은 당신의 취향과 안 맞았다. 얼굴은 숨길 수가 없었다. 당신이 경제력이 없으니 받아 입는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맏딸과도 의절했다. 외할머니는 맏딸을 식모처럼 부렸다. 맏딸은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부엌살림을 해야 했고 동란 이후에 피난 갔다가 돌아와서는 신당동 중앙시장에서 풀빵장사로 식구들의 생계도 책임져야 했었다. 놀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외할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큰이모가 외할머니 하고 왜 척졌는지 모른다. 미국으로 달아나버린 큰이모가 뒤늦게 외할머니를 만나려고 돌아왔을 때 큰이모는 외할머니를 아줌마라고 불렀다. 기억을 잃은 외할머니가 큰이모 곁을 떠나지 않았다. 평생 안 하시던 미운 며느리 욕을 큰이모를 붙들고 했다. 엄마한테 외할머니가 큰이모를 너무 때리고 구박해서 큰이모가 외할머니를 무척 싫어했다고 들었었다. 딸을 잊은 외할머니에게 큰이모는 덤덤했다. 큰이모와 함께 미국에서 온 막내이모는 딸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붙들고 울고불고했는데 큰이모는 모르는 사람 대하듯 했다. 오히려 내게 이 아줌마 왜 이러냐고 귀찮은 듯 그랬는데 왜 어머니가 보고 싶었을까. 어머니를 굶겼다고 큰외숙모를 미워했다는 말도 큰이모가 돌아가시고 한참 뒤에 들었다.

  큰외숙모가 진짜로 밥을 안 준건지, 치매로 정신을 놓고 방안을 똥칠할까 무서워 굶긴 건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가 어머니 대접을 했을 리는 없다. 끔찍이 아끼던 맏아들한테 홀대를 받았다. 둘째 딸인 내 엄마를 기억 못 하고 며느리를 무서워했다. 가끔씩 찾아가는 엄마를 붙들고 아줌마 나 좀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당신은 아들 집을 나올 수가 없었다. 엄마도 당신을 모실 수 없었으니까. 당신이 가끔 외손녀인 나를 기억한 건 신기한 일이다.

  외할머니가 키운 세 딸은 다정하지 않다. 무섭고 독한 악다구니 속에서 자라 거침없이 세상을 헤쳐나갔다. 그네들은 자신의 삶을 억척스럽게 살았지만 자식들에게 우리 정서에 맞는 엄마가 되기는 쉽지 않았다. 자식을 위해 희생하기보다 자신을 위해 살았고, 자식에게 혹독하게 퍼붓기도 했다. 외할머니 당신처럼 때로는 쌀쌀맞고 때로는 깐깐하게 지켜만 봤다. 제일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시카고에 사는 막내 이모도 역시 외할머니의 딸이었다. 독립한 딸이 길에서 자동차 기름이 떨어져서 도와달라고 엄마를 불렀지만 딸에게 달려가기는커녕 모질고 독하게 욕을 퍼부었다고 했다. 외할머니는 딸들에게 엄마의 품을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라는 자리보다 당신의 외로움이 너무 컸다. 어쩌면 자식들에게 벽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라는 벽이다.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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