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려운 말이다. 모르는 사람들한테는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잘들 말하면서 가족에게는 왜 그리 그 말이 인색한지 모르겠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 쉽게 갈등이 해결될 일도 눈치를 보고 어물쩍 넘겨버리니 말이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쑥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유독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은 더 쉽지 않다. 가족 간에 금기어도 아닌데 왜 그럴까?
자식한테 미안해서 그렇다는 엄마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뭘 해줘도 하도 욕만 해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네가 고생해서 버는 돈인데 그걸로 사 오니까 미안하단다. 고생하는 내가 안쓰럽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너 집에서 안 쓰고 안 먹는 거 다 가져오라는 엄마다. 친정에서 뭘 가져와 본 적이 별로 없다. 늘 두 손 가득 무언가를 싸들고 갔었다. 빈손으로 오는 거 안 좋아하는 엄마니까 장을 봐서 갈 때도 많았다. 어려서도 엄마한테 무얼 사다 주면 기분 좋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오히려 욕만 먹었다. 변변한 진공청소기 없이 청소하는 친정이 안타까워 바쁜 시간을 쪼개서 청소기를 사러 다녔다. 들기에도 가볍고 가격도 적당한 것을 찾느라 품을 들여서 물건을 골랐다. 그걸 들고 친정으로 달려갔는데 엄마는 뭘 그딴 걸 샀냐고 타박으로 반긴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사러 다닌 것까지 후회가 된다. 그럼 도로 가져가겠다니깐 뭘 또 도로 가져가냐고 두고 가란다. 더 심한 건 가끔씩 집에 와서 청소도 해주시는 요양사아줌마가 좋겠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친정은 여전히 현관 열쇠가 필요했다. 엄마가 집에 없으면 낭패였다. 거동을 못 하는 아버지는 문을 열어줄 수가 없다. 그날도 온 동네 사람들과 공사다망한 엄마는 집에 없었고 잔뜩 장을 본 채로 나는 엄마를 두 시간 이상을 기다리다 나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아버지께 외손주도 보여줄 겸 아들과 동행했었다. 분명히 전화를 해서 집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었다. 포천의 절에 다녀온 엄마는 동네 신도들을 찾아다니며 전해 줄 것이 많았다고 했다. 나랑 약속한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충분히 미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못마땅했다.
당연하지 않다. 부모한테 잘하는 것도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이다. 효도니까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더 이상 해주고 욕먹기 싫어서 다시는 엄마한테 뭘 해주지 않기로 했다. 엄마의 지인들은 딸들이 다 어쩌면 그렇게 잘하냐고 그런다고 했다. 열띤 자랑에 못을 박았다. 엄마는 안 해주면 욕하잖아. 그건 듣기 싫은가 보다. 해줘도 욕하고 안 해줘도 욕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안 해주고 욕을 먹는 편이 낫다. 자식한테 바라는 것이 많은 엄마는 맏딸을 힘들게 한다. 자식이 해 주는 것은 너무 당연해서 고마운 마음이 별로 들지 않는 거 같다. 십오륙 년 전에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우리 형편이 안 좋았다. 병원비를 도와드릴 수가 없었다. 마침 제부가 병원비를 자기가 다 하겠다고 했다. 엄마는 할 수 있는 검사를 모두 신청했다. 병원에서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제부한테 미안하지 않냐고 매일 엄마랑 싸우니 남들 보기도 민망했다. 병원비는 제부가 한다고 했고 제부는 아들이니까 자기가 효도한다는 데 당연하다고 했다. 제부 보기가 낯이 뜨거웠다. 미안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고 당연히 여기는 엄마가 미워 병원을 안 갔다.
할 말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아들에게 상처 주는 말을 흥분해서 뱉어버리곤 후회를 했다. 그렇게까지 감때사납게 할 말은 아닌데 말이다. 한숨 쉬고 나서 생각하면 별일 아닌데 내가 엄마한테 배운 말은 간섭과 질책이었던 것이다. 부모랍시고 어깨 힘 있는 대로 주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다 큰 자식이 제 뜻대로 하겠다는데 그걸 참견하려 드는 내가 우습다. 아들이 독립하기 전에 제 딴에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을 텐데 그 마음은 헤아려주지도 않고 훈계부터 하려 들었다. 내가 싫어했던 엄마의 꼰대 같은 말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나도 싫어했으면서 내 자식한테 똑같이 한다. 결과는 뻔하다. 아들이 나한테 입을 다물어버린다. 말해봐야 좋은 소리 못 들으니 아들은 필요한 물건을 사는 데도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올초 학교 근처로 친구와 함께 살아도 되냐고 내 뜻을 물어본 후 아들은 내 눈치를 살폈다. 이사 준비가 됐는지 물어도 퉁명스럽게 알아서 하겠다고 말이 짧아진다. 며칠의 갈등은 나한테 말도 없이 집을 나서는 걸로 끝을 맺었다. 집을 떠나기 전에 심하게 말해서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별로 효과가 없다. 바쁠까 봐서 언제 전화해도 되는지 알려고 수업시간을 물어도 눈살을 찌푸렸다. 엄마가 또 무슨 간섭을 시작하려는지 방어를 하던 아이가 달라진다. 한 학기가 다 지나 나의 간섭과 잔소리가 완전히 끝난 후에야 아들은 마음이 편안해져서 자기 일상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아들한테 어려서 공부로 혼을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 삶에 여유가 없어서 혼내기만 했다. 아들은 그러니까 내가 공부하는 거 싫어하지라며 웃었다. 편하게 웃으면서 얘기하는 게 참 좋다. 다음 주에 아들이 집에 돌아오면 오글거려도 칭찬을 듬뿍 해야겠다. 어색함에 얼버무리지 말고 쑥스러워하지 말고 아들한테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