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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by 송나영

미국에서 이모가 장민호 콘서트를 보러 오신다. 콘서트 티켓을 구해달라고 하셨다. 미국에서는 블랙마켓을 통해 사야 되는데 장민호가 암표를 사면 입장 거부시킨다고 했단다. 이모는 나에게 표를 부탁했다. 그 표가 암표인지 장민호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 말을 찰떡 같이 듣고 절대 암표 사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이모는 강조했다. 여기서 14만 원짜리 티켓이 블랙마켓에서는 50만 원 이상에 팔린단다. 콘서트 표를 예매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가능할까? 키오스크도 더듬거리는데 말이다.

신세계를 경험했다. 주변에 아는 애들을 동원해서 티켓을 구매하기로 했다. 후다닥 빨리 표를 차지할 자신이 없었다. 표를 구하는 데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다고 해서 여기저기 부탁을 했다. 앞자리로 해달라고 했더니 다들 기겁을 한다. 그건 정말 힘들다고 했다. 다섯 번째 이내면 된다니까 그게 제일 어렵단다.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됐다. 콘서트 표 하나 구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처음 알았다. 2월에 하는 공연 표를 12월부터 발매를 하는 것이었다. 몇십 분 전부터 들락날락하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드디어 저녁 8시 정각 표를 팔기 시작했다. 좌석이 펼쳐지고 앞 좌석 두 장을 콕 찍고 결제를 하려고 하는데 세장을 찍었다고 두 장만 다시 찍으란다. 화면을 변경하고 다시 들어가 보니 앞자리는 다 없어졌다. 혼자서 우왕좌왕하는 1분도 안 되는 순간에 앞 좌석은 전부 사라졌다. 무서운 속도로 1층 자리는 사라졌고 난 벌써 틀렸다. 집단지성의 힘에 의탁하여 어떻게 하면 표를 빨리 살 수 있는지 알아봤지만 나한테는 무리다. 부탁을 했기 망정이지 아니면 앞 좌석은 택도 없었다. 간신히 무대에 가까운 자리를 구했다. 토, 일 양 이틀간의 좌석의 앞자리는 벌써 다 찼다. 2월 공연 표인데 12월 초에 1층 좌석 대부분이 벌써 팔린 거다.

앞자리가 아니면 빨리 연락 달라는 이모한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실패했고 간신히 토요일 다섯 번째, 일요일 아홉 번째 자리는 구했다고 했다. 이모가 가르쳐 준 앱에서는 두 배 되는 가격에 다섯 번째 이내의 앞자리 표를 판다고 안 되면 거기서 사라고 했다. 발매 당일에 아는 애들한테 물었더니 다들 앞자리는 차라리 웃돈을 주고 사야 된다고 한다. 다섯 번째 이내 자리를 예매하는 건 불가능이란다. 게다가 트로트 앞자리는 부르는 게 값이란다. 백만 원까지도 치솟는다고 했다. 세상에나 그 돈을 주고 공연을 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모가 앞줄 두 번째 자리를 두 배 가격에 판다고 연락이 왔는데 안 샀다고 했다. 나는 이모한테 앞자리는 그렇게 구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 자리만큼 좋지 않다고. 장민호가 너무 보고 싶은 이모는 다시 표를 팔겠다는 사람한테 연락했지만 이미 그 표는 팔렸단다.

장민호의 팬클럽은 민트라고 했다. 이모는 친한 민트한테 일요일 앞자리 표 예매에 성공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가 산 거 보다 앞자리라 취소할 테니 그 표를 구하시라고 했다. 시카고에 사는 이모는 딸들이 장민호 미국 투어 표를 사줘서 미국 공연을 작년에 처음으로 보셨다. 그때 민트라는 장민호 팬들과 친해지셨다. 이모는 민트에 대해 나한테 소상히 알려줬다. 장민호의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이모를 통해 알게 됐다. 전혀 관심 없던 트로트의 세계를 이모가 알려 준 것이다. 민트 팬클럽이 미국 공연을 다 따라다닌다고 했다. 기사에서나 접했던 가요순위를 높이기 위해 CD를 몇 십장씩 산다더니 새로운 노래가 나오면 음원차트를 높이기 위해 CD를 몇 십장씩 사서 버린단다. 할머니들도 그렇게 할 줄 몰랐다. 돈 단위가 천만 원대로 치솟는다. 미국 내 광고도 팬들이 해준다고 이모한테 돈을 내라고 했단다. 들을수록 희한한 세상이다.

케이팝 팬들은 트로트 팬들의 넘치는 의리를 못 따라갈 거 같다. 민트팬은 서로 같이 공연을 보기 위해 표를 구매해 주고 소식을 나눈다. 시카고에서 의리를 다진 민트팬들은 부산에서 또 만나길 원했다. 순식간에 동이 나 버린 표에는 암표상도 있겠지만 같이 보려는 민트팬들이 주변 인력을 동원해서 표를 구하는가 보았다. 내가 할머니 팬들이 대단하다고 했더니 삼십 대도 있다고 했다. 79세 이모는 민트색 옷을 입고 장민호 응원봉을 휘두르나 보다. 중장년과 노년의 외로움을 잊을 수 있어서 그런가? 트로트 영웅들을 좋아하는 그네들은 외로울 새가 없는 거 같다. 하루 종일 트로트 영웅과 함께 살아간다.

장민호에 대한 열정으로 이모는 하루하루 힘차다. 이모의 목소리도 활력이 넘치고 임영웅 팬들과 비교하면서 흥분해서 말할 때는 영락없는 소녀팬이다. '응답하라 1997'에서 보았던 H.O.T팬과 젝스키스 팬들끼리 경쟁했던 80년대 소녀들처럼 변한다. 쎄시봉을 들락거렸을 때도 이모는 이렇게 흥분했을 거다. 괜한 소리 들을까 봐 79세의 이모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눈치 볼 일이 뭐 있겠는가! 인생 멋지게 즐기시는 이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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